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스타트업 잘만 키우는데’, 실적 저조한 국내 AC의 속사정은

美 유수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션’, 성공 비결은 이에 비해 성적 저조한 韓 액셀러레이터 업계 문제는 자금 문제가 아닌, ‘실력’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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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C 와이컴비네이터 CEO 개리 탄(Garry Tan)이 자사 사업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GettyImages

미국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션’은 업계에서 ‘스타트업 성장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와이콤비네이션의 성공 요인을 양질의 교육과 인프라 제공에서 찾는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그간 액셀러레이터 업계가 출자에 차질을 겪거나 ‘수탁 거부’를 당하는 등 스타트업 육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더라도 와이콤비네이션처럼 교육과 인프라 제공이 선행되지 않으면 ‘돈만 버리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AC 업계 유니콘 메이커’, 와이콤비네이션

시장조사업체 피치북(PitchBook)이 13일 발표한 ‘엑셀러레이터 페이스오프(Accelerator Face-off) ’에 따르면 미국 액셀러레이터(이하 AC) 와이콤비네이터(Y Combainator, 이하 YC)의 손길을 거친 스타트업 중 약 4.5%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유니콘’이 된 것으로 집계됐다.

AC 업계에서 YC는 스타트업의 ‘마이더스’로 통한다.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YC의 이른바 ‘유니콘 생성율’은 5.4%로, 동종 업계 라이벌인 테크스타(2.2%), 매스챌린지(1.8%), 500글로벌(1.5%), SOSV(0.3%)와 비교하더라도 가히 압도적인 수준이다. 한편 2010년에서 2022년 까지 누적 자본 조달 금액에서도 YC가 다른 상위 AC를 크게 상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5년 설립된 YC는 사업 초기 에어비엔비(Airbnb), 레딧(Reddit) 등의 유수 기업에 성공적으로 투자하면서 처음으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YC는 투자 기업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자문 및 창업가간 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이 중에서도 전문가들이 YC가 세계 최고의 AC로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은 다름 아닌 ‘창업자 간 네트워크’에 있다고 분석했다. VC, 스타트업 창업자, 미디어 관계자 등 업계 관계자들이 한자리 모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YC의 ‘데모데이’는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핫한 이벤트 중 하나로 불린다. 이를 통해 YC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강력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는 한편, 다른 대규모 투자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또 다른 펀딩을 유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AC 업계가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는커녕, 벤처 펀드 조성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 주도의 ‘모태펀드 1·2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AC가 결성하는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가 별도로 편성되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AC들이 다양한 벤처펀드를 조성해 초기 스타트업을 육성하라는 취지에서 2021년부터 모태펀드에 AC에 대한 출자 분야를 신설한 바 있다. 또한 당시 중소기업벤처부(이하 중기부) AC가 출자를 받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육성·보육의 목적을 다 할 수 있도록 심사 시 보유 역량과 관련한 평가를 필수 항목으로 구성해 ‘검증된’ AC들만이 벤처 투자에 진입할 수 있게끔 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중기부가 ‘모태펀드 1·2차 정시 출자사업’을 발표함에 따라 모태펀드에서 AC 전용 출자 분야가 사라지면서 육성·보육이라는 AC의 본연의 기능을 살린 펀드 결성이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VC 관계자는 “정책 자금 특성상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회피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며 “이에 보육 활동에 대한 평가 항목이 없어지면서 지방 스타트업 등의 ‘투자 사각지대’에 있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펀드 탄생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그간 벤처펀드 수탁 거부 현상으로 인해 AC 업계에서 벤처펀드 조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과거 라임·옵티머스의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 후 수탁을 담당해 왔던 은행들이 신규 계약에 보수적 움직임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AC 업계에서는 공들여 출자자를 모집하고도 은행의 비싼 수탁 수수료 등 높은 ‘수탁 장벽’ 막혀 펀드 결성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최근 AC협회가 ‘투자조합 수탁 협력을 위한 협약식’을 성황리에 개최하면서 수탁 거부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가 AC 중심의 모태펀드가 출자가 새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해당 협약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 유안타증권이 1년간 협회 회원사의 수탁 업무를 합리적인 수수료로 전담하게 된다. 또한 9일 중기부가 민간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국내 AC를 위해 ‘개인투자조합 재간접펀드’을 출범할 예정이라 밝히면서 비수도권 초기기업 발굴이 가속화될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스타트업계 부흥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AC·VC 역량 제고가 우선돼야 

이처럼 AC 업계의 지갑 사정이 여유로워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VC 업계가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핵심 요소를 여전히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정부 주도의 대규모 ‘돈 쏟아붓기’가 아니라 앞서 살펴본 미국 유니콘 스타트업 YC처럼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교육 및 인프라 제공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의 모범적인 사례로는 대웅제약과 한독이 있다. 이들은 기존 제약 사업 영위와 함께 바이오헬스케어 초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AC 사업을 병행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예비 창업 기업 및 스타트업들에 제약 R&D 자금 지원 및 IR 코칭 등 양질의 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며, 한독은 바이오헬스케어에 특화된 스타트업을 발굴해 초기 자금 지원은 물론 공유 연구 공간과 연구 장비 등 인프라와 프로젝트 개발 컨설팅 등의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AC 자체의 전문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로부터 아무리 자금을 많이 끌어온다고 하더라도 정작 유니콘이 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부족하다보니 AC 업계 자체가 ‘헛발 차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IB 업계 관계자 A씨는 “AC 심사역 중 재무제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인력조차도 찾기 어려운 게 작금의 현실”이라며 “스타트업계에서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선보여도 이를 분간해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