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생존경쟁] ‘메뚜기 이용자’ 공략? OTT 콘텐츠 전체 공개의 명과 암
국내 OTT 이용자 53% “콘텐츠 따라서 플랫폼 옮긴다” 업계, 킬러 콘텐츠 확보 후 공개 방식에도 ‘고심’ 폭발적 반응 불러오는 전체 공개 순차 공개는 메뚜기 이용자 공략에 적합
메뚜기 이용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국내외 OTT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같은 플랫폼 내에서도 제각각 다른 공개 기준은 어떻게 나뉘는 걸까?
비싼 구독료를 이유로 여러 OTT 플랫폼을 옮겨 다니며 ‘짧고 굵게’ 콘텐츠를 정주행하는 이른바 ‘메뚜기 이용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전체 OTT 이용자들 중 매월 구독 OTT를 바꾼다고 답한 사람은 지난해 10명 중 4명(방송통신위원회 조사) 수준이었지만,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서는 무려 53%의 응답자가 특정 콘텐츠에 따라서 OTT를 옮겨 다닌다고 답했다.
넷플릭스의 광고 요금제 도입 전까지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OTT들은 구독료가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달 광고를 도입한 넷플릭스는 해당 요금제 출시 전 광고가 완판되며 수익 개선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이용자들의 호응으로 이어지지 않아 성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각 플랫폼은 안정적인 구독료 수익을 위해 메뚜기 가입자를 유치하고 한번 유치한 가입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고심에 들어갔다.
이용자 공략 0단계는 ‘킬러콘텐츠 확보’
먼저 킬러콘텐츠의 확보다. 메뚜기 이용자들이 플랫폼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이 ‘특정 콘텐츠의 유무’에 있다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엔데믹과 함께 침체기에 돌입했던 OTT 시장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은 것 역시 이들 킬러콘텐츠였다.
넷플릭스는 올해 초부터 5개월 동안 이용자 수 감소를 기록했지만,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흥행과 함께 반등을 기록했다. 당시 해당 드라마는 토종 OTT 시즌과 넷플릭스에 모두 공개됐지만, 풍성한 콘텐츠 라인업을 이유로 많은 이용자가 넷플릭스를 택했다.
티빙은 8월 가수 임영웅 콘서트를 비롯해 인기 영화감독 이준익의 <욘더>, 단편영화 리메이크작 <몸값> 등을 공개하며 웨이브의 토종 OTT 1위 자리를 빼앗았다. 티빙에 자리를 빼앗긴 웨이브는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1>을 비롯해 ‘오리지널 예능 쇼케이스’를 열어 선택과 집중을 통한 양질의 예능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밝히며 1위 탈환에 나섰다.
한때 위기설까지 돌았던 왓챠는 이달 한석규-김서형 주연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비롯해 <사막의 왕> 등을 공개한다. 명품 배우와 스타 작가를 영입해 이용자들을 끌어오겠다는 계획이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공개 이후 2주 연속 왓챠 신규가입 기여도 1위를 기록하며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킬러콘텐츠가 이용자들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하며 OTT 업체들의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이 갈수록 과열되는 가운데, 야심 차게 준비한 킬러 콘텐츠의 공개 방식에도 고민이 따른다. OTT 이용자들을 가장 오랜 시간 플랫폼에 묶어두는 콘텐츠로 꼽히는 드라마를 ‘전체 공개’할지, ‘순차 공개’할지 각각에 따른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최대 OTT 넷플릭스는 전체 공개가 기본이다. ‘폭식’을 의미하는 빈지(Binge)와 ‘보다’를 의미하는 ‘워치(Watch)’가 결합한 신조어 ‘빈지워치’는 넷플릭스의 활성화와 함께 ‘몰아 보기’를 의미하는 일상적인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넷플릭스가 주도한 전체 공개는 일주일에 1-2회를 방영하는 TV 드라마와 OTT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혔다.
전체 공개, 장르물에서 특히 긍정적 효과
전체 공개를 통해 누릴 수 있는 빈지워치는 원하는 만큼 집중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쉬어가는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어 몰입도 면에서 탁월하다. 범죄나 추리, 액션 등 장르물에서 전체 공개는 특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최근 OTT 오리지널 중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인 웨이브의 <약한영웅 Class1>은 8부작을 지난달 18일 전체 공개했다. 금요일 오후 전체 공개 이후 주말을 이용해 정주행을 마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며 같은 달 21일 웨이브 [데일리 OTT 랭킹] 3위로 직행했다. 대부분 작품을 순차 공개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던 웨이브지만, 제작사인 플레이리스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유수민 감독 역시 “전체 공개가 ‘신의 한 수’였다”고 자평했다. 소년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내면을 그린 스토리와 특유의 액션은 내달리듯 보는 것이 재미를 극대화한다는 설명이다.
K-콘텐츠에 주력 중인 디즈니+도 변화를 줬다. 그동안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에 있어서는 순차 공개를 고집했던 디즈니+였다. 하지만 디즈니+가 앞서 선보인 <형사록>에 대해 “순차 공개가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는 평가가 나온 탓이다. <형사록>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성민 역시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에서 공개됐으면 어땠을까”라며 공개 방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디즈니+는 이달 7일 <커넥트>의 6부작을 전체 공개했다. 정해인-고경표 두 주연배우의 연기 변신과 더불어 일본 장르 영화의 거장 미이케 다카시가 메가폰을 잡아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공개 5일 차를 맞은 12일 현재 <커넥트>는 디즈니+ 랭킹의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디즈니+의 랭킹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콘텐츠가 각각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과 SBS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로 다른 OTT에서도 공개 중인 콘텐츠임을 감안하면 그동안의 고집을 꺾고 감행한 전체 공개가 기대만큼의 효과는 거두지 못한 셈이다.
콘텐츠 공백 최소화, 메뚜기 이용자 공략에는 순차 공개 적합
이 때문에 여전히 국내 OTT들은 순차 공개 방식을 포기하지 못한다. TV 채널을 통해 방영된 후 다시 보기를 제공하는 콘텐츠는 물론, 오리지널 작품도 마찬가지다. 티빙은 9일 <술꾼도시여자들2>를 주 2회씩 공개하고, 왓챠 역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주 2회 공개 중이다. 이런 순차 공개는 다음 오리지널 작품 공개 전까지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정주행을 마친 메뚜기 이용자는 공백이 생기면 가차 없이 새로운 플랫폼을 찾아 떠난다. 소비자가 눈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연이어 선보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될 만큼 OTT가 많아졌다. 그만큼 구독자들을 묶어두기 위한 OTT의 간절함도 커지는 것 같다. 국내 OTT 업계에서는 구독자들을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 순차 공개가 조금 더 선호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주도하고 최근 웨이브와 디즈니+가 실험에 나선 전체 공개는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짧고 굵게’ 정주행 후 떠나는 메뚜기 이용자들 공략에 대응할 수 없다. 반면 순차 공개는 메뚜기 이용자 공략에 상대적으로 유리하지만, 몰입도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국내 OTT 시장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대형 OTT가 시장을 장악하던 초창기와는 크게 달라졌다. 토종 OTT 티빙과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가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디즈니+와 애플TV+ 등 후발 주자들은 한국을 ‘미디어 격전지’로 꼽으며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글로벌 OTT들은 “한국에서 먹히면 세계에서 먹힌다”는 데 입을 모은다. 콘텐츠 자체에 대한 품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가장 적합한 공개 방식을 찾기 위한 국내외 OTT의 고민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