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모펀드가 투자한 기업들, 경제 악화로 줄줄이 파산신청

경제 위축 기조에 쓰러져가는 PE 투자 기업들 전문가들, 2024년 하반기까지 파산 신청 이어질 것 예측 소유권 포기한 PE가 포트폴리오 기업들 헐값에 내놓을 것이라는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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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모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의 파산 신청 건수 추이/출처=피치북(PitchBook)

최근 사모펀드(Private Equity, PE)가 투자한 기업 중 파산 보호를 신청하는 기업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속되고 있는 거시 경제 하방 압력에 기업들이 부채 상환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PE 투자한 기업들, 대다수 파산 위험 직면해

금융시장 조사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5월까지 미국에서 파산 신청을 한 사모펀드 투자 기업(Private equity-backed company)은 18개 이상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파산 신청을 진행 중인 미국 유수 기업으로는 미국 헤지펀드 콜버그크레비스로버츠(KKR)가 소유한 간호 인력 기업 엔비전 헬스케어(Envision Healthcare), 미국 사모펀드 어드벤트 인터네셔널(Advent International)이 투자한 매트리스 제조업체 세르타 시몬스(Serta Simmons), 그리고 글로벌 투자 회사 식스 스트리트(Sixth Street)가 출자한 미디어 거대 기업 바이스 미디어(Vice Media)가 있다. 파산 신청을 한 위 기업들 중 일부는 총 5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보유한 경우도 있다. 특히 엔비전 헬스케어는 77억 달러의 미결제 부채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신흥 기업들의 사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예컨대 플래티넘 에쿼티(Platinum Equity)의 포트폴리오 기업인 항공기 부품 유통업체 이코라(Incora)는 이번 달 31억4,000만 달러의 부채를 면책받기 위해 파산 보호 신청을 진행했다. 또한 KKR의 투자를 받는 호주 기반 의료 서비스 제공 업체 제네시스케어(Genesis Care)는 최근 17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했다. 

미국 유수 헤지펀드 킹 스트리트 캐피탈 매니지먼트(King Street Capital Management)의 기업 구조조정 책임자 대니얼 어만은 “최근 경제 악화로 인해 과도한 레버리지를 끌어 쓰는 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투자를 받는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19 이후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 2023년 3월 ‘제로’ 이자율에서 2023년 5월 5% ~ 5.25%까지 금리가 치솟으면서 기업의 레버리지 비용이 급증,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 러・우 전쟁으로 인한 공급 차질이 복잡하게 맞물렸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을 비롯한 금융 기관도 차입 관련 장벽을 높이는 등 대출 규모를 줄이는 추세다. 폭스 로스차일드(Fox Rothchild)의 파트너인 마이클 스위트(Michael Sweet)는 “은행 업계가 모두 몸을 사리고 있다”며 “이는 최근 실리콘밸리뱅크(SVB), 시그니쳐뱅크,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등에서 발생한 일련의 도산이 은행들의 적극적인 여신 사업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소유권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 부채 돌려막기

파산 신청을 한 18개 기업 중 일부는 최종 파산을 피하기 위해 공격적인 구조 조정을 단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엔비전 헬스케어는 채무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존 자산을 새로운 대출을 위한 담보로 사용하며 새로운 채권자들을 채무 불이행 위험에 노출시켰다.

세르타 시몬스와 잉코라의 경우도 유사하다. 해당 기업들은 기존 대출 계약의 허점을 악용해 추가 자금을 유치하는 일종의 ‘돌려막기’ 수법으로 파산 신청을 의도적으로 늦춰왔다.

업계에서는 해당 수법이 사모펀드가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내린 의도적 행동인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즉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채무 불이행 위험이 커지면서, 파산으로 인한 기업의 통제권을 잃지 않기 위해 PE가 움직임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니얼 어만은 “이같은 채무 관리 수법은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PE 업계가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pymnts

PE 투자 회사들, 전망도 암울해

그간 PE는 포트폴리오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충분한 여유 자금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 침체가 장기간 지속된 탓에 이들은 가장 유망한 사업을 우선순위로 둬야할 상황에 놓이게 됐고, 이에 따라 포트폴리오 회사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지난 3월 여행 소매 플랫폼 트래블포트(Travelport)는 시리스 캐피탈 그룹(Siris Capital Group)과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로부터 2억 달러의 지분 투자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트래블포트 관계자는 “이번 대규모 투자는 회사의 밝은 미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강한 믿음을 드러낸다”며 “이번 자금 유치는 자사 사업 확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미국 레버리지 시장의 디폴트 주기가 초입 단계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특히 도이치 뱅크 애널리스트들은 미국 대출의 부도율이 2024년 4분기 11.3%로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즉 아직 많은 기업이 채무 불이행 위험에 놓여있는 셈이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전반적인 사정이 좋지 않은 만큼, PE 업계에서는 해당 기업들을 통해 배당금 등의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차라리 기업을 헐값에 매물로 내놓을 유인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