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민간 투자 확대 견인하는 CVC – ① 국내 CVC 시장의 활성화
산업통상자원부, 민관 공동출자로 2,000억원 규모 CVC 운영 펀드 조성 글로벌 시장 대비 뒤처져 있던 국내 CVC 시장, 법률 개정 이후 빠르게 활성화 CJ, 현대, 카카오 등 대기업부터 중견기업, 중소기업까지 CVC 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민관 공동출자를 통해 2,000억원 규모 기업형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 CVC)이 운영하는 펀드를 조성한다. 차후 업계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상반기 중 CVC 활성화 방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산업부는 15일 서울 강남구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서 황수성 산업기반실장 주재로 CVC 활성화를 위한 업계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CVC 펀드는 대·중견기업이 기술혁신 스타트업을 발굴해 자금 투자 및 사업화를 지원하는 펀드다. CVC를 운영하는 대·중견기업은 신사업 진출 기회를 모색할 수 있고,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은 사업화 동반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업부는 올해 민관 공동출자로 CVC가 운영하는 펀드를 2,000억원 규모로 조성하는 한편, CVC가 투자한 기업에 우선적으로 투자 연계 연구개발(R&D) 사업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대기업-스타트업 상부상조 이끄는 ‘CVC’란?
CVC는 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털(VC)로, 일반적인 VC와 달리 모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보탬이 되도록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기업이 CVC를 별도로 설립하는 것은 미래 인수합병(M&A) 후보군을 확보해 기술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다.
CVC를 보유한 대기업은 신생 벤처기업 시장 현황을 상시 점검하게 된다. 사업에 필요한 기술 및 상품을 보유한 스타트업 발굴이 한층 용이해지며, M&A에 착수하기도 수월해지는 셈이다. 스타트업에도 CVC의 투자는 반가운 일이다. 금전적 지원 이외에도 다방면에서 투자자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글 CVC인 구글벤처스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경우, 차후 구글의 네트워크에 편승해 서비스를 한층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
CVC 투자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구글벤처스, 세일즈포스닷컴의 세일즈포스벤처스, 인텔의 인텔캐피털 등 손꼽히는 글로벌 대형 CVC가 대부분 미국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바이두의 바이두벤처스, 레전드홀딩스의 레전드캐피털 등을 중심으로 CVC 투자가 활발한 편이다.
국내 CVC 투자 시장의 경우 비교적 뒤처진 편이었다. 지주회사가 금융과 산업 간 상호 소유나 지배를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회사로 구분되는 CVC를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1년 말 지주회사가 CVC를 설립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이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지주회사 CVC 설립 허용, 급증하는 국내 CVC
기존 공정거래법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가 금융회사인 CVC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일반지주회사의 자회사가 CVC를 계열회사로서 지배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시장에서는 이에 따라 지주회사 체계로 전환한 대기업의 투자 활동이 제한되고, 벤처투자 활성화에 제약이 생긴다는 지적이 제기되어왔다.
VC는 단순 금전적 투자를 넘어, 스타트업의 사업을 성장시키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따지자면 재무적 투자자(FI)보다 전략적 투자자(SI)에 가까운 셈이다. 재무적 투자자는 오로지 재무적 이익(배당, 시세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투자자를 말하며, 전략적 투자자는 기업이 인수, 합병하거나 대형 개발 사업 등을 벌일 때 자금을 지원하는 투자자를 말한다. 지주회사의 CVC 설립 제한이 스타트업 시장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VC의 고도화를 막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정부는 2020년 12월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허용 등을 포함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1년 후 2021년 말 해당 법안이 시행됐고, 오랜 기간 논쟁의 대상이었던 CVC에 대한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됐다. 소재부품장비 투자기관협의회(KITIA)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가 허용된 지 1년 만에 CVC의 평균 자산 운용 규모는 4,000억원을 돌파했다.
너도나도 CVC 품기 시작한 국내 기업들
이후 기업들이 앞다퉈 CVC를 설립하며 시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5대 그룹부터 중견 제조기업, 갓 상장한 중소기업까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CVC 투자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2021년 교보생명은 교보증권과 2,000억 원 규모의 ‘교보신기술투자조합 1호’ 펀드를 결성하고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 추진의 첫발을 디뎠다. 펀드는 향후 8년간 운용되며,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지원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에는 1,500억원 규모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펀드를 추가 조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5월 GS그룹이 설립한 CVC인 GS벤처스는 1,300억 규모 펀드를 만들고 같은 해 8월부터 본격적인 스타트업 투자에 착수했다.
CJ그룹은 지난 2011년 공정거래법에 따라 씨앤아이레저산업에 매각했던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를 되사들이고, CVC인 CJ인베스트먼트로 출범시켰다. CJ는 CJ인베스트먼트를 통해 향후 5년간 4,000억원을 신규 출자하고, 스타트업 투자 확대를 통해 문화(Culture), 플랫폼(Platform), 웰니스(Wellness),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등 4대 미래 성장 엔진 중심 신성장 동력 발굴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디지털, M•E•C•A, 로보틱스 등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00년부터 CVC 활동을 펼쳐왔다. 현대차의 CVC 조직은 별도 법인이 아닌 현대차 오픈이노베이션본부 산하에 있다. 투자가 실제 사업으로 연계되고, 현대차가 중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효과를 내기 위해 CVC팀은 물론 스타트업과 직접 협업하는 사업부, 재경·기획부서 등 전사가 CVC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카카오벤처스도 완전한 형태의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전환을 추진한다. 카카오벤처스는 향후 신규 펀드를 모회사인 카카오와 카카오 계열사의 자금만으로 결성할 예정이다. 하지만 완전한 CVC로의 전환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벤처스의 2012년 설립 이후 운용자산 규모는 3,599억 원이며, 이 중 카카오 및 자체 자금은 1,500억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외부 출자자들이 투자한 기존 펀드들의 청산이 완료돼야 CVC 전환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효성(효성벤처스), LF(LF인베스트먼트), 동원(동원기술투자), 의류회사 F&F(F&F파트너스) 등이 CVC를 설립하며 벤처투자에 대한 열의를 드러냈다. 최근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기업 자금을 등에 업고 등장한 이들 CVC는 시장의 젖줄 역할을 수행하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