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노쇼’ 이젠 안녕? 정부, 실업급여 반복·부정수급 행태 손본다
최저임금 노동자 급여 역전한 실업급여 수령액, 반복·부정수급 증가 정부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 실업급여 하한액 하향 등 구직 활동 촉진 방안 담겨 근 5년 적자 이어온 고용보험 재정수지, 실업자 복지와 재정수지 사이 딜레마 해결해야
고용노동부가 청년들의 근로 의욕을 꺾는 현 실업급여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본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최근 많은 중소기업이 최소한의 구직 활동 요건만 채우고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하는 일부 청년 세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업급여를 타내기 위해 단기간 근무 후 퇴사를 반복하는 이들이 증가하며 중소기업 인력난이 한층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고용부는 서울로얄호텔에서 올해 첫 고용정책심의회를 열고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실업급여 수급에 필요한 고용보험 가입 기간을 늘리고, 실업급여 지급 수준 및 기간을 단축하는 등 고용 서비스 개편을 추진하는 방안이다.
고용서비스는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기업에 인재를 연결해주는 정책이다. 정부는 현재 전국 132개 고용센터(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통해 고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마련한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은 크게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진입 촉진을 위한 서비스 강화 △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혁신 성장 지원 △고용센터 상담 서비스 전문화 △민간과 함께 고용서비스 시장 활성화 뒷받침 등 4대 부문의 12대 실천 과제로 구성됐다.
최저임금 노동보다 실업급여 받는 게 낫다?
실업급여는 원치 않게 직장에서 퇴직한 실업자의 생계를 지원하고,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1995년 도입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단기간 근무 후 퇴사를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수령하거나 수급 조건에 미달하는데도 편법을 동원해 급여를 받는 등 제도 남용 사례가 꾸준히 발생해왔다. 급여를 받은 뒤 제대로 된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복 수급 유인을 높이는 원인으로는 실업급여와 최저임금의 연동 구조가 꼽힌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60%에서 80%까지 상승하며 사회보험료·소득세를 제외한 최저임금 일자리의 소득이 실업급여 수령액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반복 수급으로 인해 피해를 떠안은 것은 다름 아닌 중소기업들이다. 실업급여 수령 조건인 ‘구직활동 증명서’ 제출을 위해 지원서만 제출하고 면접장에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면접 노쇼’나 형식적으로 면접만 끝내고 사라지는 구직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 데이터 사이언스 스타트업 대표는 “아예 면접장에 나타나지 않는 이들도 있고 (면접장에 와서) 대충 말만 몇 마디 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많이 겪었다”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 늘리고 하한액 낮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고안한 것이 이번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이다. 이번 고도화 방안의 핵심은 실업급여 수급자에 대한 구직 활동 촉진 강화다. 고용부는 앞으로 고용보험 가입 기간을 최저 180일에서 300일 안팎으로 늘리고 최저임금의 80%가 아닌 60%만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반복 수급자의 실업급여 감액, 대기 기간 연장을 주 내용으로 하는 고용보험법과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안이 원활하게 국회를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작년 7월 마련한 대책에 따라 오는 5월부터는 이력서 반복 제출과 같은 형식적 구직 활동과 면접 불참, 취업 거부 시에는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없게 된다.
고용부는 올해 상반기 내 실업급여 수급자의 근로 의욕을 높일 수 있도록 추가적인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직접 일자리 유사·중복 사업은 통폐합하고 직접 일자리 반복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민간 일자리로의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 참여자에겐 매달 2번 이상 구직 활동 이행 상황을 확인하고, 조기 취업 시 성공수당을 지급한다. 또 지역 고용센터에서는 광역 단위의 구직자 풀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일자리와의 매칭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고용부는 추가적인 실업급여 제도 개선안을 상반기 중에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실업급여 지급 실태를 조사하고 노사, 전문가와의 논의를 거쳐 지급 수준·기간·방법 등을 개선한다. 이러한 제도 개선을 통해 앞으로 3년 안에 실업급여 수급자의 수급 중 재취업률을 26.9%에서 30%로, 국민취업지원제도 참여자의 취업률을 55.6%에서 60%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실업급여 부정·반복 수급자 얼마나 되길래?
실업급여 부정수급 사례는 지난 5년간(2018~2022) 12만 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매년 2만 건 이상의 부정수급이 적발된 것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1,180억 원 규모에 달한다. 2019년 10월 지급액 인상, 지급 기간 연장이 결정된 데 이어 코로나19 영향까지 겹치며 2021년까지 실업급여 지급액과 부정수급 건수가 나란히 증가한 것이다.
지난 5년(2018~2022) 동안 반복 수급자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정부는 실업급여를 5년간 3회 이상 받은 사람을 ‘반복 수급자’로 정의한다. 부정수급 건수와 마찬가지로 실업급여 제도 개편 및 코로나19 사태, 경기 침체 등 다양한 요인이 겹치며 반복 수급자 수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 반복 수급은 부정수급처럼 불법 행위는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실직과 이직이 잦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의뢰로 연구·작성한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반복 수급자를 양산하는 가장 큰 요인은 근로와 수급을 반복하는 일부 업종·사업체의 고용 관행 및 단기 계약 일자리를 전전하는 고연령층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반복 수급자 중 상당수가 수급 요건을 갖추기 위해 형식적인 구직활동만 하면서 반복적으로 실업급여를 수령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중소기업계 내부에서도 반복 수급을 위해 단기간 근무를 반복하는 이들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으며, 온라인 공간에선 실업급여 반복 수령을 위한 ‘편법’을 공유하는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안정한 고용보험 재정수지
정부가 실업급여가 부정수급과 의도적 반복 수급 관리에 집중하는 것은 고용보험기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다.
최근 5년(2018~2022)간 고용보험 재정수지와 적립금은 5년 내내 적자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부턴 재정수지가 흑자로 전환되고 2026년까지 꾸준히 개선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실업급여 보험료율이 0.2% 포인트 상승한 가운데,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 시행된 한시적 사업들이 종료된 영향이다.
이에 정부는 재정수지가 몇 년 사이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위태로운 상황을 고려해 실업급여 지출을 줄여 안정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기에 실업급여 지급 문턱을 높이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이 같은 조치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구직자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이들이 복지 체계 바깥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적절한 선에서의 제도 개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