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수소 연료전지’ 설치 허용, 규제는 풀렸지만 수십억원 설치비용 마련길은 ‘막막’

소방청 개정고시 발령·시행, 주유소에서도 수소 연료전지 설치·발전 가능 유해물질 배출 적은 친환경 에너지지만 발전 설비 투자 비용 ‘수십억원’ 출혈경쟁으로 사장되는 주유소 시장에는 ‘그림의 떡’, 정부 지원책 동원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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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종합 에너지슈퍼스테이션 구상도/사진=소방청

정부가 도시가스를 원료로 사용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수소 연료전지’의 주유소 설치를 허용했다. 소방청은 연료전지 설치 시 요구되는 안전기준을 규정한 ‘위험물안전관리에 관한 세부기준 일부개정고시’가 지난 9일 자로 발령·시행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개정고시를 통해 안전성이 담보된 친환경 주유소 ‘미래형 종합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의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침체한 주유소 시장이 막대한 시설 투자비를 부담하며 연료전지를 설치하기는 어렵다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 정부의 지원이 따라붙지 않으면 이번 개정고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규제샌드박스 실증’ 거쳐 안전성 확보

이번 개정고시는 주유소 내 유휴부지에 연료전지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분산형 전원 확산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 골자를 뒀다. 소방청은 국내에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 내연기관 자동차의 주유 설비 외에도 태양광 발전 설비(2009년), 수소 충전 설비와의 융복합(2010년), 전기자동차용 충전 설비(2013년) 등 주유소 내 다양한 발전 설비 설치를 허용한 바 있다.

소방청은 이번 고시 개정을 위해 주유소의 과거 사고 사례 및 연료전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요인을 분석하고, 각종 위험성 평가 및 시뮬레이션 검토를 통해 우선적인 안전 확보 방안을 마련했다. 아울러 도출된 안전 확보 방안을 기존 주유소에 적용, 산업통상자원부와 연료전지를 설치·운영해 보는 ‘규제샌드박스 실증’ 과정을 거쳐 필수 안전기준을 검증·보완했다.

이번 개정고시의 연료전지 설치 주요 안전기준은 △주유소와 연료전지 상호 간 피해 영향 방지를 위한 연료전지 주위 방호담 설치 △연료전지의 하중(약 30톤)을 견딜 수 있는 구조 보강된 건축물 상부에 연료전지 설치 △지상 또는 지상 구조물 상부 연료전지 설치 시 차량 충돌 방지를 위한 보호 설비 설치 △주유소 화재 발생 시 연료전지로의 원료 차단을 위한 수동식 차단 밸브 설치 등이다.

수소 연료전지 발전 설비가 설치된 서울시 금천구 SK 박미주유소/사진=SK에너지

질소산화물·황산화물 배출 적은 ‘친환경 에너지’

연료전지는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의 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와 열을 얻는 장치다. 액화천연가스(LNG)에서 탄소를 떼어내 수소를 만들고, 생산된 수소를 송풍기와 에어히터를 거쳐 연료전지에 빨려 들어온 산소와 접촉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식이다. 전기를 생산한 수소는 깨끗한 물로 변환된다.

수소 연료전지는 일반적인 발전기와 달리 전기 생산 시 고온 연소 과정이 불필요하고,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을 적게 배출한다는 장점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두산퓨얼셀 연료전지 기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배출량은 각각 9g, 0g에 그친다. 아울러 발전 과정에서 오염된 폐수를 발생시키지 않고, 공기 중 산소를 활용할 때 미세먼지를 필터로 걸러낸다는 점도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소 연료전지는 그간 안전 문제로 인해 일반 주유소 등에는 설치되지 못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사고 발생 시 대형 인명피해가 뒤따를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시설물 설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지역 내에서 전기를 생산해 소비까지 유도하는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번 개정고시가 시행되며 주유소에도 연료전지 발전 시설을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진=pexels

휘청이는 주유소들, 수십억원 시설 투자 ‘그림의 떡’

하지만 시장에서는 주유소의 연료전지 발전이 빠르게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에 힘이 실린다. 주유소에서 연료전지를 통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면 전기차 충전소 운영, 잉여 전력 판매 등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주유소에서 전기를 직접 생산해 판매·사용하는 ‘소규모 분산형 발전’은 도심의 전력자립도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미 사양산업으로 접어든 주유소 업계에서는 일반 개인사업자가 연료전지 설비를 도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임대료·인건비 부담, 주유소 업계의 출혈경쟁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며 문을 닫는 주유소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전국에서 1만988개 주유소가 영업 중이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총 198개의 주유소가 문을 닫았으며, 2012년부터 2022년 사이에 1,800여 개의 주유소가 사라졌다.

연료전지 설치비는 통상적으로 수십억원대에 달한다. 일반 대리점주나 자영업자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관련 국비 지원 사업이 부재한 가운데, 아직 초기 단계인 수소 시장에서 과연 투자금 회수가 가능할지도 알 수 없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정유회사 직영점들의 투자 여부마저 불투명한 상황에 개인 사업자를 통한 관련 사업 성장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셈이다. 결국 이번 개정고시를 통해 관련 시장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마중물 지원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