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주 52시간제, 기업 옥죄면 근로자 복지?
중소기업 대표들, 주 52시간제도 불합리에 대해 강한 성토 단순히 제도 개선이 아니라 현장 상황을 근본적으로 이해한 개선안 나와야 연구·개발 기업들은 치명타, 산업별, 직군별, 급여 수준별 맞춤형 개선책 필요 목소리도
지난 11월부터 정부 산하 각종 연구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유연화시키는 제도 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유연근로시간제’로, 1주일 52시간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1개월, 혹은 3개월 평균 근로 시간이 주당 52시간이면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완하자는 것이다.
월 단위로 적용될 경우, 주당 최대 69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일각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줄기차게 주창했던 ‘워라벨’을 깨뜨리는 ‘착취’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경영계에서는 미래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무리한 제도가 개선된다고 ‘환영’하는 모양새다.
납기 지키려면 중소기업 대표가 감옥행?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노동 규제 개선 촉구 대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주 52시간제를 포함한 노동 규제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쏟아냈다. 지방의 한 제조업체는 중동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는데 주 52시간제를 지키느라 납기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어려움도 언급됐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잔업 수당으로 생계를 이어왔는데, 주 52시간 도입으로 한 달 소득이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줄어든 사례가 늘어 생계 위협에 이른바 ‘투 잡’에 나서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주 52시간 제도가 충분한 준비없이 상명하달식으로 시작된 탓에, 현장의 준비가 부족한 상태라 기업은 기업대로 납기를 맞추기 어렵고, 직원들은 퇴근 후 다른 직장을 찾아야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불만을 털어놨다.
특별연장근로,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 모두 현장에서는 역부족
중소기업 대표들은 현재의 특별연장근로나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는 일부 기업에만 도움이 될 뿐, 연구 중심 기업들의 현장 상황과는 크게 동떨어진 개선안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연구·개발 업체 INI리서치 이진수 대표는 “업종 특성상 장기 프로젝트가 많기 때문에 최소 1~2년 집중적 근로가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현재 특별연장근로는 1회에 한해 길어봐야 3개월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특히, 현장 건의자로 나선 구경주 이플러스 대표는 “30인 미만 영세기업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현상 유지조차 어려워 유연근무제나 신규 채용으로 주 52시간제를 대응할 여력이 없다”며,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라도 있어야 부족한 인력을 조금이라도 보충할 수 있어, 제도 일몰시에는 사업의 존폐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김문식 한국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주52시간제가 전면 적용된 지 1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많은 중소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준수하기 어렵고 근로자들도 연장수당이 감소해 불만이다”며, “노사 모두가 원하면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도록 현재 주 12시간 단위 연장근로 체계를 최소한 1개월 단위로 유연화해야 하며, 영세기업들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올해 말이면 종료되는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노동규제 관련 애로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제도 결정기준 개선 및 업종별 구분적용 도입,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사업주 처벌수준 완화 등의 현장 건의가 뒤따르기도 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대부분 근로자 복지를 위해 기업은 희생해도 된다는 사고를 정부 부처에서 버려야 한다는 주장들을 내놨다. 지난 정권 내내 기업의 희생에 대한 불만을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제, 기업 옥죄면 근로자 복지라는 사고방식 버려야
주 52시간제 개선안을 위해 각종 해결책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IT기업들도 불만을 내놓는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업무라기보다,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업무인데, 시간을 정하면서 사실상 업무를 재택으로 처리하도록 직원들이 압박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IT기업들 중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하는 스타트업들의 현실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30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원장 오동윤)은 ‘스타트업 유연시간근로제 개선 방안’ 보고서(황경진 연구위원, 채희태 선임연구원)를 통해 미·일·영국의 선진국들이 유연시간근로제를 더욱 완화해 특정 산업군과 급여 기준을 정해 주당 근로 시간을 운영하고 있음을 공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