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턱 넘은 복수의결권, 그 속에 숨어든 ‘모순’과 ‘함정’

복수의결권, 2년 4개월 만에 국회 문턱 넘었다 주주평등원칙 어디로? 복수의결권의 ‘모순’ 복수의결권으로 창업주 보호? “다른 방법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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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계의 숙원인 ‘복수의결권’이 2년 4개월 만에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복수의결권이란 주식 한 주당 2개 이상의 의결권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제도로, 이를 통해 창업주는 1주당 10배 혹은 20배 이상의 의결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복수의결권의 입법 취지는 자본 희석에 의한 경영권 위협 및 창업주 배제 현상을 줄이기 위함이다.

복수의결권으로 경영권 방어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시행령 개정이다. 정부는 앞으로 시행령 개정을 마무리하고 오는 10월경 복수의결권을 본격 시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 문제가 그리 간단하게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결권에 대한 찬반 논란이 여전한 데다 허점들도 제대로 메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이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를 할 경우 언제까지 복수의결권을 인정해 줘야 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당초 복수의결권은 기업 성장 전 과정이 아닌 본격적으로 모험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게 되는 단계에서 효과적이다. 그런 만큼 복수의결권은 엔젤투자, 벤처캐피탈(VC)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한다기보단 IPO 단계에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옳다.

복수의결권에 숨겨진 함정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숨어 있다.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 따르면 상장 이후 황금주(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데 3년간의 유예 기간이 부여된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결국 상장 후 3년 뒤엔 복수의결권이 폐지돼 다시금 1주 1의결권으로 회귀한단 의미다. 결국 벤처기업들 입장에선 벤처기업법을 통해 상장할 이유가 없다. 3년 만에 효능이 사라질 제도를 굳이 리스크를 무릅쓰고 이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년 후 복수의결권이 폐기된다면 이후 일어날 경영권 위협에 대한 방어 논리에 더욱 힘이 실릴 가능성도 있다. 복수의결권 유지와 관련한 법안, 상법 전반 개정에 대한 논의가 진척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이는 결국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 자체를 무너뜨리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 당초 투자자들이 이사회를 통해 창업주를 견제하는 게 자본주의 주식시장 제도의 핵심인 만큼, 황금주가 도입되면 이 같은 견제가 사라지게 된다. 창업주의 배임·횡령을 막고 소주주들을 보호하는 데 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한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권한 집중 및 사익 추구 위험 확대로 이어진다. 복수의결권의 본질이 창업주의 지분 희석을 막기 위해 기존주주나 소주주들의 자본을 희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본디 상법상 이사회 및 주주총회는 회사의 업무 집행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는 기관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주주의 입김이 사실상 회사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할 때가 많다. 3년간 복수의결권 유예기간이 상장 후 소주주 권리 보호를 위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IPO 후 복수의결권이 폐지될 경우 회사 경영권이 투자자들에게 완전히 넘어가 회사의 체질이 바뀔 수도 있다.

업계의 숙원 복수의결권이 지닌 ‘허구성’

복수의결권이 경영권 방어 및 기업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허구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카카오, 네이버, 셀트리온, 배달의 민족 등 유니콘기업들은 IPO, 기업합병을 통한 우회상장, 투자 회수 M&A 등에 성공했다. 그러나 복수의결권을 보유한 기업은 역설적이게도 기업합병을 통한 우회상장 등에서 더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수 있다.

복수의결권 주식이 있어야 경영권이 방어된다는 점 자체도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GIO는 3.73%의 지분으로 네이버를 지배하고 있다. 창업자의 경영이 주주 일반의 이익과 부합될 경우 지분과는 관계 없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오히려 황금주가 기업에 있어 독이 될 수도 있다. 벤처생태계의 순환구조(창업→성장→회수) 측면에서 볼 때 황금주는 무능력한 경영진까지 과도하게 보호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결권이 없다 해서 의결권을 방어할 수단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상법’ 제344조의3(의결권의 배제·제한에 관한 종류주식) 제1항에 따르면 회사는 의결권이 없는 종류주식이나 의결권이 제한되는 종류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실상 대주주의 의결권 방어가 가능하다. 창업주 보호를 위해 복수의결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소 불투명한 이유다.

복수의결권은 벤처업계의 오랜 숙원이지만, 결국 복수의결권이 만병통치약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해외 사례를 보면 복수의결권을 도입한다고 꼭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춘 상태에서 IPO를 앞둔 기업들이 복수의결권을 도입할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 정부는 비상장 중소벤처기업을 유니콘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함이란 명목 아래 복수의결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복수의결권을 지닌 기업에 선뜻 자금을 투자하겠다 나설 만한 VC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의결권 도입의 초침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업계의 오랜 숙원이 이뤄질 타이밍인 만큼, 정부는 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시행령을 만들어 업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