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구조조정까지 단행한 그린랩스, 하지만 앞날은 여전히 ‘컴컴’
지난해 1,700억 투자받았던 애그테크 기업 그린랩스, 대규모 구조조정 단행 공동대표 3인에서 1인체제로 변모하고 투자유치 나섰지만 쉽지 않아 유통업계 ‘적은 금액으로 사업 시도한 것부터가 문제” 회생 가능할까?
지난 13일 국내 애그테크(Agtech, 농업 IT) 스타트업 그린랩스가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해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특별히 농산물 유통 등 과도한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는 사업은 중단하고 성장 중심 전략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서비스 체질을 개선할 전망이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그린랩스가 섣불리 유통업계에 뛰어들어 투자금을 낭비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무너진 그린랩스, 막대한 손실에 구조조정 단행하지만 미래는 불투명
그린랩스(GreenLabs)는 대한민국 대표 애그테크 기업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업 종사자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농업 사업전략과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의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는 그린랩스는 지난 2017년 법인 설립 이후 국내 최초로 농업 분야 기업 가치 1조원을 돌파했다. 농사를 시작하고 싶지만 경험이 없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사업계획·자금조달계획 등을 도와주고 한국형 자체 스마트팜 기술을 개발·보급해 누구든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와 더불어 생산 후 판로까지 확보한 그린랩스는 농부들이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그린랩스를 둘러싼 내홍이 격화되고 있다. 이미 60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을 구조조정한다는 소식과 함께 공동대표 3인 중 2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신상훈 대표 단독 경영체제로 바뀌었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물러난 2명의 대표는 모바일 핫딜 플랫폼 쿠차를 창업해 매각했던 안동현 대표와 옐로모바일의 중간 지주사 옐로쇼핑미디어 대표 출신인 최성우 대표로, 그린랩스의 초기 창업자들이다. 그린랩스 측은 안 대표와 최 대표가 퇴사한 것은 아니라고 못 받으면서도 “경영진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내부 직원들은 이미 혼란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이며 자금난으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한 탓에 일부 부서는 낮 12시에 업무를 정리하고 퇴근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현재 그린랩스는 추가 자금 유치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앞서 BRV캐피탈매니지먼트 SK스퀘어 스카이레이크 등에서 최소 350억원에서 1,0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지난 1년간 운영 비용 등이 크게 늘어나며 자금을 빠르게 소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외국계 투자사를 제외한 주요 주주들은 추가 투자에 난색을 표하는 중이지만, 일부 투자사들은 사업 규모 축소 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구조조정을 전제로 긴급 자금을 수혈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그린랩스 측은 올 상반기만 잘 버티면 회사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달랬다. 한 내부 관계자는 “상반기 미수 채권을 일부 회수할 것이고 긴급 자금을 통해 경영 효율화를 도모하면 충분히 회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 역시 직원들과의 긴급 미팅에서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아닌 농산물 유통 사업에 많은 인력을 투입했고, 결국 외부 자금까지 끌어오면서 리스크를 과도하게 키웠다”며 “본질에서 벗어난 의사결정을 반성하며 혼란과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농산물 유통 등 과도한 인력과 자본이 투입된 사업을 종료하고 성장 중심 전략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90만 농가를 확보한 스마트팜 솔루션 ‘팜모닝’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데이터 농업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암흑기, 잇따른 상장 철회
하지만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은 그린랩스와 다른 듯 보인다. 그린랩스는 지난해 1월 1,700억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8,000억원을 인정받았다. 대규모 자금이 수혈된 만큼 농식품 분야의 차기 유니콘 기업으로 거론되었으며 공격적으로 인재를 영입하는 등 성장 위주의 전략을 전개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업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린랩스는 농민들에게 농산물을 직접 구매한 뒤 되파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미수 채권을 채우는 금융사 대출이 어려워지며 이른바 ‘돈맥경화’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표이사 급여 전액 삭감, 직책자 수당 및 복지비용 감축 등 자구노력을 펼쳤으나 회사가 안정화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관계자들은 그린랩스가 국내 유통업계를 ‘너무 쉽게’ 보고 1,700억원이라는 적은 금액을 투자한 것부터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미 국내 유통·물류 업계의 전선에 있는 마켓컬리, 오아시스, 메쉬코리아 등의 사례를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켓컬리는 지난달 4일 결국 코스닥 상장 철회 의사를 밝혔다. 컬리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으며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을 때 상장을 재추진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컬리의 상장 연기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분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 역시 “지금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상장보다는 투자를 받아 기업가치를 올리고 시장 상황이 좋을 때 제값을 받는 편이 나은 선택이라고 본다”며 “새벽 배송으로 고비용 구조가 계속되는 상황에 증시 분위기도 나빠지면서 상장 추진을 그대로 가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컬리의 영업손실은 2020년 1,163억원, 2021년 2,177억원으로 매년 적자 규모가 늘었다. 핵심 서비스인 샛별배송(새벽배송)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며 물류센터 투자 비용과 인건비 등으로 운영비용을 키운 것이 적자의 원인이었다.
국내 증시의 첫 이커머스 상장 사례로 주목받았던 오아시스도 지난 13일 코스닥 상장 포기 의사를 밝혔다. 상장 철회의 주요 배경은 기대 가격의 절반에 불과한 예비 투자자들의 수요 가격이다. 비상장에서 17,000원대에 거래되는 주식가격을 상장 직후 30,000원대로 상향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인 수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류 업계 관계자들은 오아시스의 경우 그린랩스와 다르게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해왔기 때문에 상장 철회 이후 추가 자금 없이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인수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몇몇 물류 연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시장 전반적으로 이커머스 업체들이 줄줄이 고배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그린랩스 관계자가 밝힌 대로 상반기 미수 채권을 일부 회수해 긴급 운영 자금을 통해 경영 효율화를 도모하면 회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가장 희망적인 결과다. 이미 지난해 투자받은 1,700억원은 전부 사용한 상황에서 미수 채권을 받는다면 올 연말까지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신규 투자 없이는 부도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경영진들은 1월에 비상 경영을 선언한 이후 구체적인 대책은 일언반구도 내놓지 않고 있다. 운영 역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신 대표는 ‘데이터 농업’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지만, 만일 신규투자자들이 기존 8,000억원 밸류에이션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투자 이후 어느 정도의 밸류에이션을 제시할 것인지 물었을 때의 대안은 불투명하다.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유통업에서 손절한다고 하더라도 기존 8,000억 밸류에이션에 포함된 투자자들의 지분을 경영진에서 보장해주어야 한다. 자칫 망설이다가는 메쉬코리아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이번 그린랩스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메쉬코리아 사태에 이어 유통업계 스타트업들의 반면교사가 될 만한 사건임은 분명하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강도 높은 자구책 이후 본질에 집중하며 확실한 성과를 내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