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소기업 R&D 지원 요건 완화, 자본잠식·부채율 1,000%여도 ‘OK’

높은 R&D 비중 대비 실효성 떨어지는 지원책, 재무적 결격 사유 완화해 개선 부정행위 검증, R&D 계획 변경 유연화 등 관리감독 중심 개혁 방안 제시 실질적인 혁신 효과는 의문, 보다 현실성 있는 제도 개선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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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중소기업 R&D 제도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는 기술 역량이 있지만 재무적으로 열악한 중소·벤처기업도 정부의 R&D 지원 사업에 신청할 수 있도록 결격 요건을 완화하고,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지원 기업 선정 시 성과 없이 반복적인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기업을 단속하는 등 조직적인 부정행위를 철저히 검증할 예정이다.

기업의 연구 환경 변화에 맞춰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R&D 계획 변경도 사전 승인에서 사후 보고 방식으로 변경하며, 보고서 제출 기일 위반 등 사소한 부주의나 불가피한 파산·폐업에 따른 과제 중단은 연구비 전액 환수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이다. 단, 인건비 착복과 허위 거래 등 부정행위는 대표자·연구책임자 추적 관리 등으로 엄격히 관리한다.

정부 R&D 지원 비중 꾸준히 증가

국내 스타트업은 정부의 R&D 지원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1997년 우리 정부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며 일정 요건을 갖춘 벤처기업을 지원 대상 기업으로 확인하고, 이들 기업에 대해 자금, 기술, 인력, 입지 등을 집중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 지원 금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2020년에는 연구개발비 중 정부・공공 자금이 21조 5,812억원(23.2%)까지 늘었다.

사진=KISTEP

벤처기업은 고질적인 기업과 투자자 사이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자본시장에서 자체적인 자금 조달이 어렵다. 벤처기업이 보유한 기술 대부분이 무형자산인 만큼 외부에서 그 시장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고, 투자자들이 선뜻 투자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결국 역선택(Adverse Selection, 의사결정이나 위험관리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시장에서 저품질 상품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며 역량 있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고질적인 자금난 속, 국내 벤처기업은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성장 및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 당장의 생존에 목매야 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역량이 있는 기업이라도 시장 구조상 자금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R&D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정부 역시 스타트업 생태계 및 혁신 기술의 발전을 위해 지원 규모를 계속해서 늘려갈 수밖에 없다.

비효율적인 정부 R&D 지원책

하지만 기존 정부의 R&D 지원책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부채비율이 1,000% 이상이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은 R&D 지원 사업에 신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무 요건을 적용하지 않고 선정한 2020년 250개 시스템반도체·바이오·미래차 스타트업 중 105개(42.7%)는 재무적 결격 요건으로 R&D 지원사업에 신청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뜻 보면 재무 상황이 위태로운 기업의 지원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기준 아래에서는 상황전환우선주(RCPS) 조건으로 투자를 받은 기업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상환전환우선주(RCPS)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 채권이다. 기업들이 RCPS 투자를 받을 경우 이는 회계적으로 부채로 인식되며, 부채 비율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투자를 받았음에도 오히려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규제가 ‘초기 단계 기업’이라는 스타트업의 근본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R&D 사업은 미래의 기술 발전 및 매출을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에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이어갈 만한 자금 여유가 없다.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발전을 위한 기반이 없는 셈이다.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가 오히려 높은 부채율, 자본잠식 등의 이유로 R&D 지원을 규제할 경우, 기술력 있는 기업이 시장에서 탈락하는 시장 실패가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한 지원 사업의 효율 하락은 수치로도 관찰된 바 있다. 실제 정부의 R&D 예산은 2019~2022년 연평균 13.3% 증가했지만, 사업화 성과는 최근 5년간 연평균 4.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기부 R&D의 사업화 성공률도 2017년 이후 50% 수준에서 정체된 상태다.

관리감독 위주의 혁신, 실효성 ‘의문’

중기부는 이번 제도혁신 방안의 중점을 엄격한 관리에 두었다. ‘기술의 활용 가능성’ 중심 평가 및 정성적 성능지표 인정을 통해 ‘좀비’ 기업을 거르고, 인건비 착복과 허위 거래 등 부정행위를 추적 관리하는 등 ‘관리’를 통해 사업 효율을 향상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부정행위 검증 등을 ‘혁신 방안’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에는 의구심이 남는다.

관리가 엄격해지면 기업의 서류 보고 요구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를 수리 및 검토하기 위해서는 추가 인력 등 각종 비용이 소모된다. ‘제도 혁신’을 거쳤음에도 오히려 지원 절차가 복잡해지고, 정부와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는 왜곡된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기업들이 현재 처해 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한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