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 펀드 조성 뚝, 얼어붙은 벤처투자 시장
지갑 닫은 투자자들에 벤처 업계 울상, 벤처 펀드 조성도 위축 정부 대응책 두고 효과 떨어진다며 임시방편 아니냐는 지적도 전문가들, 벤처투자 시장 활성화 위해 근본적 해결책 필요하다 강조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벤처캐피탈(VC) 업계가 펀드 조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긴급하게 벤처투자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 공급 및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한도를 상향 조정했으나, 업계에서는 이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본질적인 벤처투자 시장 회복을 위해 투자 수익률 제고 및 중간 출자금 회수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벤처투자 시장 위축에 따라 VC 업계 펀드 조성 차질 생겨
23일 VC 업계에 따르면 국내 A 벤처캐피탈은 현재 조성 중인 펀드를 최종 목표의 절반 수준으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기관을 포함한 주요 LP가 벤처투자 운용 한도를 축소하면서 출자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A 벤처캐피탈 대표는 “당초 펀드 목표액은 1,000억원이었으나 민간 투자자 및 금융기관들의 지갑이 닫히면서 절반 수준인 500~600억원으로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금융기관들의 최근 벤처투자는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분기 금융기관의 벤처투자 규모는 911억원으로, 전년 대비 88.5%(6,983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같은 기간 전체 벤처펀드 중 금융기관 출자금 비중도 29.6%에서 16%로 위축되는 추이를 보였다.
벤처투자 시장의 과도한 위축을 우려한 정부는 지난달 벤처투자시장 활성화를 위한 패키지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한도를 상향 조정하고, 약 10조5,000억원 규모의 성장자금을 수혈하는 등 민간 벤처투자의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다.
정부의 일시적 대응책 도움 안 돼
이런 정부의 ‘긴급 수혈’에도 불구하고 VC 업계는 이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은행 및 제2~3금융권을 중심으로 하는 출자사업이 정부 지원을 통해 재개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규모가 작은 수준이며 출자 기준도 매우 까다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벤처 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의 비상장주식에 대한 위험가중자산 평가 체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태운 여신금융협회 본부장은 “비상장주식은 상장주식보다 약 1.3~1.5배 위험자산으로 가중해 평가돼 은행 건전성 지표인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는 비상장주식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벤처투자 거품’이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스타트업 지원 확대 및 규제 완화를 약속한 정부와 함께, 투자자들 또한 돈만 넣으면 계속 커진다는 기대감에 대규모 투자금이 벤처 업계에 대거 쏠렸으나, 이제는 국내 시장에 불었던 스타트업 투자 열풍이 가라앉고, 본격적인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창규 우리벤처파트너스 대표는 “지금까지의 국내 벤처 시장의 활황은 스타트업의 본질적인 가치 창출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코로나19에 따른 유동성 시장의 혜택을 본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과도한 유동성으로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버블이 생겼으며 실제 지난해 하반기부터 거품이 꺼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벤처투자가 혹한기를 맞은 가운데, 민간 자금으로 조성된 소규모 벤처펀드인 ‘라구나 유니콘플러스펀드’ 등장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유니콘플러스펀드가 정부 예산이 포함된 정책 자금, 연기금, 금융권 자금을 전혀 받지 않고 순수 민간 자금으로 결성됐다는 점이다. 이는 정책 자금을 활용하는 기존 벤처펀드가 투자자 선정에 정부의 간섭을 받는다는 점과 함께, 시장 불황기에 리스크가 큰 도전을 하기보다는 소액 투자를 통한 안전한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LP 위한 벤처 투자 수익률 제고 및 중간 시장 활성화
벤처 시장 위축의 큰 요인 중 하나가 거시 경제 침체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불안해하는 투자자들이 충분한 투자 인센티브를 찾기 위해서는 벤처 투자에 그만큼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요즘과 같은 경기 불황 기조에 우리와 같은 민간 LP는 고금리 채권에만 투자해도 수익이 난다”며 “굳이 지나친 리스크를 감수하며 벤처투자를 할 인센티브는 적다”고 밝혔다.
한편 벤처투자 재활성화를 위해 LP 세컨더리 펀드가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LP 세컨더리 펀드는 다른 사모펀드(PEF)와 벤처조합 등의 LP 지분 매입을 주목적으로 하는 펀드로, 이를 통해 LP들이 투자 중간 과정에서의 유동성 확보를 가능케 하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중간 출자금 회수가 용이해진다면 그간 유동성 부족 문제로 출자를 꺼렸던 민간 LP들이 다시 벤처 시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LP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LP 지분 거래의 행정절차 간소화와 운용사(GP)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LP 지분 거래가 확정되더라도 통상 펀드 규약의 문제로 물리적으로 3주 내지 4주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LP 거래를 위해서는 관련 절차에서 정부가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LP 지분을 매각하는 주체인 GP가 해당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