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 실패한 그린랩스, 결국 창업자 쫓겨나고 투자사 손에 맡겨졌다
그린랩스 백기 들었다, BRV캐피탈매니지먼트 의해 정상화 진행 중 메쉬코리아, 마켓컬리 사례 참고 없었나? 뼈아픈 그린랩스의 실책 신중한 투자유치 필요, 무작정 사업 확장하면 무리한 결과 돌아온다
차세대 유니콘 기업으로 업계의 기대를 온몸에 받던 ‘그린랩스(GreenLabs)’가 지난 2월 경영난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한 뒤 결국 최대 주주 및 경영진 교체, 사업구조 재편 등을 통해 재도약에 나설 전망이다. 이에 그린랩스의 핵심 사업이었던 커뮤니티 기반의 데이터 농업 솔루션 ‘팜모닝’을 중심으로 경영정상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농업시장의 디지털화 꿈꾸던 그린랩스, 결국 경영난에 굴복
지난 3일 관련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그린랩스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최대 주주인 BRV캐피탈매니지먼트의 정의민 전무를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고 본격적인 경영정상화에 착수했다. BRV는 LG가 맏사위인 윤관 대표가 이끄는 실리콘밸리 투자회사 블루런벤처스의 아시아 지역 투자회사로 지난해 1월 그린랩스에 1,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또 지난 3월에는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와 함께 전환사채(CB) 방식 및 창업자의 지분을 차등 감자하는 조건으로 500억을 추가 투자하기도 했다. 그린랩스의 대규모 적자가 경영진의 경영 실책과 일부 임직원의 부정에 따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린랩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업 종사자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농업 사업전략과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의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는 대한민국 대표 애그테크(AgTech·농업 기술) 기업으로, 지난 2017년 법인 설립 이후 국내 최초로 농업 분야 기업 가치 1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지난 2월 60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을 구조조정하고 공동대표 3인 중 2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하락 조짐을 보였다. 이에 그린랩스의 최대 주주로 등극했던 BRV캐피탈매니지먼트가 일명 ‘그린랩스 2.0’의 경영정상화에 나선 것이다.
경영정상화의 핵심은 데이터 농업 솔루션 ‘팜모닝’을 고도화하고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는 데에 있다. 무리한 국내 농산물 도매 유통사업을 접고 ‘데이터 기반의 농업혁신’이라는 초기 사업모델과 비전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창업자들의 지분 감자, 차입금 문제 등 현안도 해결 중이다. 그린랩스는 정상화 방안으로 창업자 3명 중 신상훈 대표를 제외하고 최성우·안동현 대표의 주식을 각각 90%, 100% 무상감자 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해당 절차를 모두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350억원 규모의 차입금은 금융기관들과 만기 연장·재융자(리파이낸싱) 등을 협의 중이다.
SK스퀘어와 DS네트웍스 등 그린랩스의 다른 투자자들은 우선 BRV에서 주도하는 경영정상화에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를 통해 어떻게 기업을 정상화할지가 향후 위기에 빠진 스타트업들의 정상화 과정에서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의 한계인가, 예견된 결말인가?
언론은 1,700억원이라는 거금을 유치하고도 망해버린 그린랩스의 추락에 국내 스타트업의 살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그러나 벤처 관계자들은 그린랩스 사태는 “예견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그린랩스는 기업가치 8,000억원을 인정받고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뒤 공격적인 인재 영입과 유통망 조성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유통 시장 조성 중 수백억 원대 ‘미수 채권’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돈맥경화’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린랩스의 사업 전략은 농민으로부터 시세보다 비싸게 구입한 농산물을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요·공급을 예측해 과도하게 발생하는 기존 유통 마진을 줄여보겠다는 시도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농산물 유통 구조상 현금 대신 ‘어음’이 오고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즉 그린랩스가 농민으로부터 100억원가량의 농산물을 구입해 판매하면, 구매자는 그린랩스에 당장 100억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음을 주는 구조란 의미다. 따라서 아무리 외상 매출이 괜찮다고 하더라도 그린랩스 입장에서는 당장 농민에게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만큼 대출 받아서라도 자금 유동성 마련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이는 전문 용어로 ‘매출채권 팩토링’이라고 한다. 그린랩스는 또 개발용 신형 언어인 ‘함수형 언어’를 활용하기 위해 인력을 모집하려는 과도한 시도도 감행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개발자 콘퍼런스 ‘데브 다이브 2022’를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개최해 ‘함수형 개발자로 성장하기’라는 주제로 함수형 언어에 대한 개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벤처 관계자들이 지적한 ‘예견된 추락’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 자본 시장 위축, 과도한 인재 인프라 투자 등이 맞물린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 역시 “너무 성장만 외치며 달려오다 보니 거시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특히 그동안 농산물 유통을 전문으로 하던 회사가 아닌 스타트업이다 보니 시장 환경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고 급하게 달렸다”고 밝혔다.
후발주자들 이번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유망 스타트업으로 각광받던 부릉(메쉬코리아) 역시 지난해부터 경영 위기에 빠진 바 있다. 라이더 업체 간의 경쟁 과열로 인한 영업마진 축소와 투자사들의 요구로 결국 창업자인 유정범 전 의장은 회사에서 쫓겨나게 됐다. 결국 메쉬코리아는 hy(전 한국야쿠르트) 기업이 인수했고, 매각 절차도 완료된 상태다.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 중 하나인 마켓컬리(컬리)도 지난 1월 코스닥 상장을 철회했다. 새벽 배송으로 고비용 구조가 계속되는 상황에 증시 분위기마저 나빠져 상장 추진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오아시스 역시 지난 2월 코스닥 상장을 포기했다. 예비 투자자들의 수요 가격이 기대 가격의 절반에 못 미친 까닭이다.
벤처 관계자들은 그린랩스가 마켓컬리, 오아시스, 메쉬코리아 등의 국내 유통 업계를 먼저 파고든 기업들의 사례를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린랩스에 투자한 투자사들 역시 그린랩스에 투자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린랩스에 10%의 지분을 갖고 있는 BRV캐피탈매니지먼트와 7%의 지분을 갖고 있는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에게는 ‘선관주의의무’가 있다. 선관주의의무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의 줄임말이다. 어떤 업무를 맡아 수행하는 사람이 그 직업이나 지위에 대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반드시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다른 투자사들은 이 두 회사에 1,7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소멸하다시피 한 상황을 방치했다는 점에서 선관주의의무를 저버린 것 아니냐고 비판을 하는 것이다. 이에 투자사는 “두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며 2022년 하반기부터 사태를 인지했고 수시로 경영 보고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메쉬코리아 사례와 마찬가지로 그린랩스 또한 창업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고 회사는 투자사들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현재 메쉬코리아가 경영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그린랩스는 어떤 대응책을 펼칠지 그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한 타 스타트업들 역시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과 이 같은 선례들을 반면교사 삼아 투자 유치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