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1조657억원 규모 P-CBO 발행 발표, 목표치 ‘5조원’ 한참 밑돌아
신용보증기금 올해 첫 P-CBO 발행, 전년 대비 발행 규모 대폭 감소 애초 목표였던 ‘5조원’ 올해 내로 집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 경기 침체로 흔들리는 중소기업, ‘녹색 채권’보다 업계 현실에 초점 맞춰야
신용보증기금(신보)이 30일 채권 시장 안정과 기업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해 이번 달 1조657억원 규모의 P-CBO(Primary-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를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신보 P-CBO 보증은 개별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 등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 기업이 직접금융시장에서 장기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업계에서는 자금 조달을 위해 보증액을 늘리겠다던 발표와는 달리, 올해 P-CBO 규모가 너무 작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신규 발행액이 4조1,000억원에 달했던 반면, 이번 P-CBO 신규 발행액은 2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 P-CBO 발행이 올해 첫 신규 발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게 감소한 수준이다.
신규 발행액 1조657억원, ‘녹색자산유동화증권’ 최초 발행
신보는 이번 달 1조657억원 규모 C-PBO 발행을 통해 대·중견기업 56개, 중소기업 268개 등 총 324개 사에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전체 지원 금액 중 약 6,000억원은 3년 만기 신규 자금이며, 신규 자금 일부는 중소기업을 위한 ‘녹색자산유동화증권’으로 발행될 예정이다. 신보는 지난 4월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 업무협약’을 체결,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신보의 ‘녹색자산유동화회사보증’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에 부합하는 녹색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및 외부 검토기관의 적합성 평가를 통과한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6대 환경목표(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 가능한 보전, 순환 경제로의 전환, 오염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달성에 기여하는 녹색 경제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정한 ‘가이드라인’이다.
이번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중소기업까지 적용해 ‘녹색채권’을 발행한 국내 최초 사례다. 기보는 녹색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기업이 녹색채권을 발행하면 신보가 해당 채권에 유동화회사보증 및 3년간 연율 0.2%포인트의 금리 인하 혜택을 지원하는 식이다. 이 밖에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녹색채권 발행 기업에 대해 발행일로부터 1년간 최대 연율 4%포인트의 이자를 지원할 예정이다.
P-CBO란?
P-CBO는 자산담보부증권을 뜻하는 CBO(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와 프라이머리(Primary)의 합성어다. 일반적인 CBO가 금융기관이 보유한 채권을 유동화하는 반면, P-CBO는 발행시장(primary market)에서 신규 발행한 회사채를 기초로 한다는 측면에서 ‘프라이머리’라는 명칭이 붙었다.
P-CBO는 기업이 신규로 발행한 회사채를 주관 증권회사가 인수해 유동화회사에 양도하고, 유동화회사는 양도받은 자산을 기초로 정책금융기관의 신용보강을 거쳐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은 유동성이 부족하지만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자산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 및 유통하는 방법이다.
P-CBO는 정책금융기관의 신용 보강을 통해 금융 위기 시 저신용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차환의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한다. 아울러 자체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를 직접 발행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회사채 발행을 활성화, 은행 대출 위주의 중소기업 자금 조달 구조를 개선하고 자금 조달 비용을 절감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감소한 발행 규모, 어긋난 논점
한편 업계에서는 올해 신보의 P-CBO 신규 발행 규모가 시장 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지난해 말 금융당국은 신보가 5조원에 달하는 P-CBO를 신규 발행할 것이라 발표했으나, 업계에서는 이 5조원이 2년여에 걸쳐 집행될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올해 내로 목표치인 5조원이 집행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P-CBO 발행액은 전년 대비 적게는 30%, 많게는 절반가량 급감하게 된다. 2022년 차환 목적을 제외한 P-CBO 신규 발행액은 4조1,000억원에 달했다. 앞서 2020년에는 5조2,000억원, 2021년에는 4조4,000억원으로 발행 규모가 한층 더 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반면 올해 들어 처음 발행되는 P-CBO는 2조원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업계에서는 올해 차환목적을 제외한 P-CBO 신규 발행액이 2조~3조원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지원을 위해 보증액을 늘리겠다는 발표와는 상반된 행보다. 이에 업계에서는 비우량 발행사를 위한 대책이 가뜩이나 부족한 상황에 P-CBO 지원마저 쪼그라들면 다수의 기업이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장 유동성이 현저히 감소하고, 경기 침체로 투자 시장이 위축되며 수많은 중소기업이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신보는 P-CBO 발행 규모를 확대하기는커녕, 대폭 감소한 지원 금액 일부를 녹색채권에 할당하며 사업 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ESG 경영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생존해야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다. 지금은 위태로운 국내 벤처 시장 상황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무너져 가는 기업들에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