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콘텐츠] 제작비 300억인데, 편성 미지수 “드라마 제작 감소”

“연기할 곳이 없다” 배우 김선영의 토로 드라마 제작 편수 10분의 1 감소, 영화 제작도 축소 글로벌 OTT 의존도 높은 K-콘텐츠, 어디로 가야하나? 공장형 찍어내기 부작용, 제작사 줄도산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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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할 곳이 없다. 드라마 편수는 거의 10분 1로 줄었고, 올해 제작되는 한국 영화는 8편이다.”

영화 <드림팰리스> 개봉을 앞둔 배우 김선영이 최근 인터뷰에서 현재 미디어 환경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가 밝힌 수치적 정확성보다 중요한 건 업계에 몸담은 이의 체감 정도다. 제작되는 드라마, 영화 수가 줄면서 노는 날이 더 많아졌다는 말. 이는 곧 K-콘텐츠의 위기를 의미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제작된 한국 드라마는 160편으로 최근 3년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제작 확정한 드라마는 100편도 되지 않는다. 이조차도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제작비 상승에 대한 부담과 편성의 어려움 때문이다.

지난해 넷플릭스 <수리남>으로 첫 시리즈물 성공 사례를 남긴 윤종빈 감독이 새 드라마 <나인 퍼즐> 제작에 돌입한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용의자였던 이나가 10년 후 프로파일러가 돼 자신을 용의자로 의심하는 경찰 한샘과 함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리는 이 작품에는 배우 김다미, 손석규가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 제작비는 300억원 규모다. <수리남>(350억원)보다 적은 규모지만, 해외 로케나 거대한 세트 제작이 필요 없는 스릴러 장르에 OTT행이 유력한 드라마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투자다.

최근 2~3년새 드라마 제작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 12일 공개한 김우빈 주연의 넷플릭스 <택배기사>의 제작비는 250억원에 달한다. 올해 공개 예정인 디즈니+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 <무빙>과 이민호-공효진이 출연하는 <별들에게 물어봐>는 무려 500억원의 제작비를 들였다.

그 배경에는 해외 OTT 플랫폼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히트와 함께 거대 자본이 드라마 시장에 흘러 들어오면서 K-드라마 판이 커졌다. 한국 콘텐츠의 가능성을 감지한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본력을 K-콘텐츠에 쏟아부었다. 2년 전 기준 미국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110억원이다. 당시의 한국 텐트폴 드라마 <오징어 게임>, <아스달 연대기>, <미스터 션샤인> 등의 제작비가 회당 15~30억원인 것과 비교했을 때, 약 4~10배가량 차이가 난다.

넷플릭스에게 한국은 가성비 좋은 콘텐츠 시장이다. 적은 돈으로 전 세계 소비자를 매료할 콘텐츠를 사고, IP(지식재삭권)까지 확보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콘텐츠 광산’이었을 터다. 이에 넷플릭스는 좋은 성적을 낸 K-드라마 후속편 제작을 확정했다. 확고한 팬덤을 가진 시즌제 콘텐츠로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전략이다. 258억원 제작비를 들여 약 1조 2,876억원에 달하는 가치 창출을 이뤄낸 <오징어 게임> 또한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오징어 게임> 흥행은 국내 콘텐츠 시장의 성공 지표 및 목표가 됐다. 많은 이들이 ‘제2의 오징어 게임’을 꿈꾸며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다. 팬데믹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로 OTT 사용자가 증가하면서 OTT형 콘텐츠도 늘었고, 신인 기용이 증가하여 새로운 얼굴이 발굴됐다. 시간에 쫓긴 쪽대본과 밤샘 촬영에 시달리던 생방 현장이 사전 제작 체제로 전환되면서 미디어 환경도 변화를 이뤘다.

극장 불황과 함께 영화계 인력도 OTT로 넘어왔다. 영화 감독 황동혁(오징어 게임)부터 윤종빈(수리남), 이준익(욘더), 조의석(택배기사), 이종필 (박하경 여행기) 등이 OTT 플랫폼을 통해 첫 시리즈물에 도전했다. 배우 최민식은 14년 만에 디즈니+ <카지노>로 장편 드라마를 찍었다. 그 외에도 한석규(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송혜교(더 글로리) 등 많은 배우들이 OTT 드라마에 얼굴을 비췄다.

OTT 콘텐츠가 집중받다보니 제작비도 무섭게 상승했다. 애플TV+은 동명의 소설 원작 시리즈 <파친코>에 무려 1,000억원을 투자했고, 시즌2도 제작 중이다. 이전에는 300억원대 제작비가 투자된 대작이 1년에 한두 편이었지만, 현재는 300억원이 평균 수준이며 500억원까지도 훌쩍 뛰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엔데믹 시대 도래와 함께 야외 활동이 재개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OTT 사용자가 감소세를 보이며 국내외 플랫폼은 콘텐츠 제작 및 투자를 줄였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가장 강력한 무기임에도 수익성 개선을 위한 선택을 감행했다. 여기에 지상파 3사, 케이블 채널 등이 경기 악화 및 광고 축소 등을 이유로 수목극을 폐지하며 드라마 편성을 줄였다.

그 결과 방송계에서는 80여 편의 드라마가 편성받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절반 이상의 작품이 사전제작을 마쳤고, 30여편 정도는 현재 제작 중이다. 억대 몸값의 톱스타가 출연한 작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순위 글로벌 OTT의 선택을 받지 못한 드라마는 지상파, 케이블 채널, 국내 OTT 등을 전전하다가 채널 파워가 약해도 손 내밀어 주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방영 일정을 받고, 이후 해외 판권 판매 등으로 수익 구조를 개척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공장처럼 찍어낸 수많은 드라마는 K-콘텐츠의 거품이자, 시장을 흔드는 위험 요소다. 아무리 넷플릭스라도 한 해 수용할 수 있는 콘텐츠는 한정되어 있다. 자사 IP로도 풍족한 디즈니+는 수익 악화로 보유한 콘텐츠를 삭제하는 상황이다. 국내 OTT 플랫폼은 여력이 없다. 국내 업계 1위 티빙, 1위를 내어주고 하락세를 탄 웨이브는 각각 1,0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 중이다.

영상등급위원회 「2022영상물등급분류연감」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매년 1,000편 이상 영상등급분류를 신청하는데, 한국 콘텐츠는 1%대에 불과하다. 애플TV+ 또한 99% 이상 외화다. 토종 OTT 웨이브는 HBO와의 콘텐츠 협약으로 외화 비율이 늘고 있다. 실질적으로 OTT 플랫폼 속 K-콘텐츠의 자리는 굉장히 좁으며 포화 상태라는 것.

전문가들은 “제작비 증가는 턱없이 높아진 출연료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콘텐츠 퀄리티 상승을 위해 기술적인 부분에 더 투자하게 된 부분도 물론 일정 부분 차지하지만, 드라마 제작 수가 늘면서 일시적으로 배우 부족 현상이 벌어졌고, 신인 캐스팅도 어려웠던 시기가 존재하는 만큼 연기자 몸값이 해도 너무하게 올랐다는 의견이다.

드라마가 비운 자리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저렴한 예능이 차지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상파 관계자는 “드라마 편성은 예능 프로그램보다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예능의 경우 드라마의 10분의 1 수준의 제작비면 충분하다. PPL, 광고 등에 대한 위험 부담도 줄어든다.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모험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K-콘텐츠 위기 경고음은 가장 먼저 제작사로 향한다.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은 본래 방송국이 권한을 갖고 외부 제작사에 제작 수주를 주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OTT 시대의 시작과 함께 제작사 체제로 전환됐고, 영상물 증가와 함께 여러 제작사가 설립됐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비는 두 배 이상 올랐는데, 광고 시장은 절반으로 줄었다. 해외 자본 투자도 급감하면서 제작사 절반 이상이 심각한 재정난과 도산 위기에 놓였다”고 털어놨다.

앞서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한 미국의 드라마 제작 구조적 특성을 살펴보면, 네트워크와 드라마를 직접 제작하는 제작사(스튜디오)사이의 제작비 투자나, 저작권 수익 배분에서 비교적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드라마 전체 제작비의 일부를 네트워크에서 부담하여 드라마를 제작하고, 그 제작비와 적정 수익을 1차로 네트워크 방송을 통해 회수한 이후에 다양한 채널로 유통되어 발생하는 부가 수익에 대해서는 네트워크보다 스튜디오가 더 많은 비율로 수익을 배분하는 구조다.

시장 규모가 거대한 만큼 창의적 소재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공급되며, 이를 검증하는 프로듀서 시스템 및 파일럿 작품 제작 후 본격적으로 시리즈물 제작을 결정하며 나름의 안정성을 기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작품 제작과 관련된 연기자, 작가, 프로듀서, 기술 스태프 등 각 영역 신인(입문자)이 단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내 특수효과(VFX) 부문을 비롯해 여러 기술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까닭이다.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누리던 우리 드라마, 영화, 예능 등은 이제 ‘K-콘텐츠’라는 명칭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OTT-콘텐츠 업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콘텐츠의 글로벌화’를 외친 결과 시장은 과열됐고,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더 이상 나눠 먹을 파이는 없다. 5월 한 달 동안 공개된 OTT-TV 드라마, 예능만 20편 이상이다. 매주 3~4편 이상의 새 콘텐츠가 공개되었다는 의미다. 과연 시청자는 몇 편이나 시청할 수 있었을까?

토종 OTT는 출혈 경쟁을 멈춰야 하고, 제작사는 한 방을 노린 드라마 제작을 자제해야 한다. 지겨울 정도로 많은 웹툰의 영상화, 엉성한 장르물, 시즌제를 염두에 둔 반쪽짜리 시리즈, 어디선가 본 듯한 독창성 없는 콘텐츠 등에 한국 시청자들은 혹평으로 이미 경고를 보냈다. 당장은 콘텐츠 수가 줄어드는 모양새가 되겠지만, 글로벌 OTT 의존도를 줄이고 제작비가 안정세를 찾을 때까지 국내 콘텐츠 시장의 건강한 구조를 재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