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중앙회, 계속되는 중소기업 기술탈취에 ‘손배소송 입법 세미나’ 개최
2017년~2021년까지 중소기업 기술유출 및 탈취 피해건수 280건 기술탈취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손해배상제도의 낮은 실효성 때문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을 국정 과제로 선정한 윤석열 정부
급변하는 경쟁사회에서 기술 보호와 유출 방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동안 많은 중소기업이 납품 등 거래 과정, 공동개발, 기술협력 과정에서 기술 유출과 탈취로 어려움을 겪었다. 중소기업의 기술 및 아이디어 탈취행위는 우리 산업과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암적인 요소다.
기술 탈취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향후 중소기업의 존립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문제는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애플의 전 직원이 자율주행차 기술을 빼돌린 뒤 중국으로 도주한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각국에서 기술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특히 첨단 기술을 개척하는 중소기업이 직면한 문제가 심각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혁신 기술을 빼앗겨 막대한 피해를 입고 좌초되는 경우가 많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산적해 있는 소송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손해배상 제도는 실효성이 낮은 탓에 중소기업들은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실정이다.
해결책 모색 및 중소기업 지원 강화
기술탈취 관련 민사소송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특허청 등 행정기관의 조사자료가 제대로 제출·구비되지 않아 피해기업이 승소는커녕 손해를 입증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업계는 호소하고 있다. 이에 중소기업중앙회는 기술 탈취 피해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 시 법원이 행정기관 조사 자료를 증거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30일 ‘손배소송 행정조사자료 활용 입법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각계 저명인사들이 기술탈취 피해를 입은 기업을 위한 행정조사 자료의 법정 증거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중소기업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승소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기술 탈취 소송 사례
최근 A사와 경쟁 중소기업인 인피니트헬스케어가 관련된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부는 인피니트헬스케어의 기술을 침해한 A사에 대해 시정 조치를 권고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는 중소기업의 기술을 도용한 기업에 대한 최초의 시정 조치였다. 여기에는 ▲A사는 인피니트헬스케어의 소스코드를 사용하지 말 것 ▲인피니트헬스케어의 소스코드를 사용하여 제작한 제품을 판매 및 유지보수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기술 탈취는 롯데헬스케어와 헬스케어 인공지능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알고케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서도 만연한 문제다.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가 사업 제휴를 가장해 자사의 영양제 디스펜서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며 민원을 제기함에 따라 현재 공정위에서 대규모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에스제이이노테크(SJIT)는 한화와 2011년 기술 협력을 위한 기본합의서, 하도급계약서를 각 체결하고 태양광 스크린 프린터 장비(SCM-14D) 1대를 제작·납품한 바 있다. 2014년 9월에는 한화에 설계도면 등 기술자료를 제공하고 2015년 1월까지 각종 기술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화는 제공된 기술자료를 유용해 동일·유사 장비를 직접 제작한 뒤 계열사에 납품했고, SJIT와 기존 거래 관계까지 종료했다.
이에 2019년 10월 공정위는 한화의 기술자료 유용행위를 인정, 시정명령과 함께 수백억원대의 과징금 처분을 명령했다. 그러나 법원은 처분시효 도과를 이유로 공정위 처분을 무력화했다. 이후 민사에 나선 SJIT측은 공정위에 해당 사건 기록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문서송부촉탁에 반드시 응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의결서만 법원 송부하며 사실상 문서송부촉탁을 거절했고 이에 SJIT는 증거 부족으로 민사 1심에서 패소했다. 현재는 상고심(3심)이 진행 중이다.
강력한 법제화의 필요성
계속되는 기술 탈취 사례는 공정한 관행을 보장하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혁신을 보호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법과 제도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2. 9. 16. 선고 2022다236781) 취지에 비춰볼 때 법원의 자료 송부요구를 거절한 담당 조사관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 가능할 것으로 사료되나, 이는 사후적·우회적 구제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공정거래법 제110조 및 하도급법 제35조 제4항에 따르면 공정위는 법원의 자료송부 요구 결정에 따라야 할 직무상 법적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법적의무에도 불구하고 기록송부 의무를 강제할 방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입법 세미나의 발제자로 나선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는 “소송상 기록송부 의무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문서송부촉탁 방식이 아닌 자료제출명령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선 법무법인 동락 변호사는 현재 대리하고 있는 기술탈취 사건을 예로 들며 “공정위가 대기업의 기술자료 유용행위를 인정했는데도 민사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해 중소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모두 기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행정조사 자료와 민사소송의 연계 필요성을 제기했다. 중소기업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도급법과 상생협력법의 자료제출 조항을 개정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행정기관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