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4.0] ②기초과학 교육 부실화부터 해결해야 신성장4.0도 가능
기초과학 교육 부실화, 현장에 연구 결과 이해하는 인력 없어 미래 기술 기준 연구 역량도 글로벌 수준 5년 이상 뒤처져 국내에 인력 없어 포기하는 벤처기업도 많아
[인재4.0]은 정부가 주도하는 ‘신성장4.0’의 핵심이 선도 산업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다는 벤처경제 시리즈입니다. 즉석에서 바로 활용하는 단순한 기능 인력뿐만 아니라, 고급 과학 기술을 도전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비롯한 주요 자연과학 도구 훈련이 탄탄하게 갖춰진 인재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영향력이 큰 연구개발(R&D)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을 키우고 도전 정신을 장려하며 한미 간 과학기술 교류를 늘려야 합니다”
김영기 재미과협 회장(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은 지난해 8월 한미과학기술학술대회(UKC)에서 한국이 기초과학 기술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이 같이 설명했다. 지청룡 전 재미과협 회장(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물리학과 교수)도 “미국이 기초과학 투자를 많이 해온 게 세계 최고 과학기술력의 비결”이라며 “한국도 기초과학에서 브레이크 스루(Breakthrough·돌파구) 마련을 위한 기술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양자기술과 우주 등 국가전략기술도 키울 수 있고 임팩트가 큰 응용기술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자리에서 서은숙 전 재미과협 회장(메릴랜드대 물리학부 교수)은 “한국이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도약하려면 장기적·지속적으로 기초과학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성장4.0’, 민간은 ‘정부 지원 사업 선정만 되자’는 분위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대통령 선거의 공약으로 내세웠던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신성장4.0’을 기치로 주요 미래 산업에 대한 정책을 연달아 제시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미국 국빈 방문 중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양자 기술에 대해 미국과 협력 관계를 이어 나갈 것을 약속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10개국 양자기술 모임의 일원으로 참석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주요 연구자들은 한국의 현재 양자기술 이해도 및 인력 수준으로는 국제적인 협력을 이어가기에 크게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2026년까지 초전도 방식의 50Q(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구글, 메타 등의 일반 사기업들이 300Q(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격차가 크다.
올해 들어 정부가 신성장4.0을 기치로 주요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이어 정부 각계 부처에서 프로젝트들을 제시하기 시작하자, 정부 프로젝트들을 주로 맡는 민간 단체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프로젝트 전문 기업’ 관계자는 “우리는 B2G(기업-정부간 거래) 프로젝트로 수익을 만들어 내는 회사들인 만큼, 공무원들이 보고서 잘 만들 수 있도록 국내 주요 관계자, 해외 주요 관계자들이 정부 요구사항 중 쉽게 할 수 있는 내용들을 조사해서 매칭(Matching)해주는 업무만 한다”며 “어차피 공무원들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프로젝트해서 보고서만 올라가고 실적만 쌓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게 그쪽의 분위기”라고 답했다.
생물학 전공으로 출연연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밟고 있는 S씨도 같은 반응이다. “공무원들이 우리가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며 “정부 지원금이 들어오니 그간 못 해봤던 것들을 좀 해보고 싶지만, 이해도가 낮은 공무원이 시키는 업무만 해야 하니 연구 성과가 실제 기술 발전에 도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정부에서 지원하겠다는 의지에는 기대감을 갖고 있지만, 이른바 ‘보여주기’ 이외에 실질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불신이 연구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민간과 협력하려면 기술 적용할 수 있는 분야부터 찾아야
한상욱 KISST 양자정보연구단장은 “이 분야에 많은 인력을 키우는 생태계 조성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인력양성을 위해 가장 많은 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기업이 늘어나 관련 장치를 만들고 서비스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단장에 따르면 “현재 KT나 현대중공업 등에 납품된 양자기술 관련 장치는 KIST가 직접 만든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을 강소기업들이 해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상품을 팔 수 있을 정도의 기반기술은 어느 정도 되었으니 관심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특구도 만드는 등 시범사업을 통한 양자 산업 마중물을 만들어 본격적인 산업 창출 확산의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씨의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 일선에서는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지만, 현장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능성을 찾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그러나 정작 현장 관계자들이 전혀 이해도가 없어 기술 협력을 통한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현장과 연구인력 간의 이해도 격차에 따른 불만은 스타트업계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AI 기술의 광고 시장 적용에 대한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창업한 A씨는 그간 벤처투자업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광고업 관계자들과 수백 차례 미팅 끝에 한국에서 사업화 및 매출액을 만들어 내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밝혔다. 실리콘 밸리의 주요 기업들을 거치며 AI 기반 광고 알고리즘 역량을 쌓았으나, 국내에서는 이를 이해하는 인력들을 만나지 못했고 구글, 메타 등의 기업에서 유사 업무 경력이 있었던 경우도 국내에서 세일즈 업무를 주로 했거나, 세일즈 보조팀으로 그래프 생산 등의 업무만 담당했을 뿐, 알고리즘 이해도가 낮아 사업성을 보지 못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와 유사한 경험을 겪고 사업을 이어 나가고 있는 몰로코의 안익진 대표도 한국보다 미국에서 사업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몰로코는 4조원의 몸값으로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직 마케팅 업계 관계자 K씨는 몰로코의 애드테크 기술력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도를 갖춘 상태에서 구글, 메타 등에서 제공하는 광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내 담당 인력을 한 명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K씨 역시 AI 마케팅 기업을 창업했다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지난 2021년부터 재취업 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매칭과 같은 단순 마케팅 업무를 위주로 하는 기업에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