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케어VS 롯데헬스케어 ‘기술 탈취’ 분쟁, 공정위 조사이어 법적 공방까지
알고케어-롯데헬스케어 ‘영양제 디스펜서’ 아이디어 탈취 분쟁 격화 롯데헬스케어 “제품 동일하지 않다” 반박, 알고케어는 공정위 신고·법적 대응 예고 대기업과의 분쟁 피하는 스타트업들, 리스크 떠안은 알고케어 사태에 이목 집중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와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헬스케어가 영양제 디스펜서 아이디어 탈취 논란으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롯데헬스케어 등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날 롯데지주와 롯데헬스케어, 롯데그룹 계열사 캐논코리아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 조사를 벌였다. 현장 조사 대상에 캐논코리아가 포함된 것은 롯데헬스케어가 지난 2021년 알고케어와 투자 논의를 종료한 뒤 캐논코리아에 자체 디스펜서 제작을 의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알고케어는 지난달 18일 롯데헬스케어가 투자 등을 미끼로 접근해 자사의 사업 아이디어를 탈취했으며, 이를 활용해 유사 상품을 개발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지난달 25일 공정위에 롯데헬스케어의 아이디어 탈취 건을 신고했으며, 지난 1일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도 신고를 접수한 상태다.
알고케어-롯데헬스케어 분쟁의 발단
논란의 발단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 5일에 개최된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3’이었다. 알고케어는 CES 2023에서 올해 3월 제품 출시를 앞둔 개인 맞춤형 영양제 디스펜서 ‘뉴트리션 엔진’을 공개했다. ‘뉴트리션 엔진’은 사용자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필요한 영양제를 제공하는 디스펜서로, CES에서 3년 연속 4개의 혁신상을 받으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자체 생산한 영양제를 카트리지 형태로 디스펜서에 넣으면 영양제 구성과 섭취 방식, 교체 시기 등이 자동으로 계산되며, 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영양제가 토출된다.
문제는 같은 행사에서 롯데헬스케어가 알고케어의 제품과 흡사한 디스펜서를 홍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롯데헬스케어가 선보인 ‘필키’는 ‘뉴트리션 엔진’과 유사한 카트리지 형태의 영양제 디스펜서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디스펜서에 여러 개의 카트리지를 결합하는 구조, 영양제 토출 방식 등 제품 구조와 원리가 우리 제품과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알고케어의 카트리지 디스펜서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출시된 제품이 없는 고유한 모델”이라며 “알고케어가 개발하고 있던 시제품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가 투자 및 사업 협력 목적으로 알고케어에 접근한 뒤 사업 아이디어를 베꼈다는 입장이다. 앞서 2021년 9월 롯데헬스케어가 알고케어에 제안한 투자 건은 한 달 만에 전면 무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롯데헬스케어는 제품 개발 계획이 전혀 없으며 자사 플랫폼에 알고케어의 제품을 도입하거나 투자하고 싶다고 접근한 뒤 우리 제품과 사업 전략 정보를 획득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접촉 이후에는 자체 제품을 제작하겠다면서 라이선스피(License Fee)를 주겠다는 내용으로 말을 바꿨다”고 밝혔다.
입장 충돌 속 격해지는 공방전, 중기부의 개입
하지만 롯데헬스케어는 이 같은 알고케어의 주장에 전면 반박했다. 롯데헬스케어 측은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제공은 헬스케어 산업이 롯데그룹 차원의 신성장 동력으로 선정된 시점부터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사업”이라며 “알고케어와 투자 논의가 종료된 이후 사업 방향에 맞는 자체 디스펜서를 제작하기로 했고 시중 약국에서 사용하는 ‘전자동 정제분류 및 포장 시스템 기계’를 참고해 디스펜서와 카트리지를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알고케어가 CES에 참가하기 전부터 이미 해외에서는 개인 맞춤형으로 영양제 등을 추천하고, 디스펜서를 활용해 섭취하는 모델이 소위 ‘정수기’처럼 일반적인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또 롯데헬스케어는 자사 제품과 알고케어의 제품이 전혀 동일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알고케어는 제품 정보를 담은 메모리칩을 카트리지 내에 삽입해 생산하는 반면, 롯데헬스케어는 유통업계에서 흔히 쓰고 있는 전자태그(RFID) 스티커를 활용해 카트리지 내 영양제 정보를 인식했다는 것이다. 롯데헬스케어는 “RFID 스티커는 유통업계의 바코드 스티커와 유사한 개념으로 제품 성분과 유통기한 등 일반적인 정보가 포함돼 있다”면서 “교체 시기 알람이나 자동 배송, 영양제 잔량 트래킹 등을 메모리칩에 담는 방식인 알고케어의 핵심기술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양 사의 입장이 상충하며 분쟁이 격해지자 중소벤처기업부가 기술 침해 행정조사 전담 공무원과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소속 변호사를 파견해 임의조사에 나섰다. 이후 지난 1일 알고케어는 중기부에 롯데헬스케어의 아이디어 탈취 여부를 조사해달라며 정식으로 신고를 접수했다.
중기부는 해당 논란이 불거진 직후 “피해 기업이 기술 침해 행정조사와 기술 분쟁 조정을 신청할 경우 신속히 조정이 성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조정 불성립 시 소송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중기부에 (롯데헬스케어의 아이디어 탈취를) 신고했다. 앞으로 특허청 신고, 중기부 조정 신청, 형사 고소, 민사소송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롯데헬스, 논란 발생 이전부터 ‘특허심판’ 청구
한편 롯데헬스케어가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3’에서 문제가 된 영양제 디스펜서 ‘캐즐’을 공개하기 전 알고케어를 상대로 관련 특허심판을 청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논란이 가중됐다. 업계에 따르면 알고케어는 지난달 롯데헬스케어가 제기한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송달서를 받았다. 롯데헬스케어가 청구한 특허심판 제품은 2020년 10월에 등록한 ‘영양제를 제공하기 위한 디스펜서 장치’인 것으로 확인됐다.그러나 롯데헬스케어가 특허심판원에 해당 심판을 청구한 것은 지난해 12월 29일로, 이는 알고케어가 CES 2023’에서 롯데헬스케어의 캐즐을 확인한 1월 5일 이전의 일이다.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은 특허권자의 이의 제기를 예상하고 청구기업의 제품이 기존 특허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심판으로, 기업이 기술 개발 및 신제품 출시 전에 특허심판원에 청구하는 일반적인 절차다. 기술 개발을 마친 후에 기존 특허권과 유사성을 인지하고 청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부터 기존 특허를 우회할 목적으로 개발한 뒤에 해당 심판을 청구하기도 한다.
때문에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가 특허심판을 청구한 것은 아이디어 탈취 문제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 대표는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의 기술이 유사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관련 논란이 불거지기도 전에 특허심판을 청구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며 “롯데헬스케어의 주장대로 알고케어와 유사성이 없다면 특허심판을 청구할 필요도 없다”고 일갈했다.
이에 롯데헬스케어 측은 “알고케어는 지난해 5월부터 비슷한 이유로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당사의 입장은 알고케어의 핵심기술을 도용한 바 없다는 것”이라며 “2023년 출시를 목표로 디스펜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알고케어와 당사 디스펜서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특허심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분쟁 진행 상황에 촉 곤두세우는 스타트업들
알고케어의 신고를 받고 현장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는 이후 롯데헬스케어가 알고케어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했는지 등을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다른 사업자 기술을 부당하게 이용해 해당 사업자 활동을 상당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방해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스타트업 업계는 이들의 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기술 탈취 의혹이 실제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과의 분쟁은 스타트업에 큰 부담이 된다. 계열사가 많고 사업 영역이 넓은 대기업은 스타트업에 있어 미래의 협력 파트너나 고객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스타트업들은 분쟁으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고, 차후 성장 기회를 잃는 것이 두려워 분쟁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분쟁 대응 자체가 큰 경제적 손실을 부른다는 점도 문제다. 직원이 10명에서 50명 수준에 그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과의 분쟁은 막대한 손해다. 법적 분쟁 등이 발생할 경우 금전적 비용은 물론 막심한 인력 손해도 발생한다. 이로 이해 제품·서비스 개발 및 투자유치 등 경영 전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키우소(농협), 생활연구소(LG유플러스), 팍스모네(신한카드) 등 몇 년 새 불거졌던 스타트업-대기업 간 분쟁 사례는 이 같은 리스크를 떠안은 스타트업들의 ‘절벽 끝 선택’이었던 셈이다.
정부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응책
정부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을 제정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부터 제안받은 아이디어를 도용할 시 손해 인정 금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 배상제도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부정경쟁방지법은 사실상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정 이후에도 시장 내 기술 탈취 분쟁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에 알고케어-롯데헬스케어 분쟁이 발생한 지난 1월, 중기부는 뒤늦게 추가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차후 피해 기업의 아이디어 탈취 대응을 위해 디지털 포렌식을 통한 증거 자료 확보, 법무지원단을 통해 중소기업 기술 보호와 관련한 법령상의 위법 여부 확인, 신고서 작성 등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기술 탈취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을 국정과제로 지정해 추진 중이다. 기술 탈취 피해구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강화하고 법원 자료요구권 신설 등 법·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기술 보호 선도기업 육성, 정책보험 및 법무 지원 확대 운영 등 중소기업 기술 보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실효성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로 인한 피해 신고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과 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정부는 보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분쟁 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단 한명의 억울한 피해자도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