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보호’ 하겠단 정부, 막상 스타트업들은 “못 믿겠다”

트업들은 실효성에 의문 제기 스타트업 입장에선 ‘여론전’마저 쓰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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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기업 기술 보호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하는 간담회를 가졌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정부여당이 대기업의 기술 탈취에 취약한 스타트업 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기술 보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스타트업 업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으나, 여전히 기술 보호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지 않는 모양새다. 정부 차원에서 기술 탈취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게 처음은 아니나, 관련 분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기술 보호 대책, 실효성 의문 들어”

8일 조주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주재한 간담회에서 스마트스코어, 닥터다이어리 등 대기업과 기술 탈취 분쟁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기술 보호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앞서 중기부는 기술 탈취 피해 기업에 융자·보증을 최대 20억원까지 지원하고 탈취기업에 손해배상액을 3배에서 5배까지 상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기술 보호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결국 분쟁이 발생하면 사실관계, 피해 여부, 금액 산정 등을 입증하는 주체는 피해 스타트업이다. 기술 보호 제도가 있다고 해도 스타트업 입장에서 법률적 대응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정부가 NDA(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긴 했으나, 현실적으로 스타트업이 대기업과의 협업 과정에서 NDA를 들이밀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NDA를 써도 대기업이 수정을 요청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기업 지원 확대 및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등 내용은 기술 보호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사업 초기 스타트업은 영업이익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손해를 계산·입증하기 어려운 데다 손해배상을 하더라도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여당의 대책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대책 나와도 근절 안 되는 기술 탈취

사실 정부의 기술 보호 대책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과 2018년에도 정부는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 대책을 잇달아 발표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 역시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술 탈취에 대한 근절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대책의 실효성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실제 중기부 기술보호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중소기업 기술 침해 피해 사례와 액수는 127건, 643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알고케어를 시점으로 기술 탈취 피해를 호소하는 스타트업들의 이른바 ‘미투’ 호소가 이어지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기술 보호 대책이 현실성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주된 문제로 지목했다. 앞선 NDA만 봐도 대기업을 대상으로 스타트업이 활용하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지난해 12월엔 기술 탈취 근절을 위한 ‘기술유용감시과’ 신설 및 인력 확충을 약속했으나, 모니터링 전담 인력 배치는 기술 탈취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이어 정부는 지난 2월에도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찰청이 중소기업 기술유용행위에 대한 제보 채널을 구축함으로써 공조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당시에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애초 피해 스타트업은 거래 단절 등 대기업의 보복을 우려해 기술 탈취 피해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유용 발생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 이후에야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단순한 공조 강화는 큰 의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탈취기업에 손해배상액을 3배에서 5배까지 상향하는 안이 제출되기도 했으나, 이 또한 마냥 긍정적이지는 못하다. 주로 기술 탈취를 자행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대기업이다. 대기업 입장에서 배상액 몇 푼은 그리 크지 않다.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기술을 빼돌려 이익을 취한 뒤 배상액 몇 푼만 내고 끝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여론전이 스타트업의 가장 큰 무기

법이 기술 탈취 기업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는 만큼 세간에선 ‘법보다 인터넷 여론이 더 가깝다’는 말도 나온다. 법적 대응을 하는 것보다 여론전을 펼치는 게 더 승률도 좋고 비용적 측면에서도 이득이라는 것이다. 실제 알고케어의 아이디어를 탈취했단 의혹을 받아온 롯데헬스케어는 여론전 끝에 결국 관련 사업을 전면 철수한 바 있다.

알고케어의 사례는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기술 탈취를 ‘여론’을 통해 대응해 볼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선례를 남긴 셈이 됐다. 법령이 만들어진다 한들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는 몇 년이란 시간이 허비된다. 1심에서 마무리되면 차라리 다행인 편이고 상대가 항소에 상고까지 하게 되면 시간은 몇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여론전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스타트업 입장에선 여론전도 리스크가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다. 여론전을 펼치는 동안 거래처가 떠나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기술 보호안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유일한 대책이라 할 만한 여론전마저 스타트업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스타트업에 있어 기술 탈취란 ‘사형 선고’나 다름 없다. 하루빨리 실질적인 기술 보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스타트업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