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회사는 간판이 아니라 내실이다” 간판론 ④ 개인
다른 연령대보다 큰 영향을 주는 청년 취업자, 국가 생산성에 직결 영국은 대학 졸업생보다 돈 잘 버는 고졸이 더 많아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인재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노동시장 구성해야
지난 2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임금근로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2021년 12월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33만원으로 전년 대비 4.1%(13만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2021년 기준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에 가입한 임금근로자 약 1,992만 명과 국세청에서 제공한 48만 명의 표본을 분석한 결과다.
조사 결과 근로자 50%는 세전 250만원도 못 벌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차이는 거의 300만원 가까이 난다. 대기업 근로자의 소득 증가율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중소기업은 최저로 집계됐다. 남여 임금 격차도 1.5배다. OECD 국가 중 삶의 질 최하위 수준이라는 게 쉽게 이해되는 수치다.
하지만 무작정 대기업에 가기 위해, 전문직이 되기 위해 덮어놓고 취업 준비와 시험 준비에 몇 년씩을 투자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다시 계산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당장 본인의 역량과 어울리는 곳에서 경력과 실무 능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취준생보다는 직장인이 더 선택의 여지가 많다. 첫 직장을 학벌처럼 생각하는 그릇된 인식을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구직자들은 기업의 간판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안정성과 높은 연봉이 직장 선택의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개인의 성장과 발전도 중요하다. 구직자는 변화하는 고용 시장에 발맞춰 더 이상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적응력을 유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초점을 맞추면 회사의 규모나 간판과 관계없이 보다 성공적이고 만족스러운 경력을 쌓을 수 있다.
확대되는 임금 격차
조사에 따르면 2021년 한국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세전 기준 333만원으로 전년 대비 13만원 증가했다. 하지만 성별과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389만원으로 여성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 256만원보다 1.5배 높았다. 이는 전년도 남성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1.4배였던 것에 비해 소폭 확대된 수치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의 월 평균 임금이 전년 대비 35만원 증가한 563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중소기업은 전년 대비 8만원 증가한 266만원으로 조사됐다. 비영리단체의 월 평균 임금은 335만원으로 전년 대비 9만원 증가했다. 300인 이상 기업의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451만원, 50인 미만 기업의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245만원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교육 수준에 따른 임금 격차도 나타났다. 학사 학위 이상 학력을 가진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481만원, 고졸 학력자의 월평균 임금은 261만원이었다. 한편 고등학교 미졸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171만원으로 조사됐다.
줄어드는 취업자 수
청년은 취업하고 난 뒤 오랜 기간에 걸쳐 생산성을 발휘한다. 다른 연령대의 고용보다 국가 생산성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적으로 청년층의 고용 시장 진입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으로 인해 청년이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헛된 스펙과 경쟁에 소모되는 시간은 장기적인 경기 순환 구조에 악영향을 준다.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발표한 ‘우리나라 취업자 수 추세의 향방은?’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증가세 감소로 인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연평균 10만 명 내외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취업자 수는 경제 재개로 인해 82만 명 증가했지만, 2021년 중반 이후부터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2022년 1월에는 전년 대비 41만 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많은 예측 기관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취업자 수가 연평균 약 7만 명에서 12만 명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추세가 고용 기회 부족보다는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 공급 감소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노동 공급과 자본 및 총요소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고용정책을 펼쳐 취업자 수를 기본 추정치보다 연평균 8만~10만 명 추가 증가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SKY라는 허명, 학벌이라는 ‘신호’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학교는 국내 최고의 대학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의미와 영향력을 가진 반면 세계 대학 순위에서는 50위 이하에 머물러 있다. 서울대학교는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은 분명하지만,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와 학벌주의의 산실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의 입학 후 만족도는 기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입시를 다시 치른다면 서울대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다.
현재 수학 강사로 근무 중인 한 서울대 졸업생은 서울대 입시를 세 번이나 치렀다고 말했다. 그는 “학벌 때문에 학부모들이 서울대 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서울대에만 집착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입학을 위해 수능을 여러 번 치르는 일명 ‘N수생’들도 적지 않다. 아니, 어쩌면 필수 과정이다. 하지만 과연 서울대라는 간판만을 얻기 위해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영국 민간 연구기관인 IFS와 IE, 하버드대, 케임브리지대 등이 1998~2011년에 잉글랜드에 있는 168개 대학에 진학한 26만 명의 학자금 대출 정보들과 2012회계연도 세금 정보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의 23개 대학을 졸업한 남성의 평균 소득이 대학을 다니지 않은 동년배보다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9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의 경우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많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고임금 일자리를 얻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4년제 졸업장을 받고도 다시 부트캠프 등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워 취업하는 청년들이 많다. 장차 한국도 영국과 같이 될 확률이 높다. IT업계는 이미 학벌보다는 코딩 테스트 등으로 실질적 역량을 검증한다. 그런데도 학벌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히 높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 모델을 이용해 설명했다.
구직자는 기업에 대한 정보가 많지만, 기업으로서는 구직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이들 간 정보의 양은 비대칭 상태다. 이때 흔히 ‘명문대’라고 하는 라벨은 구직자의 성실함과 명석함을 어느 정도 나타내는 ‘신호’다. IT업계는 코딩 테스트와 오픈소스 포트폴리오로 스펜스 교수가 설명한 정보 비대칭 상태를 극복했다. 실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형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기에 학력이라는 신호에 의존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바꿔 말해 기업에 당신의 능력을 전달할 수 있다면 시장에 본인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보상은 뒤따라온다.
의치한 변변회 약수 법세노감관, 13글자로 표현되는 납작한 삶들
의치한약수, 전문직 미만 ‘잡’, 많은 구직자들은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취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안정적이고 연봉이 높으며 복리후생이 우수하다는 인식에 기인한 바가 크다. 실제로 임금 격차가 명확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간판에 대한 집착은 편협한 시각을 만들어 다른 기업이나 직업에 관한 관심 부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팽배한 학벌주의와 위계적 사고방식은 정작 카스트의 상층에 있는 사람들도 고통스럽게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로스쿨이나 공무원 시험,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입시를 반복해서 치르고 있다.
과연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몇 년씩 취업 준비를 하고 의대를 위해 몇 년씩 재수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의사와 대기업이 반드시 일하기 가장 좋은 회사일까? 개인이 가진 특정 기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소규모 기업에서 능력을 펼치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구직자가 안정성과 높은 연봉을 제공하는 직책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고 급여가 높은 회사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용 안정성이라는 개념도 시대에 뒤떨어졌다. 현대에는 평생 고용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많은 사람이 직장을 옮겨 다니고 있다. 구직자는 개인의 성장과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 회사나 직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을 개발하고 향상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구직자들은 간판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자신만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 소홀한 경우가 많다. 다양한 자격증으로 이력서를 쌓는 데만 집중할 뿐 실무 능력을 키우는 데는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잘못된 ‘신호’를 보내기 위해 잘못된 노력을 하는 것이다. 개인은 회사의 간판에 집착하기보다는 자기 능력을 개발하여 시장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로 구직자에게 쓸모없는 스펙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실무적 역량을 판단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왜 젊은 세대는 이렇게 소모적인 경쟁을 지속해야 할까. 이들은 이미 완전히 개인주의적이고 고립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사회에서 친밀한 관계가 사라지고 일상을 채우는 것은 유튜브, 인플루언서 등 인터넷을 구성하는 ‘밈’들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일례로 ‘맘충’이 있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사회에서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어머니를 목격한단 말인가? 가상의 세계, 밈에 지배된 이들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그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스마트폰이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판단과 인생을 인터넷의 글자에 맡기게 된다. 결국은 ‘의치한 변변회 약수 법세노감관’ 이라는 고등학교 시절의 서열 놀이를 계속할 뿐이다.
젊은이들을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이 급속도로 파편화되고 고립되는 현상을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심각한 양극화, 과도한 경쟁과 서열 문화, 타인에 대한 불신, 낙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불안정한 사회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졌다. 스마트폰과 코로나19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 특히 청년들의 세계에서는 최소한의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 작은 원룸과 취업 준비를 위한 스터디룸, 집에 돌아와서 볼 수 있는 유튜브 화면과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이 사회는 경쟁하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사는 전쟁터일 뿐이며,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방에 있는 납작한 휴대폰 화면이다.
휴대폰 화면에서 벗어나 비전문직과 중소기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인재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노동시장을 구성해야 한다. 또한 진정한 역량은 학벌이나 직급으로만 측정할 수 없으며, 노력과 실무 능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직장에서 진정한 성공의 열쇠는 단순히 간판이나 권위 있는 직책이 아니라 역량과 노력을 통해 이뤄진다. 간판보다 역량을 중시함으로써 인재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기업과 국가의 성장을 주도하는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인력을 만들 수 있다. 크든 작든 모든 직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열심히 일하며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쏟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