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창작 영역의 침략자?
AI는 창작 영역의 침략자? 기술 발전에 의한 콘텐츠 산업의 변화 “일자리 위험? 아직 먼 얘기…인류 미래 고민해야”
창작 영역 비상, AI의 침공이다.
바야흐로 AI(인공지능)의 시대, 콘텐츠 산업에 변화가 일고 있다. 최근 콘텐츠 업계에는 AI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작’에 AI가 도입되면서 여러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미술부터 글쓰기, 게임 등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미국작가조합(WGA)이 OTT 플랫폼 작가 처우와 근무 환경 개션, AI 사용 제한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할리우드 작가의 경우 에피소드 편수를 기준으로 임금을 받는데, OTT 콘텐츠가 주류로 떠오르며 소득이 줄었고 프리랜서 형태 단기 고용이 늘면서 생활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 여기에 기업들이 AI를 활용해 대본을 작성하고, 수정과 보완 작업을 작가들에게 맡기면서 일자리까지 위협받게 됐다는 주장이다.
작가의 글쓰기는 인간의 고유 창작 영역으로 여겨왔다. 기술의 영향을 가장 늦게 받을 거라 생각했던 ‘창작’이 AI에 가장 먼저 점령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받은 분위기다. 작가조합은 작가의 작업물을 AI 학습 훈련에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며 AI 대본 작성 반대를 외쳤다. 지난 2일부터 시작된 파업은 장기화되며 OTT는 물론 방송국 등 여러 콘텐츠 시장이 차질을 빚고 있지만, AI로부터 자리를 지키려는 이들의 의지에 많은 이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요즘 한국에서는 ‘AI 웹툰’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3일 공개된 네이버웹툰 신작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작가 사람살려.)이 생성형 AI로 제작된 웹툰이라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독자들의 별점 테러가 이어졌다. 무료 공개된 1화 별점은 10점 만점에 1.99점으로 600여편 중 최하위에 가깝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다른 작품과의 유사성과 AI 그림에서만 나타나는 어색한 색, 디테일 등을 지적하는 글이 게시됐다. 더불어 다른 작가의 그림을 무단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웹툰 제작사 블루라인 스튜디오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AI로 후보정 작업을 했다. 창작의 영역에서는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해명하고, AI 보정 없는 버전을 재업로드 했다. 그러나 웹툰 업계는 ‘AI가 작가의 자리를 대체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많은 독자들 또한 “AI가 쓴 글과 그림은 보고 싶지 않다”며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네이버웹툰은 ‘AI 웹툰’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공모전에서 AI 작품을 허용하기로 했고, 네이버웹툰 일부 카테고리에서 공개되는 작품을 AI 교육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약관을 수정했다. 저작권 침해 여지만 없다면 AI 작품도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AI가 만든 콘텐츠는 불특정 다수의 작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 자체가 저작권 침해의 결정물인 것. 더불어 앞서 미국에서는 AI 생성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AI 웹툰’을 두고 큰 파장이 몰려올 전망이다.
AI의 침략, 콘텐츠는 지금
우리나라 SF 작가 윤여정은 지난 4월 챗GPT와 협업한 단편 소설 『감정의 온도』를 발표했고, 중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모옌은 챗GPT를 활용해 축사를 썼다고 밝혔다. 미국 미술대회에서는 AI를 활용해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한 그림이 1위를 차지했고, 독일 사진작가는 AI로 만든 이미지로 국제 사진전에서 우승하자 수상을 거부했다.
AI는 글(대본, 소설 등), 사진, 영상, 음악 등 콘텐츠 산업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창작’은 인간만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 주최로 열린 ‘2023 콘텐츠산업포럼’에서 장동선 교수(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에 따르면 주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무엇을 창작하고 생산하는 일은 AI가 제일 잘하는 일 중 하나다. 그만큼 AI 기술을 활용하여 얻는 기회와 효용성이 높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조현래 콘진원 원장은 “콘텐츠는 익숙한 것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생성한 AI의 등장은 우리에게 ‘창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서”콘텐츠 산업 전반에 AI가 적용되면서 제작 기법의 효율적 변화와 경제적 효용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콘텐츠 산업에서 인간만이 창작의 주체인지, AI의 창작의 차별점과 같은 점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AI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김영보 교수(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에 따르면 챗GPT-4는 현재까지 5조 개의 문장 학습을 완료,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장동선 교수(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는 “GPT-4, 뤼튼, NovelAI 등 여러 종류의 ‘AI 알고리즘’이 글을 쓰고 책을 쓴다”면서 “데이터만 있다면 「반지의 제왕」「해리포터」「스타워즈」 등 방대한 시리즈로 유명한 소설들의 세계관을 하나로 묶어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AI의 등장으로 인해 콩쿠르, 대회 등과 같은 시스템 자체의 존재 의미를 돌이켜 묻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단순히 콘텐츠 산업의 변화를 넘어 인류 미래에 대한 큰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손윤선 팀장(크래프톤 버츄얼 프렌드팀)도 AI 기술이 제작 공정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 거라고 예측했다. 콘텐츠 제작 속도를 높여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지속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성필 개발부장(픽셀플레이)은 ‘AI 학습법’을 ‘반려견 훈련법’에 비유했다. 학습을 통해 옳은 행동을 하면 보상을 주고, 그 행동 방식을 점차 강화해 간다는 것. 콘텐츠 산업 전반에 적용되고 있는 AI 기술에 대해 김대식 교수(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는”인간은 무엇을 할지 상상하고 구상한다. 그 내용을 챗GPT에 구체적으로 설명해 창작을 하게 하면 된다. 결과물을 선택하는 건 사람”이라며 “챗GPT는 창작뿐만 아니라 요약, 교정이 가능하다. 가장 귀찮은 부분을 챗GPT에게 부탁하면 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상용화만 남았다”고 전했다.
업계와 창작자는 AI에게 일자리는 뺏길까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력 대체’는 아직 먼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AI로 인해 작업이 쉬워진 부분이 있지만, 개발 인력이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개발자의 업무를 편하게 만드는 것 또한 AI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AI 콘텐츠가 급속도로 늘면서 국회와 기업에서는 ‘AI 제작’ 표기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AI를 이용해 제작된 콘텐츠의 경우 그 사실을 표시하도록 하는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2023년 콘텐츠 업계는 공상SF영화에서나 보던 ‘기술 발전에 의한 인간 생존의 위협’에 떨고 있다. 대기업은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AI를 선호하고, ‘대체인력’ 취급을 받게 된 창작자들은 적극적으로 생존권 보호를 외치며 갈등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독자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AI 작품에 아직까지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기업의 물량공세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AI 예술’의 보편화로 언젠가는 익숙해질 수 있다. 창작 영역에서 AI와의 공생 관계가 미래 콘텐츠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