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① 가상인간, 진짜 인간의 영역 침범할까?
버추얼 콘텐츠, 가상인간 편 팬데믹 영향, 언택트 방송→메타버스 진화 버추얼 휴먼, 영역은 어디까지?
미디어 시장은 이제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로 향한다. 팬데믹으로 언택트 방송이 확장되면서 OTT 산업이 발전했고, 이와 함께 메타버스 기술 또한 진화했다. 가상공간이 열리자 가상인간도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도 모르게 일상에 침투한 버추얼(Virtual).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
TV광고 속에서 가상인간 로지가 미소를 짓는다. 외견은 인간이지만 어딘가 어색한 모습에 대중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그러나 업계는 뜨겁다. 로지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모델, 가수 등으로 활동 영역도 확장 중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상에 스며든 ‘버추얼 휴먼.’ 존재하는 동시에 실존하지 않는 이들은 미디어 콘텐츠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여러 콘텐츠를 통해 얼굴을 비춘 로지는 자타공인 ‘한국 대표 가상인간’이다. 업계가 로지를 기용하는 이유는 일반 연예인보다 새로운 얼굴에 기업의 트렌디함을 동시에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람처럼 문제를 일으킬 위험도 없고,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강점도 지녔다. 로지를 제작한 로커스엑스 백승엽 대표는 성공 노하우로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로의 명확한 포지셔닝을 꼽았다.
로지는 정식 공개 1년 전부터 SNS에서 패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목표는 1만 팔로워 달성. 영향력을 발휘하고 반응을 살피기에 꼭 필요한 조건이었다. 사람이 모이자 협찬 제의가 들어왔고, 화장법, 피부 보정법 등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아무도 로지가 가상인간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로지의 진짜 정체를 밝히고 난 후에도 SNS 주 사용자인 MZ세대는 쿨했다. 가상인간에 속은 것에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보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진짜 고충은 따로 있었다. 대중의 니즈가 없으니 시장에서도 딱히 버추얼 휴먼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
시선을 돌려 한국보다 한발 빠르게 버추얼 콘텐츠를 활용한 해외 시장에 주목했다. 세계 최초 디지털 슈퍼 모델 SHUDU(슈두)에 먼저 협업을 제안하며 역수입을 노렸다. SHUDU는 지난 2018년 쟁쟁한 모델들을 제치고 명품 브랜드 발망(BALMAIN) F/W 캠페인 메인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된 버추얼 휴먼의 대표주자다. 백 대표는 “팬데믹 시국이 호재로 작용했다. 하늘길이 묶여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가상인간은 뛰어넘을 수 있었다. ‘OVER THE LIMIT’라는 주제로 화보를 촬영해 주목을 받았고, 모델 아이린의 러브콜을 받아 또 다른 협업과 작업의 물꼬가 트였다”고 전했다.
로지는 버추얼 휴먼의 새로운 시장성을 증명했다. 현재 버추얼 휴먼 정보 사이트 버추얼휴먼스에는 아뽀키, 르샤, 리나, 이터니티, 루이, 루시 테오 등 100만명 이상의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등록되어 있다. 신사업으로 일자리 창출도 활발하다. 버추얼 휴먼의 활동 영역은 아직까지 사람을 따라 하고 흉내 내는 수준이다. 사람처럼 말을 하고 노래, 연기, 춤도 출 수 있지만 진짜 사람의 감정과 개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즉, 버추얼 휴먼만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하지 않으면 한순간 유행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해결책은 버추얼 휴먼 고유의 콘텐츠 확보다. 백 대표는 “메타버스 플랫폼의 핵심은 사람이다. ‘자신의 부캐’로 여겨지는 가상세계 속 버추얼 캐릭터는 가상경제라는 생명력을 생산하는 주체다. 메타버스는 곧 방송국과 같아서 결국 콘텐츠가 중요하다”면서 가상세계 속 셀럽 역할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사람의 직업을 뺏는 건 아니다. 백 대표는 “결국 사람의 역할은 사람이 더 잘한다. 버추얼 화제성이 높은 건 이슈가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 보지 못한 버추얼용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백 대표가 강조한 ‘버추얼’의 핵심은 기술과 콘텐츠의 융합이다. 버추얼 휴먼의 캐릭터성과 함께 ‘세계관 구축’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그는 “로지를 만들 때 살짝 어색함을 입혔다. 너무 사람과 똑같으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며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로지가 처음 공개됐을 때 외모 지적이 많았다. ‘조금 더 예쁘게 만들지 그랬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신경 쓰지 않았다. 외모나 성격의 호불호를 건너뛰는 게 젠더 갈등이 해결되는 좋은 솔루션이라 생각했다. 로지는 딱히 성별, 국적이 없다. 단지 영원히 늙지 않는 22살이다. 언제나 같은 모습인 로지를 본다면 또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로지는 광고 모델을 비롯해 디지털 싱글앨범 발매, 원래 아이돌의 영역이던 동남아권 라면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NFT 출시와 로지체(글씨체)도 공개도 앞두고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듯한 버추얼 시장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버추얼 시장 전망은 2020년 약 14억원(100억 달러)에서 2030년 약 688조 규모(5275억 달러)(이머진 리서치)로 10년새 53배 가량 증가했다. 대기업까지 버추얼 시장 선점을 위해 달려들며 순식간에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기존 방송계는 물론 OTT 업계까지 메타버스와 가상인간에 호의적 태도를 보이며 낯선 도전을 이어가는 상황. 이에 대한 이야기는 ②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