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OTT 메뚜기족과 파트 쪼개기

몰아보기, 배속시청, 건너뛰기 등을 이용하는 ‘메뚜기족’들 약 40% OTT 업계 수익성 악화에 ‘파트 쪼개기’로 메뚜기족 방지 전략 내놓아 유튜브 통한 요약본 흥행에 메뚜기족 방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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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전성시대다. 드라마 본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온 가족이 TV 앞에 앉아 방영시간을 기다리던 이른바 ‘본방사수’가 옛말이 된지 이미 오래다. 요즘은 OTT를 단기로 가입해 ‘몰아보기’, ‘배속시청’, ‘건너뛰기’ 등으로 드라마를 소비한다.

OTT 플랫폼이 드라마 시청의 주요 창구로 확대되는 만큼, 가격 부담 등의 이유로 최근 화제작만 ‘몰아보기’를 이용해 빠르게 시청한 뒤 요금제를 해지하는 시청자들도 늘어났다. ‘OTT 메뚜기족’들의 등장이다.

2017년 넷플릭스의 ‘몰아보기’ 시청자 보고서/사진=넷플릭스

OTT 메뚜기족, 영업이익률에 치명타

지난해 5월에 발표된 오픈서베이 ‘OTT 서비스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OTT 이용자 59%는 구독을 지속 유지하는 ‘충성 이용층’인 반면, 41.0%는 최초 가입 후 서비스를 해지하고, 재가입하는 구독 행태를 보였다. 응답자들은 가입을 지속하는 이유로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잘 업데이트돼서(48.6%) ▲해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41.2%) 등을 언급했고, 가입하지 않은 서비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는 대답이 70%에 육박했다. 이 중 30.8%는 실제 가입으로 이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메뚜기족’이다. 기존의 TV를 통한 드라마 방송과 달리, OTT에서는 시즌 전체를 몰아보는 것이 가능한만큼, 관심사인 콘텐츠를 보기 위해 OTT 서비스에 가입한 다음 시청이 끝나는대로 서비스를 해지하는 것이다. 최근 경영난으로 기업 존속 위기에 처한 왓챠의 경우도 지난해 8월 기준 가입자는 100만명에 육박했으나 3개월 이상 장기 가입을 유지하는 고객은 절반 남짓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사정은 시장 선두업체인 넷플릭스와 국내 OTT 플랫폼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몰아보기 후 갈아타는 메뚜기족 잡기 전략

넷플릭스는 콘텐츠 공개일에 전 에피소드를 한 번에 공개하는 전략을 바꾸는 중이다. ‘몰아보기(Binge-watching, 빈지뷰잉)’을 막기 위한 선택이다.

지난 5월에 공개했던 ‘기묘한 이야기’ 시즌4의 경우, 5월과 7월에 두 차례 나눠 공개했고, ‘종이의 집’ 파트5 역시 9월과 12월에, ‘피어 스트리트 파트’ 3부작은 7월 중 3주에 나눠 공개하는 방식으로 일괄 공개 방침을 바꾸는 중이다.

경쟁사인 HBO맥스는 코미디물 ‘앤드 저스트 라이크 댓(And Just Like That)’을 주차별 공개하기로 결정했고, 디즈니+도 ‘로키(Loki)’, ‘팔콘과 윈터 솔져(The Falcon and the Winter Soldier)’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주차별 공개를 선택했다.

넷플릭스는 야심작인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의 1부를 1월에, 2부는 3월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야기 구조상 심각한 학교폭력을 겪었던 피해자가 10년을 기다려 하나씩 응징하는 내용인만큼 2부는 시간적 간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나, OTT 업계 관계자들은 결국 메뚜기족을 막기 위한 방침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몰아보기가 낳은 시청 행태 바꿀 것이라는 전망도

일각에서는 몰아보기 탓에 ‘배속재생’, ‘자막설정’, ‘건너뛰기’ 등이 나타났던 것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내놓는다.

몰아보기로 시청량이 많아지는 것이 역으로 시청자에게 ‘봐야 할 내용이 너무 많다’는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상세한 이야기를 다 따라가지 않고 주요 내용만 빠르게 시청하는 양태가 최근 부상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의 경우, 전편을 10초 건너뛰기, 고속 재생 등으로 8시간 드라마를 5시간 미만에 봤다는 후기가 많다.

넷플릭스가 이용자 편의를 목적으로 속도 조절 기능을 내놓자 당시 영화계는 작품성의 훼손이라며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자막 읽기가 확대되면서 음량을 꺼넣고 보는 경우도 역시 영화계 관계자들에게는 탐탁치 않은 시청 습관이다. 창작자들 입장에서는 배급사가 콘텐츠 제공 방식을 함부로 바꿀 경우 작품성이 왜곡되어 시청자들에게 소비될 수 있다는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에피소드 일괄 공개에서 ‘파트 쪼개기’ 방식의 부분 공개로 OTT 플랫폼들의 전략이 수정될 경우, 시간적 여유가 있는만큼 주요 장면들이 모두 소비될 것이라는 기대에 영화계 관계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유튜브

요약본 공급 증가로 메뚜기족 방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와

업계의 기대와 달리, 유튜브를 통해 요약본을 빠르게 훑어보는 시청자의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영화와 드라마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 ‘어바웃타임’의 ‘수리남 한방에 몰아보기’는 1,000만 회를 넘어섰고, JTBC 드라마에서 제작한 ‘재벌집 막내아들 1∼3화 하이라이트’ 영상은 조회수 72만 회, 4~6화의 경우는 백만 회를 넘긴 상태다.

유튜브 요약본 시청을 선호하는 A씨는 “1시간이 넘는 드라마를 보기엔 시간이 없어서 유튜브에서 드라마 요약본을 선호한다”며 “유튜브에서 드라마를 보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중요한 부분만 볼 수 있어서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재벌집 막내아들’을 일괄 하이라이트 시청으로 봤다는 경험담과 함께, “밤 늦게까지 다 보고 있을 수가 없었는데 요약본 덕분에 회사 동료들과 대화 나누는데 무리가 없었다”는 요약본 시청담을 털어놨다.

OTT 업계 전문가들은 파트 쪼개기로 메뚜기족이 일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반대로 요약본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나면서 여러 드라마들을 동시에 ‘몰아보기’하는 시청 행태가 나타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후반부와 ‘더 글로리’의 전반부를 1월에, ‘더 글로리’의 후반부와 3월 이후에 나오는 신작 드라마를 4월에 함께 몰아서 소비하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재벌집 막내아들’이 12월에 종영되었으나 1월까지는 요약본을 보고 기다리거나, 혹은 전반부는 요약본을 보고 후반부를 OTT 서비스에 가입해 보는 형태를 말한다.

수익성 하락에 곤혹을 치르고 있는 OTT 업계가 시청자들과의 ‘창과 방패의 싸움’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