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식 투자로 손실 입힌 VC에 소송 가능’ 美 증권거래위원회 규칙 도입 움직임, 국내 투자 시장도 영향받나
SEC, 벤처캐피탈 무분별한 투자 제동… ‘투자 손해 소송’ 4월 도입 예고 벤처투자업계 “스타트업 투자에 큰 장애물” 강력 반발 국내도 올해 벤처투자법 개정, VC 관리감독 강화 추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벤처투자회사인 벤처캐피탈(VC)의 묻지마식 투자 행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블룸버그 등 복수의 외신들은 “SEC는 VC가 검증되지 않은 스타트업에 무리하게 투자해 투자자가 손실을 입을 경우, 투자자가 V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SEC는 VC가 신탁 의무를 위반해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치고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계약을 금지하는 규칙을 도입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예컨대 VC가 투자자와 계약 당시 체결했던 의무를 위반하는 식으로 무분별한 투자를 벌여 투자자에 손해를 입힌 경우, 투자자는 V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SEC가 검토하는 규칙은 지난해 미국 최대거래소 FTX가 파산하면서, FTX에 투자했던 VC 세콰이와캐피탈이 투자금 전액을 손실 처리했던 데에 관한 후속 조치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당시 세콰이아캐피탈을 두고 “투자자나 기관의 돈을 받은 VC들이 리스크를 관리하지 않고서 무분별하게 벤처 투자를 벌여 투자자 손해가 막심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SEC는 사모펀드나 벤처투자 업계의 투명성과 책임을 강화하고, 투자금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규칙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규칙은 이르면 오는 4월 투표를 거쳐 도입될 예정이다.
미국 VC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벤처캐피탈협회(NVCA)는 “규칙이 통과되면 대부분 투자 행위에서 소송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발표했다. 이어 “해당 규칙은 투자시장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 VC의 핵심업무인 스타트업 투자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VC는 투자기업이 경영을 잘하고 있는지 관리하는 업무를 하는데, SEC의 새로운 규칙이 통과되면 VC가 스타트업에 관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게 NVCA의 입장이다. 규칙이 도입되면 VC를 상대로 한 투자자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실리콘밸리 VC 투자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규칙이 통과되면 반드시 VC를 고소할 것”이라며 “VC가 투자기업을 제대로 관리하고 감독하지 않아 손실을 더 키운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제재 실효성 없다” 비판에 국내 벤처투자법 개정안 4월 발효, VC 투자 공시 의무 강화
변화하는 미국 벤처 업계의 VC 규제 움직임이 한국에서도 일어날지 관심이 쏠린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 SEC가 예고한 규칙보다 VC 투자 행위에 타격을 주진 않는 수준이지만, 벤처투자업체인 액셀러레이터(AC)와 VC의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 개정안이 올해 초 공포된 만큼 VC의 투자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당국의 입김도 강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시행은 공포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하는 4월 3일부터다. 개정안은 초기창업기업에 대한 평균 투자금액과 전문보육 현황 등 그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고시로 위임하던 공시항목을 법률로 상향 규정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개정안이 공시의무를 강제성을 높여 스타트업과 투자업체 간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하고 스타트업이 우수한 AC와 VC를 선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벤처투자법에 따라 국내 VC는 매달 조직과 인력, 재무와 손익, 조합의 투자 운용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 등을 관리·감독 기관인 중기부에 보고한다. 중기부는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지, 투자금지 업종에 투자하지는 않았는지, 특수관계인 거래나 사익편취,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는지 살피고 법규 위반을 발견하면 제재를 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한 해 동안 약 15곳의 VC가 처벌을 받는다. 사안이 경미하면 주의조치로 끝나지만 위반내용이 명백할 경우 경고나 시정명령이 내려진다. 조치를 받은 VC는 6개월 이내에 한국벤처투자가 진행하는 모태펀드 출자사업에 지원할 수 없다.
하지만 벤처업계에선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다수다. 시정명령을 받은 VC가 기한 내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최대 1년까지는 버틸 수 있고, 기존에 조성한 벤처펀드에 기대어 경영상 차질도 최소화할 수 있다. 모태펀드 외에 다른 출자사업에는 참여해 투자 활동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한국성장금융과 산업은행과 같이 VC에 투자금을 대는 대부분 유한책임출자자(LP)는 VC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법규를 위반했는지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대부분의 국내 VC 펀드에 모태펀드 같은 국가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VC를 효율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