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기관마다 제각각, ESG 지표가 낳은 ‘혼란’

국내외 600개 이상 ESG 평가지표 존재, 정부 ‘K-ESG 가이드라인’ 제시 주요 중소기업 지원 기관들, 기업 ESG 경영 지원 위해 ‘특화 지표’까지 신설 ‘보여주기식’ 마케팅에 활용하는 기업도 많아, ESG에 크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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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주요 지원 기관들이 중소기업의 ESG(경영·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지원하기 위해 스타트업 ESG 지수나 농어촌 ESG 지수 등 저마다 특화된 신규 지표를 신설하고 있다. 정부도 지난 2021년 ‘K-ESG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황이지만, 업계에선 획일화되고 통일된 지표로 기업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부, K-ESG 가이드라인 발표

최근 ESG가 전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함에 따라 소비자, 투자자, 정부 등 모든 사회구성원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ESG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기업의 생존과 성장의 핵심적인 요소로 부상하면서 현재 국내외에는 600개 이상의 ESG 평가지표가 공개된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 2021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와 관계부처 합동으로 ‘K-ESG 가이드라인’이라는 또 하나의 평가지표를 발표했다. 해당 지표는 국내외 주요 13개 평가기관의 3,000개 이상의 지표와 측정항목을 분석해 총 4개 영역과 61개 ESG 이행 및 평가의 핵심 항목들로 구성됐다. 특히 관계부처와 각 분야의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만들어진 만큼, 글로벌 기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국내 기업들에 적용이 가능한 특징이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K-ESG 가이드라인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찬성 측은 국내 경영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해외 ESG 지표로 인해 일부 기업이 불이익을 받아왔다고 주장하는 한편, 반대 측은 국내만의 ESG 가이드라인에만 의존하게 될 경우 해외 ESG 규제 대응이나 투자 유치에 있어 한국 기업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반대 여론은 K-ESG를 통해 몇몇 기업을 평가한 등급과 실제 기업의 ESG 관련 문제의 심각성이 상이한 점을 두고 지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내 한 ESG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실제 K-ESG 가이드를 토대로 국내 200개 기업을 평가한 결과, 평가 지표에서 최상위 등급을 받은 OO 기업은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탄소배출 기업이었다”면서 “K-ESG가 과연 믿을만한 지표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회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 지원기관, ‘너도나도’ ESG 특화 지표 신설

K-ESG 외에도 주요 정부 기관들은 중소기업의 ESG 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특화 지표를 신설하고 있다. 환경부, 고용노동부 등 각 부처·산하기관마다 저마다 소관 중소기업을 위한 ESG 지표 개발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농어촌 ESG 지수 개발을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지난해 시범 운영 중인 ‘농어촌 ESG 실천인정제도’와 연계해 개발할 계획이며, 스타트업 ESG 경영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특화 지표도 도입하기로 했다.

문제는 새로운 특화 지표의 등장이 중소기업 현장의 혼선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지원기관이 제각기 각종 ESG 지수를 내놓는 바람에 기업들도 새로운 평가지표에 맞춰 다시 컨설팅을 받고, 전략을 짜야하기 때문이다.

국내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국내 기업환경과 산업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해 새로운 평가지표를 제시하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각 지원 기관이 발표한 ESG 지표 늘어날수록 기업들의 혼란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몇몇 ESG 컨설팅 업체들만 배를 불리는 꼴”이라며 “결국 정부도, 기업도 모두가 세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라고 부연했다.

ESG, 더는 특별한 것 아니라는 지적도

일각에선 ESG 열풍이 현장의 혼란을 만드는 모습을 두고 ESG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의 알렉스 에드먼스(Alex Edmans) 교수가 발표한 ‘ESG의 종말(The end of ESG)’이라는 글이 공감을 얻고 있다.

에드먼스 교수는 “ESG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갖도록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표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완전히 대변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으며, ESG를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는 일부 기업들에 비판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제품의 품질과 환경 개선 여부, 사회적 봉사 및 고용 등의 내용을 포함하지만, 실제 ESG 평가항목들은 투자자가 강조하는 일부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또 모든 기업이 그러한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과거 ESG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투자자 관점의 용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ESG 투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투자자와 기업 간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지, 새롭게 지표를 만들고 그 틀에 기업들을 맞추는 건 부차적이라는 것이 에드먼스의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K-ESG나 정부 기관의 통일된 ESG 평가 지표를 아직 ESG 경영을 도입하지 못한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ESG를 실천해 나가기 위한 참고 지표 정도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은 ESG를 단지 ‘보여주기식’ 지표로 활용하지 않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ESG가 떠오른 근원적인 이유와 목적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