[빅데이터] 달러-엔 환율 변동 폭 확대,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뇌관?
일본, 24일 도쿄 시장에 개입해 149엔에서 145엔까지 끌어내려 일본 재무상, 22일 시장 개입 사실은 인정하나 24일 일에는 묵묵부답 한국 및 아시아 국가 엔화 투자금 이탈 가능성, IMF 복사판 우려
지난 24일 일본 NHK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행이 21일 밤 뉴욕시장에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5조 엔(원화 약 48조3천억원)가량을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오후 11시(현지 시각) 무렵 일본 정부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엔을 넘어 152엔에 육박하자 2시간 만에 달러당 144엔대 중반까지 떨어뜨렸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외환시장 개입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례적인 환율 움직임의 배경을 대규모 엔화를 매수한 ‘복면개입'(覆面介入)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NHK는 복면개입 규모 계산에 대한 근거로 일본은행을 통한 정부와 금융기관 간 자금 흐름을 제시했다. 일본은행이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본래 정부로부터 금융기관으로 4조2천억∼4조3천억 엔(약 40조5천억∼41조5천억원)이 이동해야 하지만, 반대로 1조1,800억 엔(약 11조4천억원)이 금융기관에서 정부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달 22일 외환시장 개입에 사상 최대 자금인 2조8,382억 엔(약 27조4천억원)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재차 외환시장에 투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21일 미국 시장 이후 24일에는 일본 시장에도 개입?
24일 오전에도 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도쿄시장에 ‘엔 매입-달러 매도’의 시장 개입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일 오전 엔화 가치가 일시적으로 달러당 149엔에서 4엔가량 올랐다가 다시 149엔대로 내려가는 등 짧은 시간 안에 큰 변동성을 보였다. 엔화 가치가 지난주 달러당 147.79엔 수준에서 거래를 마친 것을 감안하면 월요일 오전 중 2엔 가까이 하락했다가 갑자기 4엔가량 올랐던 셈이다.
닛케이는 이날 오전 갑작스러운 엔화 가치 상승에 대해 “지난 21일에 이어 엔 매입 개입을 실시했다는 관측이 있다”고 전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24일 오전 외환시장 개입 여부를 묻는 말에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2일 시장 개입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강력한 엔화 사수 의지, 결국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일본이 엔저를 막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으나, 엔저의 근본 원인인 일본은행의 대규모 금융완화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지속되고 있어 효과는 제한적이면서 일시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 미국과 금융완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일본과의 금리 차이가 현저한 상태에서 엔저·강달러에 걸린 압력이 약해지긴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 재무성 간부도 닛케이에 “환율 개입으로 엔저가 멈출 것으로 보진 않는다”면서 어디까지나 투기세력에 의한 지나친 엔저 현상에 대한 조정이 목적이라는 의중을 내비쳤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22일 일본 정부의 환율개입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킹달러(King Dollar)’ 정책을 수정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엔저가 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금융완화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에 대한 질문에 55%가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사실상 처음 맞는 물가 상승인 만큼, 소비자들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말뿐인 사수 의지, 현실은 정부 부채 이자 부담으로 이자율 인상 어려워
문제는 엔화 환율 방어를 위해 일본 통화당국이 섣불리 금리를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정부 부채가 금리 인상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63%가 넘는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국채 잔액은 1,000조 엔(약 9,550조원)을 돌파했다. 금리를 1%포인트만 올려도 이자 부담이 연간 10조 엔가량 늘어나는 상황이다.
국제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일본의 무역적자가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악을 기록한 것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2022 회계연도 상반기 무역수지는 11조75억 엔 적자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했던 197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총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9% 이상 증가했으나 총수입액이 44.5%나 늘었다. 환율과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입이 급증한 원인이다. 엔화 환율이 떨어지면 일본의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지만 주요 기업의 해외 법인이 늘어나면서 그 효과는 반감됐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으나, 한국은 정부 부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경우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금리 조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외환 전문가는 엔화 환율 하락세가 장기화하면 한국 및 타 아시아 국가에서 엔화 투자금이 이탈하게 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남의 나라 환율이라고만 생각했던 엔-달러 환율이 자칫 1997년 방식의 외환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