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이러니까 의대 가는 거 아냐?
의대 쏠림 현상 격화, 의사 평균 연봉은 1억, 공대 박사 초임은 5천만원 전문가, 대학 교육 부실화도 한몫, 공대 연구실은 프로젝트 공장으로 전락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 전무, 의료 개혁보다 대학 교육 개혁 우선 돼야
국내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정출연’)에 취직하는 국내 최고 명문대 출신의 공학도들의 연봉이 5천만원 언저리인 데 반해 의과대학 졸업자는 전문의가 아니어도 억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0년 의사 진료과별 평균 연봉 순위표에 따르면 일반 의사의 평균 연봉이 9,307만원으로 직전 년도인 2019년의 7,387만원에 비해 2,000만원 가까운 인상 폭을 나타냈다. 의료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더 큰 인상이 있었던 만큼 올해는 일반 의사들도 평균 소득에서 억대 연봉을 기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인기 전공 전문의, 평균 연봉 1억3천만원
대학 입학 사정에 의과대학이 다른 이과 전공을 앞지른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 이전까지는 해외 유학을 가기에 유리했던 자연과학 전공들이 수위권을 차지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 부상한 컴퓨터공학과가 잠시 최상위권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이후부터 올해까지 약 25년간 성적이 뛰어난 이과 학생이 의대를 가지 않는 것은 매우 독특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왔다.
가장 큰 이유는 급여의 차이다. 김대중 정부가 의료개혁을 시도하다 대규모 의사 파업에 밀려 의료계의 각종 요구를 들어주면서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의료수가는 큰 폭으로 인상됐다.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령층의 의료 수요가 폭증한 것도 한 몫을 했다.
2020년 기준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의 주요 인기 전공의 전문의들은 평균소득이 1억3천만원이 넘는다. 의료계에서 의사라고 인정하지 않는 치과의사도 평균 연봉이 9,233만원이었다. 개업을 했다가 비용 부담에 개인 병원을 접는 수요를 감안하면 최소 20~30% 이상 더 높은 연봉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선택한 이과생들은 국내에서 박사 학위까지 공부를 마쳐도 정출연 초봉은 5천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국내 공학계 대학원 대부분이 단순한 프로젝트 시설에 불과할 뿐이라는 혹평과 자연과학 연구는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감안해도 금전적인 부분만을 놓고 보면 박사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공계 인력난의 원인
벤처기업 대부분은 이공계 인력 부족으로 기업 성장이 힘들다는 하소연을 내놓는다. IT 스타트업들의 경우 개발자를 채용하는데 실력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력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해외에서 만들어진 개발 라이브러리를 베끼는 수준에 불과하면서 억대 연봉을 당당하게 외치는 어이없는 사건들을 수시로 겪는다는 것이 벤처업계 관계자들의 불만이다.
자연과학 인력들도 고급 수학 도전을 하려면 해외로 박사 유학을 떠나야 한다는 대명제 아래,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국내에서는 뛰어난 인재라는 평가를 못 받다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 중에 도전했던 수학 난제로 평가가 급반전된 사례가 나오면서 경향은 더 심해졌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국내 대학 교육의 질이 심각하게 저하된 데다 학생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고액 연봉만 찾는 경향이 심해졌다고 주장한다. 고려대 기술경영의 김종면 교수는 남들이 정의해놓은 문제만 풀면 되는 시대를 넘어 개개인이 자신만의 문제를 찾아내는 일까지 추가된 시대가 왔는데 정작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교육은 과거의 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공계의 인력난도 주어진 내용을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는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해 고액 연봉을 누리는 반면 새로운 도전은 전혀 평가를 받지 못하다 보니 지금처럼 자연과학과 공학 연구마저도 MZ세대에게 외면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미국급으로 연봉 받을 수 있는 직업은 의사뿐?
직업 선택을 위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 주어진 내용을 따라가기 바쁜 국내 교육 시스템과 그 교육 시스템에서 승리해도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직업군이 의사 직군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학생들 사이에서 의대 진학은 ‘재필삼선(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재수를 해야 의대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받을 수 있고, 삼수를 해야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IT스타트업계에서 매우 뛰어난 개발자들이 연봉 1억 대 초반을 받기 어려운 반면 실리콘 밸리에서는 대졸 개발자 초봉이 12만 불에 달하는 사실을 비교군으로 놓고, 국내에서 미국과 유사한 연봉 구간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직군이 의사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뉴스, SNS 등의 언급량을 바탕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의사’, ‘의대’에 따라 나오는 주요 키워드는 ‘연봉’과 ‘미국'(이상 하늘색 키워드)이다.
전문가들은 해결책으로 의료 수가 개선과 대학 교육 강화를 통한 초고급 연구 인력 양성, 해당 인력에 대한 고액 연봉 지원 등을 꼽는다. 의사들이 받는 의료 수가가 지나치게 높고 노령층에게 의료 지원이 지나치게 후하다는 점도 함께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대학교수는 “한국 대학들은 ‘학위 자판기(Diploma mill)’가 된 지 오래”라며 제대로 된 교육을 공급하지 못하고 정부 프로젝트 돌리기에만 바쁜 국내 공과대학들이 인력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는 이상 생산성 격차 때문에라도 높은 연봉을 약속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어 “현재 한국 대학 교육 수준을 놓고 볼 때 어차피 대학 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이 전무한 상황인 만큼 ‘가성비’가 가장 좋은 의대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평도 내놨다. 한국의 대학들도 영미권처럼 낙오자들을 서슴없이 쫓아내면서 졸업률을 20%~30% 수준으로 내리는 교육 개혁 없이는 한국의 학위들을 믿고 고액 연봉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