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볼커 시절 떠올리게 하는 파월
연말 미국 기준금리 두 차례 이상 빅스텝으로 4.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 나와 1980년대 연준 의장 폴 볼커, 물가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장기간 고금리 유지 금리 상승으로 잃은 것은? 일본의 추월 그리고 극심한 경기침체 기대 인플레이션을 못 잡으면 남미처럼 몰락, ‘인플레이션 조세’ 최소화가 현 금리 정책의 기초
지난 18일 미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은 8.2%로 나타났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의장이 지난 9월에 물가 상승률을 2%로 낮추기 전까지는 금리 인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답했던 만큼 현재의 3%~3.25%에서 연말까지 한 차례 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연말 미국 기준금리가 두 차례 이상의 빅스텝으로 4.5%에 이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경제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을 완전히 딛고 일어서지 못한 탓에 재정 지출이 이어지고 있어 금리 인상으로 시장 유동성을 축소한다고 해도 당분간 물가 상승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금리는 더더욱 가파르게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인상까지 겹친 탓에 근원 물가마저 오르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률을 잡기 위해서는 고금리를 장기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1980년대 물가와의 전쟁에서 배우는 금리 상승
두 차례 오일쇼크로 스테그플레이션(Stagflation,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함께 오는 상황)에 직면했던 1979년대 말, 폴 볼커 전 미 연준 의장은 취임 직후부터 경기침체와의 전쟁 대신 물가 상승과의 전쟁을 선택했다. 경기침체는 불과 수십 년 전에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반면 물가 상승은 자칫 미국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를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3년에 스미소니언 협정을 통해 금본위제를 느슨한 시스템으로 변경하면서 이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으로부터 달러태환제도 유지를 위한 필수요건으로 물가 안정화에 대한 압박을 받은 바 있다.
취임 시점인 1979년 8월 당시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11.8%였다. 이 수치는 이듬해 4월까지 14.5%까지 치솟았고 볼커 의장은 기준 금리를 8.0%에서 17.6%로 끌어올린다. 최근 들어 금리가 0%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8개월간 9.6% 인상이라는 수치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나 당시에도 수많은 미국 기업이 파산 신청을 할 만큼 충격적인 수치였다. 1980년 여름들어 금리 인상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기업 파산이 늘기도 했지만, 물가 상승률이 12%로 내려오자 다시 3개월 동안 금리를 낮춰 7월에는 9%대로 금리를 인하했다. 기업 파산이 미국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책은 일반적으로 8분기, 혹은 2년의 시차를 두고 천천히 파급효과가 나타난다. 볼커 의장도 8개월간의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압박이 해소된 것이 12%대 물가 상승률로 나타났다고 인식하고 1981년 하반기에는 물가 상승률이 10%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1981년 6월까지 1년간 다시 금리를 19.1%까지 끌어올린다. 이런 널뛰기 금리 정책 덕에 1980년대 말, 소비자 물가는 3년 만에 처음으로 10% 아래로 떨어졌다. 오일쇼크로 근원물가가 엄청나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시절 수많은 미국 기업은 파산 신청을 했고, 미국 의존적이었던 자유주의 서방 국가들도 동반 경기침체를 겪었다. OPEC 국가들과 미국의 석유를 놓고 벌인 무역전쟁 틈바구니에서 볼커 의장의 선택은 기업과 주변국들의 희생이었다.
금리 상승으로 얻은 것은 물가 억제, 잃은 것은?
당시 거시경제학계에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를 완전히 꺾어야 한다는 논리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고 기대심리를 꺾기 위해 금리를 들쑥날쑥하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신호 효과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준칙에 맞춘 결정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다. 볼커 의장도 1982년 4월까지 금리를 12%~14%로 유지했다. 덕분에 남미에서도 못 잡았던 물가를 사실상 완벽하게 잡았다. 전쟁 4년 차인 1983년 물가 상승률은 3.2%, 이듬해에는 4.3%로 낮아졌으나 볼커 의장은 1985년까지 금리를 8% 이상으로 꾸준히 유지했다.
이후 1987년 8월 퇴임 때까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 자체가 생기지 않게 금리를 미세조정했고, 이는 자리를 물려받은 그린스펀 의장 이후 금리-물가 관리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문제는 그런 고이자율이 2차 오일쇼크 이후 휘청거리던 미국 경제에 더 치명타를 가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실업률이 급증했고 은행 대출로 1년 농사를 운영했던 농부들이 트랙터를 연준 건물 앞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금본위제 아래 금리와 물가의 관계에 대해 매우 기초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던 거시경제학계가 좌충우돌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와중에 일본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마침내는 1985년 플라자 합의라는 방식의 국제정치적 압박을 통해 자국의 경제 문제를 일본에 전가하는 전략을 쓰게 된다.
인플레이션 조세(Seigniorage tax), 금리-물가에서 경제학이 얻고 잃은 것
경제학에서는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가 물가를 올리는 방식으로 현금 부자들에게서 추가적인 세금을 걷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주조차익(Seigniorage tax)’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플레이션 조세(Inflation tax)’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1930년대 세계 5위권 경제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몰락과 더불어 남미 경제의 쇠퇴는 과다한 복지에 필요한 자금을 인플레이션 조세를 통해 충당하려다 물가 관리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파월 의장이 올 3월부터 신속한 금리 인상에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매월 빠르게 금리를 인상하면서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에서는 “볼커 취임 이전 15년간 연준의 인플레이션 관리가 실패했던 이유는 장기간의 긴축통화 정책이 주는 준칙의 효과를 몰랐기 때문이나 볼커 전 의장이 보여줬다”는 평을 내놨다.
볼커 이후 거시경제학은 학부 수준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를 가르친다. 기대 인플레이션을 0으로 만들기 위해 고강도의 긴축정책을 시장에 선언하고 그 ‘준칙’을 따라가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줘야 기대 인플레이션이 사라지고 곧이어 인플레이션도 억제된다는 것이 골자다.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환율, 원자재 가격 등의 많은 경제 현상이 경기 침체의 그것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내려가고 있다. 다만 1980년대에 고생 끝에 배운 내용으로 만든 경제학 교과서가 앞으로도 계속 적중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