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주식 거래소’ 설립하겠다 나선 VC협회, 실효성 있을까

VC협회,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개설 나선다 ‘구주유통망’ 커뮤니티 운영 중인 VC협회, 하지만 노력 ‘뻘짓’될 수도, “차라리 코넥스에 힘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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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벤처캐피탈협회(이하 VC협회)와 벤처기업협회가 벤처투자 정책 개선 및 투자지원 활성화를 위해 비상장주식 거래소 설립에 나선다. VC 업계에 따르면 지난 30일 윤건수 VC협회 회장과 성상엽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나 비상장주식 거래소 설립·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양 기관은 우선 중간회수와 재투자라는 모험자본 선순환 구조가 정착할 수 있도록 회수시장 활성화에 나설 계획이다.

비상장주식 거래는 어떻게 이뤄지나

최근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 시장이 혹한기에 접어들며 구주(舊株)매각이 주요 회수 유형으로 떠올랐다. VC협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프로젝트 △상환 △매각 △IPO 등 유형별 회수 중 매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0년 36.3%에서 2021년 48.8%, 2022년 56.5%로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VC협회는 비상장 주식거래소 운영과 인수·합병(M&A) 지원사업을 통한 VC 업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 비상장주식 거래소는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 인가를 받은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금융투자협회에서 운영하는 K-OTC △비상장주식 관련 커뮤니티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융위로부터 인가를 받은 비상장주식 플랫폼은 주로 개인을 대상으로 하며, 실제 증권계좌와 플랫폼을 연동해 비상장주식 거래 시 안정성을 높였다. 그러나 현재는 △서울거래 비상장 △증권플러스 비상장 등 단 2곳만 운영 중인 데다 지난해 금융위가 비상장주식 거래 규제를 강화하며 거래량이 급감했다.

K-OTC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으로, 장내시장에 준하는 등록 요건을 통해 안정성을 높였다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요건이 까다로운 만큼 등록할 수 있는 비상장주식의 종류가 제한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때문에 가파르게 성장 중인 적자 스타트업은 K-OTC에 등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K-OTC의 거래량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커뮤니티 방식은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으로, 매도자가 매도 주식과 수량, 매도가를 담은 게시물을 올리면 매수자가 확인하고 직접 연락을 취해 거래하는 방식이다. 38커뮤니케이션이 대표적이다. 커뮤니티 방식의 비상장주식 거래는 여타 거래 플랫폼 및 K-OTC와 달리 별도의 거래 체결 기능이 없어 거래에 수반되는 모든 과정을 매수자와 매도자가 직접 챙겨야만 한다. 물론 허위 매물도 즐비하기에 모든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왼쪽부터 윤건수 VC협회 회장, 성상엽 벤처기업협회 회장/사진=한국벤처캐피탈협회

결국 커뮤니티 만들자는 건데, “실효성 있나”

VC협회는 지난 2012년부터 커뮤니티 방식의 ‘구주유통망’을 운영 중이다. 구주유통망에 매물을 올리면 VC 업계 관계자들이 이를 확인하고 거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구주유통망을 통한 실제 거래량은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다. 거래 체결 기능이 없는 등 사용하기가 매우 불편하고 사적 네트워크가 발달한 VC 업계에서 굳이 구주유통망까지 이용하며 구주를 거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구주 거래는 이미 알아서 잘 이뤄지고 있다. 38커뮤니케이션이나 서울거래 비상장, 증권플러스 비상장 등에서 비상장주식 거래가 충분히 활성화되어 있는 데다 이들 커뮤니티가 구주유통망보다 이용하기 편하다. 커뮤니티 방식의 비상장주식 거래소는 디시인사이드, 오늘의유머 등과 같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알아서 거래하라는 시스템이 대부분이다. 주식 소유자를 추적할 만한 제대로 된 시스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건 결국 구주유통망이나 타 커뮤니티 방식의 거래소나 다를 바가 없다. 커뮤니티 방식의 거래소가 더 이상 발전할 만한 여지가 없다는 점도 VC협회의 발목을 잡는다.

“제4의 시장? 차라리 ‘코넥스’ 역할 강화하는 게”

이에 일각에선 차라리 ‘코넥스’의 역할을 강화하는 게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거래소에서 운영 중인 코넥스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요건이 되지 않는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주식시장으로서, 제3의 시장이라 불린다. 코넥스는 우수한 기술력을 지닌 벤처기업이 신생기업이라는 이유 등으로 일반적인 자본시장 조달법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돕기 위해 출범했다. VC협회의 구주유통망과 골자가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이용률에선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특히 지난해 IPO 한파가 불어닥치자 코넥스시장에 스타트업 기업이 단기간에 쏠리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코넥스 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모두 14곳으로, 2021년 7곳에서 무려 2배나 늘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결국 투자자들은 양호한 기업이면 코넥스 내지 코스닥 직상장을 택하지 않겠냐는 인식이 있다”며 “커뮤니티 방식의 비상장주식 거래는 위험부담도 큰 만큼 지금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초 코넥스는 투자자 접근성이 낮고 자금 조달 규모가 적다는 한계가 있었으나 현재는 이 또한 옛말이 됐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개인투자자 기본예탁금 제도를 폐지하고 코스닥 이전상장 요건을 확대하면서 코넥스시장이 점차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VC협회가 바라는 제4의 시장이 나오기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다. 제3의 시장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목도한 사람들이 제4의 시장을 구태여 바랄 필요가 없는 것이다.

IPO 시장이 얼어붙은 반면 성공의 열망을 지닌 벤처·스타트업은 날마다 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사회적 진출을 돕겠단 VC협회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효율성 측면에서 VC협회가 내놓은 방안보다 더 좋은 안이 확실히 존재하는 한 VC협회의 노력은 속된 말로 ‘뻘짓’이 될 가능성이 크다. 코넥스와 함께 투트랙 성장을 도모할 수도 없는 상황인 만큼 VC협회도 코넥스 측에 협력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시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