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규제 강한 ‘비대면 진료 제도화’, 반면 미국·일본 등 해외에선 이미 ‘전 국민’ 대상 진료 허용

G7 모두 초진·재진 구분 없이 비대면 진료 허용한 반면, 우리나라만 규제 문턱 높아 의료계, 비대면 진료 시행 관건은 결국 ‘적정 수가 보장’ 한편, 환자의 안전성 보장 위해 ‘허용 질환’부터 정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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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연내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에 나섰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허용 대상을 재진 환자나 의료취약지 환자로 한정하는 점 등 해외에 비해 여전히 규제 수준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주요 7개국(G7) 가운데 어느 나라도 동일한 규제를 두지 않고 있다.

OECD 국가 대다수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 나선 상황

정부는 3일 바이오헬스 신사업 규제혁신 방안 등을 발표하면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대면 진료 관련 주요 내용은 ▲대면진료 원칙, 비대면 진료 보조적 활용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재진환자와 의료취약지 환자 중심 허용 ▲비대면 진료 전담 의료기관 금지 등이다.

하지만 실제 주요 7개국(G7) 가운데 어느 나라도 재진 환자에게만 비대면 진료를 허락하고 있찌 않은 만큼, 업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국가에선 주치의 한정 진료라는 제한을 두고 있지만, 이들 또한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수치로 보면 우리나라의 높은 규제 문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국 가운데 32개국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고, 특히 전체 진료 비중 가운데 비대면 진료 비중은 무려 10%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 각국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대면 진료 규제 완화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진료를 권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미국은 말기 신장질환자나 농촌거주자 등 일부 환자에 국한했던 비대면 진료 대상을 지역이나 질환, 초진 여부와 관계 없이 모두에게 허용했다. 나아가 페이스타임이나 스카이프 등이 아닌 특정 원격진료 플랫폼에서만 진행하도록 의무화했던 의료정보보호법(HIPAA)도 한시적으로 완화하며 비대면 진료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일본도 1997년 이후부터 비대면 진로를 점차 확대해오고 있다. 처음 법을 제정할 당시에는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사각지대 환자를 대상으로 9가지 만성질환에 대해서만 허용했지만, 2015년과 2020년 각각 두 번에 걸쳐 규제를 완화했다. 이후에는 2020년 4월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초진 환자도 온라인 진료를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아울러 그 외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의 주요 국가들도 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허용하고 있다.

허용되는 질환부터 정의해야

정부의 이번 비대면 진료 제도화 주요 내용 가운데 허용 질환 논의가 빠진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아직 우리 사회는 모든 질병에 대해 대면 진료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전성을 담보할 만한 기술력과 제반 사정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허용 질환은 비대면 진료의 주요 이해 당사자인 환자의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주요 요소다.

반면 해외에선 비대면 진료 허용 질환 범위를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수가 적용을 통해 비대면 진료 허용 질환을 관리하고 있고, 학회의 치료 지침 등도 고려해 허용 질환 범위를 확대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비대면 진료 허용 질환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지만, 보건의료 연구 및 품질청 등의 의료기관에서 비대면 진료의 허용 질환 범위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 및 조사가 활발하다.

사실 국회에선 비대면 진료 허용 질환 규정을 요구해오고 있다. 2014년, 2016년 정부 발의 의료법 개정안에 따르면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증질환자’를 비대면 진료 허용 질환으로 했다. 또 2021년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 가운데 일부도 고혈압·당뇨·부정맥 등의 재진환자를 비대면 진료 대상 질환으로 설정한 바 있다.

결국엔 ‘수가’가 쟁점

한편 업계에선 비대면 진료의 적정 수가 책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대면 진료 시행에 있어 관건은 결국 ‘적정 수가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료계가 비대면 진료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이유도 수가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한 한시적 수가만 책정된 상태에서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책정된 비대면 수가의 경우 대면 진료와 동등하게 책정돼 있고, 가산되는 전화상담관리료 등도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 되어 있는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선 대면진료에 대한 수가를 동등하게 적용하고 있어 우리나라에 비해 수가가 높게 책정돼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대면에 비해 진찰료 수가가 낮지만 각종 가산 및 온라인 의학관리료 수가 등을 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해외 선진국의 의료계 대부분 대면 진료보다 낮은 진료비로는 비대면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 의료계도 비슷한 입장이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수가 수준에 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0.1%가 ‘대면 진료보다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대부분 비대면 진료에 들어가는 추가 기술 비용 등과 더불어 기본 진료와 통화시간 등의 시간적 노력 등이 대면 진료보다 늘어남에 따라 더 많은 보상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도 이러한 의견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재진 진료비에 비대면관리료 30%를 추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앞으로 진료 시간, 비대면 진료 시스템 구비 및 관리 비용 등 비대면 진료에 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적정 수가를 책정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