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결국 오아시스도 상장 철회, VC들 깊이 반성해야
이커머스 최초 상장 노리던 오아시스, 수요 부진에 상장 철회 35,000원 노렸으나 수요는 비상장 거래가격인 17,000원대에 몰려 여의도 증권가에 VC 업계 밸류에이션에 대한 믿음 사라지는 중
국내 증시의 첫 이커머스 상장 사례로 주목을 받았던 오아시스마저 결국 상장을 포기했다.
13일 오아시스는 코스닥(KOSDAQ) 상장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최소 주당 35,000원을 예상했는데 수요 예측이 2만원 이하에 몰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오아시스의 비상장 거래 시장 가격은 17,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당초 기업가치가 1조를 넘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재 거래가격 기준으로 볼 때 회사의 가치는 약 5천억원이다. 반토막 가격으로 굳이 무리하게 상장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커머스 중 유일한 흑자 기업마저도 상장 포기
상장 철회의 주요 배경은 기대 가격의 반토막에 불과한 예비 투자자들의 수요 가격이다. 실제 수요 예측에 참여한 여의도 일대의 한 투자자는 “아무리 상장 프리미엄을 감안한다고 해도 비상장에서 17,000원대에 거래되는 주식을 오아시스가 요구하는 30,000원대에 들어가기 어렵지 않겠냐”며 “내부적으로도 많은 고민이 있었으나 이미 장외 시장 거래 가격이 2만원 이하로 내려간 지난달부터 사실상 오아시스에 관한 관심을 접었다”고 전했다.
오아시스는 그간 IPO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자금을 수혈해야 하는 회사’가 아닌,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는 이커머스 기업임을 강조했다. 대주주인 지어소프트는 공모가격을 낮추더라도 상장을 강행하려 했으나 재무적 투자자(FI)들이 2만원 이하로 제출된 예비 투자자들의 입찰 가격에 난색을 표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전에는 장부가액으로 회계적 처리가 가능하지만, 상장 이후에는 손실을 기록해야 하는 후기 투자자일수록 상장 반대 입장은 더 강경했다는 것이 오아시스 상장 건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기업가치를 7,500억원으로 산정하고 투자했던 유니슨캐피탈코리아가 크게 반발했다. 유니슨캐피탈코리아는 2021년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추가 매집을 통해 현재 10.41%의 지분을 보유한 3대 주주다.
기업가치 1조원을 예상하고 2021년 1월에 50억원을 투자했던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상장을 통해 최대 1,000억원의 차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상장 철회가 이뤄지며 아쉬움을 남긴 상태다.
상장 철회, 오아시스 영업에 타격은?
오아시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몇 달간 기업공개 설명회 과정 중에 밝혔던 사업들을 계속 영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약 2천억원의 자금을 조달해 물류센터 등 시설 투자에 725억원, 기업 인수에 369억원을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현재 13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최대 300만 명까지 늘릴 수 있도록 마케팅에 역량을 쏟겠다는 계획도 내놨었다. 안준형 오아시스 대표이사는 상장 철회를 밝히면서 “물류테크를 기반으로 양질의 유기농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함으로써 유기농 식품의 대중화를 이끄는 e커머스 선도기업으로 더욱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물류 업계 관계자들은 오아시스가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인 만큼, 추가 자금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사업들은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인수 전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몇몇 물류 연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시장 전반적으로 이커머스 업체들이 줄줄이 상장에 실패하는 탓에 상장을 준비 중인 타 이커머스 업체들도 고민에 빠졌다. 연내 상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던 11번가 측은 상장에 대해 현재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의도 증권사, VC들 놀음에 더 이상 놀아날 생각 없다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쏘카 상장에 뛰어들었던 대부분의 투자사를 중심으로 더 이상 벤처 투자사(VC)들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산정액)’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영업이익이 아니라 성장성을 보는 투자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높은 밸류에이션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나, 지난해 하반기 들어 쏘카 상장에서 크게 손해를 봤던 투자자들이 불만을 표현하면서 여의도 증권가 일대는 ‘VC들 놀음에 굳이 휩쓸릴 필요 없다’라는 강한 표현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쏘카 상장 시, 관계사들의 요청 때문에 손해 볼 것을 예상하고도 마지못해 일부 투자했다가 수억원의 손실을 본 한 투자자는 “VC들이 부풀리기 했던 걸 모르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라며 “거품 빠진 상태에서 거품 가격을 고집하면 결국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지난 10월의 티몬 저가 매각 등에서부터 이어진 이커머스 시장에 대한 불신인지, 벤처 업계의 밸류에이션 전반에 대한 불신인지를 확인하는 질문에 대해서 “이커머스는 물류 시장 카르텔을 깨려는 도전자들의 모임”이라며 “도전자가 자금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자금을 우리가 손해 보면서 지원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벤처 업계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면서 지난 8일에 중소기업벤처부에서 발표한 22개의 유니콘 스타트업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공유되고 있다. ‘밸류에이션 1조원 클럽’으로 불리는 유니콘 기업으로 VC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금융 시장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더 이상 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