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비시장성 자산 가치 평가 기준 강화, 벤처캐피탈 업계도 긴장 중
올해부터 비시장성 자산 평가 매년 1회 이상 시행해야, 공정성 위해 평가 방식도 규정 비상장 VC는 가이드라인 확대 적용 가능성에 긴장 중, 실적 부담 커질까 얼어붙은 벤처투자 시장, 가이드라인이 악재가 될까
4일, 투자업계를 통해 지난 1일을 기점으로 금융당국이 ‘비시장성 자산 공정가액 평가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시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비상장주식·사모사채·메자닌과 같은 비시장성 자산의 가치 평가를 할 때 적용되는 강화된 기준으로, 금융당국이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TF(태스크포스)를 결성하여 만들었다.
가이드라인 적용 범위는 일반 사모펀드 및 공모펀드로 한정됐다. 운용사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일반 사모펀드 및 공모펀드에 편입된 비시장성 자산을 상대로 해마다 최소 1회의 주기적인 평가,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수시 평가를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추후 가이드라인의 적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TF 논의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을 벤처투자조합 등으로 확대 적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라며, “추후 시장 상황에 따라 확대 적용할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공정한 비시장성 자산 평가 위한 가이드라인, 사모펀드 인식 개선 기대도
가이드라인 시행 전에는 운용사가 자체적으로 펀드에 편입된 비시장성 자산의 가치를 공정가액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운용사의 가치 평가 방식과 절차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 왔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선, 기존에 없었던 일반 사모펀드의 비시장성 자산 평가 주기가 정해졌다. 일반 사모펀드는 비시장성 자산을 최소 연 1회 이상,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수시로 진행해야 한다. 단, 투자자의 이익에 해가 되지 않고 이해가 상충되지 않는다면 주기적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아울러, 평가의 충실성을 위해 운용사가 평가사에게 공정가액 평가에 이용되는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자산의 유형에 따른 공정가액 산정 방법 역시 별개로 정했다.
작년 5월 TF가 결성됐고, 12월 20일 가이드라인 제정 소식이 전해졌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펀드 편입 비시장성 자산의 공정가액 평가 원칙과 방법 등을 제시함으로써 운용사 평가 과정의 투명성이 개선되고, 공정가액의 신뢰성도 제고돼 사모펀드에 대한 시장 인식도 점차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가이드라인 확대 적용 가능성에 비상장 VC 긴장 중
그러나 비상장 VC들은 가이드라인의 시행을 반기지 않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확대 적용된다면 여러모로 큰 부담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현금흐름할인법(DCF)에 기반한 기대현재가치법·마일스톤 접근법 등을 기준으로 자산의 정기적 가치 평가를 시행해야 한다. 금융지주 계열사나 상장 VC들은 이미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가치 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비상장 VC는 일반적으로 투자 시점의 지분 취득 원가를 기준으로 공정가액을 산정하기 때문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가치가 최근 들어 급락한 것 역시 비상장 VC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시장 상황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지만, 정기적 가치 평가를 시행한다면 고스란히 실적에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가치 줄지어 폭락 중, 벤처 투자 심리 더 악화될 수도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인 서울거래소 비상장에 의하면 ‘토스’를 운용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의 기업 가치는 작년 초 20조원을 넘어섰지만 현재 5조7,80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컬리의 기업 가치 역시 2021년 말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 당시에는 4조원대로 평가됐지만 현재는 1조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다른 스타트업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 이후 찾아온 경기 침체와 더불어, 금리가 인상되면서 주가가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스타트업들은 투자자 확보를 위해 목표로 삼았던 기업 가치를 큰 폭으로 낮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유치를 하지 못한 기업들은 경영권을 매각하겠다는 결정까지 내리면서 생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확대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니, 엎친 데 덮친 격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피투자사와 투자사 간 협상으로 결정된 자산 가치를 금융당국이 공정한 가치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나 다름없다”라며 “벤처투자조합을 운영하는 동안 매번 평가로 자산 가치가 흔들린다면 제대로 벤처 투자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전하기도 했다.
공정한 가치 평가를 추구한다는 금융당국의 의도는 좋지만, 그 시점이 과연 적합한지는 의문이 든다. 자체적인 가치 평가 능력이 부족한 비상장 VC들은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기 위해 회계법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추가적인 비용 지출로 이어진다. 금융당국의 이번 가이드라인이 스타트업 시장의 침체를 부채질하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