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노조 잡기’에 힘 쏟는 우리나라 노동 개혁, 이대로 괜찮을까

韓 연평균 근로손실일수 38.5일, ‘강성 노조’ 불법파업 개혁 주장 거세져 낡은 법이 낳은 강성노조·노동시장 경직성, 노동개혁 위해서는 법률 개정 급선무 미래연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 노조 미가입 노동자 보호하긴커녕 궁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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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간 노조’, ‘파업’ 관련 키워드 클라우드 / 본사 DB

노동 개혁을 위해 불법 파업의 중심인 ‘강성 노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불법 행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는 추세다.

지난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분규 건수는 전년보다 10.1% 증가한 131건으로 집계됐다. 근로손실일수는 2021년보다 27.3% 줄어든 34만 3,000일(잠정)로 파악됐다. 근로 손실일수는 노사분규가 직접적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일수로 측정한 지표로, 하루 근로 시간(8시간) 이상 조업이 중단된 노사분규 발생 사업장을 대상으로 산출한다. 2012~2021년 한국의 임금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는 38.5일로, 일본(0.2일)의 190배 수준이다.

‘불법 파업’에도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단, 이 통계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화물연대가 지난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강행한 두 차례의 ‘집단 운송 거부’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근로손실일수는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의 쟁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측정한 지표인데, 화물연대는 통상의 노동조합과 달리 노동조합법상 설립 신고 및 교섭·노동 쟁의 절차 등을 거치지 않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시 파업으로 산업계가 입은 피해 규모가 1차 파업 때 2조원, 2차 파업 때 4조원 규모라고 추산했다.

지난해 5월 현대제철 노조는 충남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점거했으며, 2월에는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2021년에는 현대제철 협력사 노조가 당진 공장을, 2020년에는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전남 동부·경남 서부지부 간부들이 광양시청을 점거했다. 하지만 이처럼 강성노조의 ‘불법 파업’이 발생한다고 해도, 현행법상 책임을 물을 곳은 없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에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사용자 측 대응력 향상을 위한 대체근로 허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파업 중 대체근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유일한 나라다. 프레이저 재단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4.8점에 그친다. 이는 전 세계 165개국 중 151위로 ‘꼴찌’에 가까운 수준이다. 경직된 노동시장이 파업의 피해와 심각성을 한층 가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강성 노조’ 문제의 근원으로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지목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운동의 골자를 단체 협상과 임금 투쟁 등에 두고 있다. 당시 ‘공장 근로자’ 중심으로 제정된 법률이 노동시장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비판을 받는 쟁의행위 시 대체근로 금지, 점거 시위 등도 현행 노동법으로부터 시작된 문제다. 산업화 시대 제정된 법률과 현대 노동시장 사이 괴리가 노동시장 전반의 문제를 야기한 셈이다.

노조 파업 잡으면 경제 강대국 된다?

윤 대통령은 노동 개혁을 추진하며 노조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동자보다 기업의 시각으로 노동시장 개혁 문제에 접근하며, 노조가 가진 힘을 빼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성노조의 문제점에만 주목하며 진행되는 ‘노조 잡기’ 노동 개혁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리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노조의 파업이 무조건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영국에서는 간호사와 구급대원, 철도와 배달 노동자 등 공공부문 필수 인력들의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다. 영국 철도해운노조(RMT) 소속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며 전국의 기차 운행이 약 80% 중단됐고, 조합원 8만 명 규모의 영국 최대 운송 노조 아르엠티(RMT)가 11월부터 3개월에 걸쳐 총 4번의 48시간 파업을 진행했다. 우체국 노동자를 대표하는 통신노조(CWU)는 배달 수요가 몰리는 성탄절 기간이 포함된 12월 파업을 단행했으며, 국민보건서비스(NHS) 간호사·구급대원들은 106년 만에 최대 규모의 파업을 선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사회 전반의 파업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잦고 강도 높은 파업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GDP 기준 세계 6위 경제 강국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낮은 노동생산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이중구조가 노조의 잦은 파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노조가 우리나라가 G5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비 노조 파업이 잦은 영국, 프랑스가 경제 강대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주장에는 명백한 모순이 존재한다.

문제는 일부 ‘강성 노조’, 취약층 지켜야

본래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회사에 맞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당한 수단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노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사측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노동권)을 규정한 노동조합법이 강성노조를 키우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법은 사용자 측의 부당노동행위는 엄격히 규정하지만, 노조 측의 부당행위에 대해선 별다른 규정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노동시장의 문제는 ‘노동조합’ 자체가 아니다. 일부 대기업·정규직 강성노조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주장대로 노동 개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개혁 과정에서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득권을 유지하고 사익을 챙기기 위해 움직이는 일부 노조라는 의미다.
지난 7일간 노조’, ‘파업’ 관련 키워드 네트워크/본사 DB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강성노조에 유리하고, 취약계층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노동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근로 시간 유연화와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혁을 골자로 하는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는 1주 단위로 관리되는 연장근로 시간을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다양하게 관리할 수 있게 허용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해당 권고안이 실행될 경우, 특정 주에 52시간(정규 근로 시간 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이상 근로가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근로 시간 유연화는 노조 밖에 있는 취약계층 노동자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 노조가 반대 의견을 내비치는 경우, 기업은 사실상 근로 시간 유연화를 도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중소기업 직원이나 비정규직 직원은 이에 대한 거부 의견을 내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취약층을 비자발적 실업으로 내몰지 않도록,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 개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