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제 버거워요” 중기부, 스타트업 업계 불만에 제도 개편 가세한다
중기부, “업계 의견 적극 반영해 근로시간 제도 개편 요구할 것” 벤처·스타트업 업계, 일률적 주52시간제로 어려움 겪어 스톡옵션 부여 직원에 한해 규제 적용 예외 요청도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벤처와 스타트업 업계 특성을 고려해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지난 2월 2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벤처기업·스타트업 대표 및 전문가들과 근로시간 제도 개편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12개 벤처·스타트업 대표들은 “경직된 주 52시간제로 인해 생산성이 저하되고 맘 놓고 일을 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이 장관은 “업계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하고 고용노동부 등 부처와 협의를 지속적으로 이어 가겠다”고 답했다.
현실 동떨어진 규제로 현장 애로사항 많아
현행법은 주52시간제를 적용하면서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주 8시간의 추가 근로를 지난해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이는 국회에서 업계의 기간 연장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작년 연말을 끝으로 폐지됐다. 정부는 올해까지 계도기간을 두는 한편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중이다. 그러나 기술창업 기업들은 디지털 서비스 등 상품이 다양해지고 집중근무, 재택근무 등 근무 방식도 변화하고 있으나 기존의 근로시간 제도로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12개 벤처·스타트업 대표들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들을 공유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은 ‘워라밸(일과 삶 균형)’을 지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시스템 업데이트 등의 업무를 위해서는 ‘크런치 모드'(반짝 야근)가 필요하다며, 스타트업 생태계를 고려해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해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주52시간제가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이긴 하나 오히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일할 권리를 제한하는 자충수가 되고 있다며, 단기간 집약적 업무수행과 고소득을 선택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터글로벌의 곽영호 대표는 “IT 업종은 오랜 시간 근무한다고 해서 업무 성과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정부 주도의 근로시간 총량제가 스타트업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벤처 및 스타트업 기업의 개발·생산의 업무 주기가 주 단위로 있는 게 아닌 만큼 근로시간도 더 넓은 주기에서 맞출 수 있어야 한다”며 제도 개편에 동의하고 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경우 오히려 암묵적인 52시간제 초과 근무나 편법적 유연근로제 등이 사라지고 제대로 된 근로시간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3월 제도 개편 입법예고 앞두고 분주한 관계자들
노동계는 주52시간제를 폐지했을 때 특정 기간 장기 야근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과로 문제를 지적하지만, 스타트업 관계자는 요즘엔 분위기가 다르다고 반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직이 잦고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특성상 고용자가 일방적으로 무리한 연장근로를 지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도 “만성적으로 크런치 모드를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그랬다가는 입소문이 나서 아예 직원을 못 뽑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근로시간 제도 개편 논의가 갑작스러운 화두는 아니지만, 고용노동부가 3월 중 제도 개편에 대한 대책 및 입법예고를 발표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라 각 이익단체가 최대한의 이익 반영을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장관도 “사실 3월 중 정부의 근로제도 개편에 대한 입법예고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분위기에서 당장 새로운 목소리를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므로 어떤 식으로든 강력하게 목소리를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기부는 이날 간담회에 이어 이번 달 소상공인 간담회, 중소기업 대상 종합토론회를 잇달아 열어 업계 의견을 모으고 이를 고용부에 전달할 방침이다. 중기부는 지방중소벤처기업청을 창구로 활용해 지역 중소기업들의 근로시간 관련 제도 개선 의견 건의도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지역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도 제도개혁 과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와 별도로 3월 중 관련 단체 및 전문가와 함께 ‘근로시간 제도 개선 과제 발굴 TF’를 통한 의견 수렴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톡옵션 받는데도 일반 직원인가?
한편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부여받은 근로자에게 일반 직원과 동일한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직원과 임원은 상법상 직위와 체계가 다르고 보상 수준이 다른 만큼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진다. 이런 논지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직원 이상의 금전적 보상을 받는 근로자들에게도 일반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고 있다.
이날 기업 대표들은 스톡옵션 부여 근로자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박재승 비주얼캠프 대표는 스타트업에서 스톡옵션을 부여한 것은 근로자들에게도 일종의 사업권을 준 것이므로 스톡옵션 지급 직원들에 한해서라도 근로시간 자율권을 부여해달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스톡옵션을 부여받았거나 전문성·재량성이 높아 일정 소득 이상을 받는 근로자들에게는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제외해달라고 관계부처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런 근로자들의 경우 공동창업자에 준할 만큼 회사와 파트너십으로 묶여있다고 보는 만큼, 근로시간 규제 유예 요청이 받아들여질지 업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일률적인 주52시간제 규제로 인해 벤처 및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이는 업계 특성과 생산성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 적용만을 밀어붙인 탓이다. 전문가들은 규정 적용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도록 해야 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일각에선 주52시간제 폐지 시 생길 문제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다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 데에 대한 벤처 업계의 불만도 큰 만큼 신중한 정책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