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펀드 출자 급감, 이제는 ‘세컨더리 펀드’

장기적으로 금융 시장 성숙화에 기여 밴처업계 돈맥경화 완화에 특효 정부도 세컨더리 펀드에 힘 실어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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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더리(secondary) 펀드에 관한 관심이 높다. 세컨더리 펀드란 사모펀드(PEF)나 벤처펀드 등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는 펀드를 말한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회수가 어려워지며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기존 투자자와 더 저렴한 가격에 자산을 매입하려는 신규 투자자 간 창구 구실을 한다. 세컨더리 펀드 수요가 늘어나자 VC들도 관련 펀드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9일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모태펀드 출자를 받은 자펀드의 회수총액은 1조 4,439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보다 회수 규모는 금액 기준으로 54.5% 감소했으며 기업 수 기준으로는 6.4% 줄어들었다. IPO를 통한 자금회수가 어려워지고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재조정받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벤처 투자계의 중간계투, ‘세컨더리 펀드’

세컨더리(Secondary) 펀드는 직접 투자가 아니라, 벤처캐피털이나 엔젤이 보유한 주식(구주)이나 지분을 매입하는 펀드다. 세컨더리 펀드에는 기존 벤처펀드의 지분을 통째로 인수하는 컨티뉴에이션 펀드(Continuation Fund) 형태의 테일엔드 투자, 특정 출자자의 투자 지분만 인수하는 ‘LP 지분 유동화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의 구주가 거래되는 구주 세컨더리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유동성이 필요한 기존 투자자는 세컨더리 펀드에 지분을 판매해서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세컨더리 펀드는 검증된 기업 지분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한다. 기업이 직접 투자하거나 출자하는 펀드를 세컨더리 펀드와 구분하여 프라이머리(Primary) 펀드라고 부른다. 세컨더리 펀드는 프라이머리 펀드를 거래하는 펀드라고 할 수 있다.

투자자는 펀드에 출자하는 LP로써 투자하거나 개별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형태로 투자한다. 국내 세컨더리펀드는 기존 펀드의 지분을 거래하는 LP지분 세컨더리펀드와 개별 기업 주식을 매입하는 일반 세컨더리펀드 두 종류가 있다. 2015년 7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하면서, 중소기업청(현재 중소벤처기업부)의 모태펀드 출자를 받아야 세컨더리 펀드 결성이 가능하다는 의무가 완화됐다. 개정안은 세컨더리 투자 비중이 펀드의 60% 이상일 경우 중소기업청의 모태펀드 출자 없이도 펀드를 결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2016년부터 세컨더리 펀드가 크게 늘다. 세컨더리 펀드를 통한 펀드 구조조정은 운용사가 수익이 기대되는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해 펀드 만기에 구애받지 않고 후속 투자를 통해 기업 성장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펀드의 존속기간보다 기업 성장에 필요한 시간이 더 장기임을 고려할 때, 펀드의 만기 청산을 위해 매각을 강행하면 발생할 기회손실을 방지한다. 또한 민간출자자에게 중간 회수 기회를 제공해 민간 출자 확대에 이바지하는 혁신이 될 수 있다.

투자 불황에도 성장하는 이유, 자금회수 및 저가 매수… ‘알짜’

자금회수 및 저가 매수 수단으로 세컨더리 펀드가 각광받고 있다. 기존 투자와 회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유동성이 필요한 기존 투자자와 검증된 투자처를 원하는 새로운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공무원연금 등 국내 주요 LP 들도 세컨더리 펀드에 적극적이다. 이미 작년 초 우정사업본부가 2억 달러, 공무원연금이 2,700억원을 투자했다. 두 기관은 각각 2년, 3년 만에 세컨더리 펀드에 투자했다. 국내에서는 이제 막 움트는 단계지만 글로벌 세컨더리 펀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신한 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말 기준 전체 글로벌 대체투자 펀드 중 세컨더리 펀드가 약 6%를 차지했다. 펀드 모집액은 30억 달러(약 4조 2,500억원) 수준으로 20년간 6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PEF와 VC 입장에서는 세컨더리 펀드가 악화하는 ‘돈맥경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구원투수다. 2020년 이후 유동성을 기반으로 몸집을 키워온 국내 PEF와 VC들은 최근 유동성 위기로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자한 기업을 매각하거나 상장해야 펀드를 청산하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데 국내 인수합병(M&A) 시장도, 기업공개(IPO) 시장도 얼어붙어 출구가 없다. 한 PEF 관계자는 “금리가 치솟자 기존 LP들 가운데 빠른 현금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당장 M&A나 IPO를 하자니 기업가치가 너무 떨어진 상황”이라며 “세컨더리 펀드에 일부 지분을 판매하면 어느 정도 현금을 확보하면서 펀드 운용을 계속할 수 있다”라고 했다.

기업 처지에서도 장점이 있다. 펀드 만기로 인해 기존 투자자가 지분을 매각하거나, 투자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영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창업자가 본연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자금이 필요한 벤처들에게 투자금이 직접 들어가는게 아니라, 펀드들이 저가에 지분을 거래하는 시장만 활성화된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세컨더리 펀드로 인한 비상장 주식 거래 활성화는 장기적으로 금융시장의 저변에 기여하겠지만, 당장은 벤처기업들의 투자금 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태펀드는 민간에 맡긴다, 정부 관심사는 ‘세컨더리 투자 활성화’

정부도 세컨더리 투자 활성화에 나선다. 한국벤처투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컨더리 펀드 출자사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한국벤처투자는 8년 만에 LP 지분 유동화 펀드 출자사업에 착수했다. LP지분유동화펀드는 기존 벤처펀드 출자자(LP)의 지분을 인수하는 세컨더리 펀드다.

정부는 세컨더리 펀드에 출자하는 펀드의 규모를 2027년까지 1조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중소벤처기업부는 모태펀드 출자 대상을 일반 사모펀드도 출자할 수 있도록 ‘한국벤처투자 및 벤처투자모태조합 관리 규정’을 개정했다. 세컨더리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정부 모태펀드 출자사업을 신설하고 사모펀드가 벤처펀드 출자를 통해 창업·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경우 사모펀드 출자자의 주식 양도차익을 비과세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세컨더리 펀드가 주로 일반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모태펀드 출자 대상을 확대하고 벤처캐피탈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자본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2차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후기 라운드 기업의 구주 거래가 활발해졌고 VC들의 자금 회수 움직임이 커지면서 2차 펀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시장 상황에 맞춰 2차 펀드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일례로 DT&인베스트먼트는 LP지분유동화펀드 등 2차 펀드 경험이 있는 이사투자 전문인력을 영입했다. DSC인베스트먼트는 노승관 세컨더리 펀드 전 대표가 조직을 이끌 예정으로 올해 자본금 인출과 펀드 등급에 초점을 맞춘 조직을 신설했다. 이 같은 노력은 자본 회수 능력을 높이고 2차 펀드 투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