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서 철수한 휠라와 푸마, 무신사vs네이버 2차전 시작되나?
무신사 요구에 네이버에서 철수한 휠라와 푸마? 코로나19 팬데믹 완화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의 소비트렌드 변화 사업영역 충돌에 경쟁 본격화된 것, 살아남을 온라인 플랫폼은 어디?
지난 20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휠라코리아와 푸마코리아가 최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휠라는 현재 스토어 내 모든 메뉴를 삭제했으며 푸마는 전 제품을 매진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무신사나 여타 오픈마켓 등 다른 플랫폼에서 정상 판매 중인 점을 고려할 때 네이버쇼핑에서 의도적으로 제품을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형 패션브랜드가 네이버쇼핑에서 철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두 패션브랜드는 모두 휠라와 푸마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합산 10만 명이 넘는 고정 알림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철수 배경에 무신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두 플랫폼 간 갈등으로 경쟁회사에 입점하는 것을 눈치 볼 수밖에 없다”면서 “브랜드 입장에서는 무신사, 네이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무신사, 2022년 초부터 시작된 잘못된 만남
패션업계를 둘러싼 화두를 물었을 때 사람들은 단연 ‘물건이 진품인지 가품인지의 여부’라고 답할 것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brand originality가 침해된다면 그만큼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상품의 디테일에 온 신경을 다하고 있다. 이러던 와중 2022년 초 희대의 가품 논란이 발생했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중고 거래 플랫폼 크림에서 무신사가 판매한 티셔츠가 가품이라는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무신사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 1위로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편집샵이다. 크림(KREAM)은 네이버가 중고 거래 플랫폼 시장에 뛰어들며 시작한 브랜드로 리셀러(되팔이)들을 위한 전용 플랫폼이다. 두 브랜드 모두 자체 검수팀을 운영해 철저한 제품 검수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았다. 무신사의 크림 가품 논란은 무신사 부띠크에서 에션셜 티셔츠를 구매한 소비자가 이를 리셀 플랫폼인 크림에 되팔 때, 가품이라고 판정받은 데서 발생했다. 크림이 해당 제품의 라벨과 봉제선이 정품과 다르다는 이유를 대며 판단과정과 기준을 공지사항에 올려 무신사의 제품이 가품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무신사는 해당 제품은 100% 진품이며, 자사 몰의 제품은 모두 다 진품이라고 밝혔다. 크림의 주장에 대해서는 정품 중에서도 여러 가지 상품이 존재하는데 해당 개체 간 차이로 인해 발생한 사례라고 해명했다. 또 무신사는 에센셜의 공식 판매처인 미국 유통업체 팍선(PACSUN)의 검증기관에 정품 의뢰를 거쳤으며 한국명품감정원에서도 진품임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작 한국명품감정원은 정품과 가품을 판별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해 감정 불가 판정을 내렸다. 무신사는 크림의 가품 근거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라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크림은 무신사의 주장에 5,000여 건의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오류를 지적했다, 결국 4월 에센셜 티셔츠의 제조사인 피어오브갓(Fear of God, LCC) 본사에서 생산총괄 부사장이 직접 가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에센셜 티셔츠 확인 결과 ▲라벨 봉제 방식 ▲립(RIP) 높이 및 스티칭 방식 ▲로고 ▲원단 색상 ▲브랜드 택 로고의 종이와 실 재질 등이 정품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후 무신사는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가품 판매 금액의 200%를 보상해준다고 밝히며 논란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무신사는 명품 사업에 치명타를 입었다.
무신사의 FAKE NEVER 캠페인, NAVER 겨냥했나?
이후 무신사는 지난 2월 13일 창립총회를 열어 한국브랜드패션협회를 설립하고 국내 브랜드 50여 개와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국내 패션 브랜드, 제조사, 유통사 등 50여 개 기업이 디자인 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으며, 설립 발기인엔 김훈도 GBGH 대표, 오경석 팬코 대표, 조만호 무신사 의장 등 6명이 참여했고, 위조 상품 점검 솔루션을 만드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마크비전과 특허법인 해움도 회원사로 함께할 전망이다. 젊은 층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른바 친(親) 무신사 중소 브랜드 thisisneverthat(디스이즈네버댓), Covernat(커버낫) 등은 물론 K2코리아, 에프앤에프 등 대형 브랜드도 합류했으며, 휠라코리아도 협회 창립멤버 중 하나다.
또 지난 16일부터는 국내 패션 브랜드 디자인 지식재산권 보호 및 가품 근절을 목표로 ‘페이크 네버(FAKE NEVER)’ 캠페인을 전개했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브랜드들은 패션 브랜드의 IP 침해 사례를 공유하는 ‘페이크 허브’ 웹페이지를 제작해 소비자나 패션 브랜드가 가품 피해 사례를 신고할 수 있는 제보센터를 갖췄으며, 공식 블로그와 SNS를 통해서는 캠페인 목적과 진행 상황을 알리겠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캠페인 자체가 네이버를 정조준하는 것이라며 “패션으로 유통망을 넓히려는 네이버와 수성하려는 무신사 간 경쟁은 피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캠페인 슬로건 자체도 네이버를 연상시키고, 캠페인 홈페이지 내 가품 사례에 네이버 스토어 판매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해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신사가 네이버를 견제하는 것은 사업 영역 충돌 때문으로 보인다. 네이버는 지난해 11월 버티컬 패션 플랫폼인 ‘패션타운’을 선보였다. 네이버쇼핑에서 운영하던 백화점·아웃렛·디자이너·스트릿 등 패션 카테고리를 통합한 서비스로 이전까지 흩어져 있던 브랜드 직영 몰을 하나로 모으면서 무신사 스토어, 29CM 등 무신사가 운영하는 플랫폼과 흡사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무신사 입장에서는 대형 플랫폼인 네이버에게 고객층을 내줄 수 없을 만하다. 작년에도 양사가 가품 논란으로 맞붙은 바 있는 만큼, 솔드아웃 사업에 타격을 입은 무신사가 네이버 오픈마켓을 겨냥해 이슈를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관계자는 그 시발점이 이번 휠라코리아와 푸마코리아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철수라고 짚었다. 이외에도 인기 스트리트 브랜드에 네이버 크림에서 철수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소비트렌드 변화에 발빠르게 움직인 무신사와 네이버
한편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들이 모인 한 커뮤니티에서는 지난 1분기 이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무신사 등에 입점한 브랜드를 양도한다’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입점 셀러는 “이미 주문이 줄고 매출은 바닥을 찍은지 오래”라며 고충을 드러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에 소상공인들이 유명 플랫폼에 입점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점을 감안했을 때 이커머스 시장에서 네이버·무신사 등 ‘플랫폼 공룡’들이 판매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완화되며 소비 트랜드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동하며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 추세가 빠르게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3월 온라인 쇼핑 시장 성장률은 2021년 동기 대비 11.1%로, 2017년 10월 이후 4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2021년에 연평균 성장률이 20.2%에 달하던 결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족 단위로 외출·외식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백화점, 아울렛 등 오프라인 매장은 북적대고 있다며 “온라인 시장의 성장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속도는 현저히 둔화했다”며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결정타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자영업자들의 플랫폼 입점이 늘어나며 경쟁이 과열되자 외려 셀러들이 플랫폼을 이탈한다는 원인도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무신사에서 남성복을 판매하던 A씨는 권리금 조로 1,000만원을 붙여 브랜드 운영권을 판매했다.
2022년 기준 네이버스토어의 판매자 수는 총 49만 명이며, 패션업종의 경우 무신사에 6,000여 개, 지그재그에 7,300여 개 브랜드가 입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미 플랫폼 자체가 포화상태라며 셀러들의 플랫폼 이탈 추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4대 패션기업으로 꼽히는 삼성물산, LF,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오롱FnC의 2022년 1~4월 오프라인 매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20% 늘었다. 심지어 올해까지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사는 물론 플랫폼 기업까지 오프라인 매장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무신사와 네이버의 악연(?)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각종 패션 브랜드와 제조사에서 플랫폼 경쟁에 지친 나머지 자체 오프라인 쇼핑몰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일 것이다. 대부분 이커머스 기업에 대해 대형 기업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가운데, 무신사와 네이버 양측 중 어느 곳이 온라인 패션 플랫폼을 선점할지,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