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임금低고용] ① 평균 급여는 인상, 취업자 수는 감소 중

평균 급여 2억대 기업도 등장한 반면, 취업자 수는 매년 감소 중 전문가, “한국 급여가 타국에 비해 높아 조기 퇴직이 양산되는 것” 40대 명퇴 숫자도 부쩍 늘어, 기술 발전에 취직 불가 인력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

160X600_GIAI_AIDSNote

메리츠증권의 2022년 사업보고서 기준 임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2억29만원이었다. 2021년에도 2억492만원을 기록한 바 있는 메리츠증권은 이로써 2년째 임직원 평균 급여가 2억원대인 기업이 됐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대기업 120곳의 임직원 인건비는 2조원 이상 증가했으나, 거꾸로 고용 인원은 4,500명 이상 감소했다. 12개 주요 업종별 매출 상위 10개 기업들 기준이다.

평균 급여는 인상, 취업자 수는 감소

조사 대상이었던 대기업 120곳의 지난해 임직원 수는 77만2,068명으로 조사됐다. 2021년 77만6,628명보다 4,560명 감소한 수치다. 반면 인건비 규모는 2019년 64조3,282억원이었던 것이 2022년에는 77조1,731억원으로 증가했다. 2021년 대비 임직원이 4천명 이상 감소하는 동안 인건비는 2조4,011억원이 늘었다.

인건비가 늘고 고용이 감소하면서 임직원 1인 평균 급여 수준은 크게 인상됐다. 조사 대상 120개 기업 기준, 1인당 평균 연봉은 2019년 8,253만원에서 2022년 1억196만원으로 4년간 23.5%나 올랐다. 임직원 평균 보수가 1억원을 넘는 기업도 2019년 10곳에서 2021년 25곳, 2022년에는 36곳으로 늘었다.

평균 연봉이 2억원대에 진입한 메리츠증권과 더불어 주요 금융권 기업들과 정유업계 및 IT, 반도체 기업들에서 연봉 1억이 평균인 시대가 개막됐다. 은행의 경우엔 지난해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성장해 지급했던 ‘역대급 성과급’이 논란이 되어 올 초부터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으나, 증권업계와 정유업계 등에서는 소리소문없이 급여 인상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단, 평균 연봉이 타 직군에 비해 높은 만큼 주요 업계의 재직 기간도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금융권은 소수의 관리직군을 제외하고는 ‘40대 명퇴론’이 일반적인 업계였으나, 1월 들어 주요 5대 은행에서 무려 3천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청 대상은 만 15년 근무·만 40세인 1982년생 이상 직원으로, 역대급 성과급의 이면에는 짧은 직업 수명이라는 리스크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용주들, 젊고 효율적인 인력만 남긴다?

모 은행의 지점장을 거친 60대 남성 A씨는 은행이 연공서열제로 급여가 매년 상승하는 구조인 반면, 업무 효율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에 정점을 찍는 경우가 많아 은행에서 40대 명퇴론이 크게 대두된다고 설명했다. 경험치가 많은 인력 중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거나 지역 네트워크가 탄탄한 소수가 관리직군으로 승진하고 나면, 더 이상 은행에 필요 없는 인력이 된 40대 중반 이후 인력들에게 명퇴 압박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이어 최근 들어 인터넷 은행이 대두되고 시스템이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창구 직원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 사이 KB국민은행(1062곳→914곳), 신한은행(865곳→784곳), 우리은행(876곳→768곳), 하나은행(775곳→613곳) 모두 점포 수가 줄었다. 점포 수 축소와 더불어 은행들은 비대면 금융서비스, AI은행원 도입 등 기존 은행원을 대체할 금융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A씨는 지점장을 끝으로 은행을 퇴직한 2021년 이후 주기적으로 지점을 방문할 때마다 ‘지점 방문 고객 중 젊은이가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방문객의 숫자도 감소하고 있는 만큼 더더욱 점포 및 창구 인력을 유지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비대면 선호 현상이 확산되면서 식·음료 매장에는 주문받는 인력 대신 기계가 테이블마다 배치된 경우도 크게 늘었다. 심지어 조리된 음식을 식탁으로 운반하는 로봇까지 활용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진지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가 등장하면서 영어권에서는 단순한 글쓰기 요약 업무를 인턴 등의 인력 대신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모습까지 등장했다. 생산성이 낮은 업무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으며 직장을 다닐 수 있었던 인력들이 빠르게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SimpleLearn

40대 명퇴 → 30대 명퇴 → 취직 난이도 상승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는 고부가가치 사업보다 노동력 기반으로 일자리를 창출해왔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정규직 대졸 초임이 대만, 홍콩에 비해 2배 높고 생애 최대임금도 3배에 달한다며, 한국의 급여 수준이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노동생산성은 낮아 기업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업들과 전문 인력들이 충분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못 찾고 있다는 점도 비판했다. 전반적으로 급여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2010년대까지 성장을 이어온 것이 지금의 세태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가 짚은 가장 큰 원인은 ‘먼저 많이 받고 빨리 퇴직하는 고용구조’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등을 통해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데, 기업은 높은 임금을 줘야 하는 노동자들을 오래 고용할 수 없기 때문에 40대 중반 이후에는 명예퇴직 압박을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소수 인력을 제외하면, 대부분 직군의 많은 사람들이 40대까지 경쟁국들 대비 높은 급여를 받다가 급여에 맞추지 못하는 생산성 탓에 실직한 뒤로는 더 이상 새로운 직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를 보면 대기업 퇴직 후 급여를 더 낮게 주는 중소기업으로 단계적인 이직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른바 ‘폭포수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도 설명된다.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높은 급여를 줄 수 있는 기업도 없는 것이다.

인사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 인구 감소 등으로 생산성 높은 인력만 채용되는 상황이 이제부터 더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높은 급여를 부담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업무에만 인력을 채용하고, 그 외에는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인건비를 대체하는 시스템을 갖추는데 자원을 투입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빠른 퇴직을 요구하는 은행권에서도 ‘40대 명퇴’였던 것이 ‘30대 명퇴’까지 당겨질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취직이 어려운 인력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나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