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왓챠 5,000억이 200억으로, ‘VC놀음’에 휩쓸린 스타트업의 최후
5,000억원 꿈꾸던 OTT스타트업 왓챠, 기존 기업 가치 200억원에 M&A, 위기 때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기존 VC들 맹비난, 투자할 땐 ‘동업자’라더니? VC들에 대한 신뢰 사라져, 스타트업 대표들 불편함 숨기지 않기도
2일 오전, 투자은행(IB) 업계 소식에 따르면 LG유플러스가 신주 발행을 토해 OTT 스타트업 왓챠의 지분 2/3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미 경영난에 빠진 것이 알려진 지 반 년이 지난만큼, 추가 투자 형식의 회사 매각 소식이 놀랄 뉴스는 아니었으나, 기존 주주들이 가져가는 몫이 알려지며 스타트업 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왓챠는 지난 2021년 말, 490억원의 프리IPO를 진행하면서 3,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고, 올해 혹은 내년에 상장하면서 5,000억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던 스타트업이다. 국내 유일의 토종 스타트업 OTT업체인만큼 응원하는 사용자들도 많았다. 그러다 올 여름 대규모 감원을 통한 경영 정상화에 나선다는 소식, 리디북스로 알려진 리디가 지분 교환을 통한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 심지어 국내 토종 OTT 선두업체인 웨이브가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질 때까지만해도, 기존 기업의 가치를 200억원으로 인정 받을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5,000억원을 꿈꾸던 스타트업이 겨우 200억원으로 인정 받는다는 사실은 스타트업계 전반에 충격을 갖고 왔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소식을 처음 듣고 “2,000억원인데 오타가 난 줄 알았다, 그러다 LG유플러스가 신주 발행 400억원 투자로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소식에 오타가 아닌 줄 알게됐다”는 반응을 내보이기도 했다.
왓챠는 심지어 기업가치 400억으로 예상되는 블렌딩의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즉, 블렌딩 지분 이외에 현재 왓챠의 기업 가치를 0원으로 봤다고봐도 무방한 프리 밸류(Pre-value, 투자 전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무방하다. 5,000억원을 꿈꿨던 스타트업이 보유 자산을 제외하고 0원을 인정 받은 것이다.
‘VC놀음’에 휩쓸려 외형 성장에만 집중, 내실 다지기엔 너무 늦어
스타트업계에서는 벤처캐피탈(VC)의 투자가 진행될 때 이른바 ‘공식’이 있다. 투자금을 소진해도 상관없으니 2-3년 안에 외형을 2-3배 이상 키워 다음 투자를 받을 때 최대한 큰 규모로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라는 것이 벤처 투자자가 스타트업 대표와 경영진에게 바라는 사항이다.
왓챠도 그런 요구 조건을 충실히 이행했다. 왓챠는 2013년 첫 투자, 2016년의 시리즈B 투자 후 2021년 프리IPO 투자를 받을 때까지 고속 성장을 이어나갔다. 지난 2021년 매출액은 708억원으로 직전회계년도 대비 무려 86.3%나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외형 성장에 집중한 나머지 영업손실을 이어졌고, 2020년 154억원이던 손실액은 2021년들어 248억원으로 증가했으나, 2022년 초까지만해도 영업손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OTT업계가 전반적으로 투자 단계에 있지 영업이익을 회수하는 단계에 있지 않은데다, 쿠팡, 배달의 민족 등을 통해 초기 손실을 보더라도 투자를 감행해 시장을 확보하는 것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다.
그러다 2022년 여름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이하 ‘연준’)이 빠른 속도로 기준 금리를 인상하며 글로벌 자금 경색이 나타나자, 외형 성장을 압박하던 투자사들이 돌연 ‘BEP(Break-Even-Point, 손익분기점)를 맞춰라’며 그간의 경영지침과 정반대의 요청을 내놓기 시작했다. 8월 들어 상장을 준비하던 쏘카는 체급을 낮췄음에도 시장에서 맹비난을 듣고 공모가의 60%에 거래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상장을 준비하던 수 많은 스타트업들이 상장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동업자’가 힘든데 나몰라라, VC들에 대한 신뢰 바닥으로 떨어져
여기까지는 시장 악화에 따라 충분히 예견 가능한 시나리오였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제는 이후 행보다.
VC들이 투자 시점에는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동업자’라며 혀에 꿀을 바른 태도로 다가간다. 같이 회사를 키워줄 수 있다고 기업 가치를 낮춰서 지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해당 업무 분야를 거의 알지도 못하면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지분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동업자’라고 주장했던 수 많은 VC들이 이번 왓챠 사건에서 보듯이 경영난에 빠진 회사에 단 1원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지난 2021년말 기준,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등록된, 즉 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투자사는 총 6개다. 그 이하 지분을 보유한 VC들도 수 없이 많다. 그러나 LG유플러스가 400억원의 신주 인수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그 누구도 선뜻 추가금을 내겠다고 나선 곳이 없다.
가입자 100만명, 작년 기준 매출액 700억원의 중형 스타트업에 무려 7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이 유입된 상태인데, 자금 위기만 넘기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5,000억원을 꿈꾸던 스타트업은 200억원으로 추락했다. 경영진 지분율 25%를 제외한 가치도 150억원이 됐다. 지난 2021년 말에 490억원의 투자를 진행했던 VC들이 가진 지분의 가치는 100억은 커녕 50억도 되지 않는다. 공멸한 셈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VC들, 은행이랑 다를 게 뭐가 있나?
스타트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투자 받은 순간부터 회사는 창업자 소유가 아니라 VC소유’라는 표현이 있다. ‘동업자’라는 표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지분 투자를 진행하면서 이사회 의석을 요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기업 대표를 쫓아낼 수 있는 계약서를 들고 있는만큼, 사실상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대표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퇴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직원 폭행으로 구설수에 오른 원티드랩 대표는 코스닥 상장이라는 성과를 일궈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압력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사건이 무마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약간의 ‘브릿지론(Bridge Loan, 경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긴급 자금)’이 있었다면 극복할 수도 있었던 문제를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탓에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는 분위기다. 한편에서는 메쉬코리아의 유정범 대표가 지난 2월 OK캐피탈 측에 360억원을 차입했다가 경영권을 뺏기는 상황에 처한 사정을 들며 어느 VC도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기는 하나, 스타트업계 전반적으로는 왓챠 경영진들이 ‘VC놀음’의 피해자가 됐다는 여론이 강하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동업자라던 VC가 힘들 때 저렇게 발뺌하면 대출해주는 은행이랑 다를 게 뭐가 있나?’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은행들이 경영 악화를 겪는 회사들에게 즉각적은 대출 회수를 요청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VC들의 유사한 행동 양태에 대한 불만이 결합된 표현이다.
VC와 스타트업 간 골이 깊어질 듯
한 관계자는 향후 금융시장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스타트업 대표들이 VC들의 ‘동업자’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내내 메쉬코리아 유정범 의장과 왓챠 박태훈 대표가 VC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10년간 키운 회사를 헐 값에 ‘강탈’당하는 사건을 보면서, ‘죽 쒀서 X줬다’는 비속어 표현까지 등장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투자금을 받고 나도 VC의 압박에 관계없이 외형 성장보다 내실 다지기에 먼저 나서는 스타트업이 속속 나타날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메쉬코리아의 유정범 의장도 물류센터 확장을 요구하는 VC들의 의견을 묵살하지 못하다 결국 자금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사업은 동업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많았다. 심지어 유럽여행도 친구랑 같이 가면 싸우고, 연인이랑 같이가면 헤어지는데, 하물명 동업은 ‘아름다룬 이별’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LG-GS그룹도 겉으로는 ‘아름다운 이별’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말이 많았다. 금융시장 경색이 닥치며 ‘동업자’를 내세우고 현금으로 스타트업 기업가의 열정을 샀던 VC들의 속내가 밝혀졌다. 오히려 손해 안 보겠다고 추가 투자를 안 하다가 공멸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상황이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국내 VC들이 반성하지 않으면 투자 냉각기는 금융 경색이 해소되어도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