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어짜는 OTT와 ‘속수무책’ 美 작가들 ② 韓은 안전 지역일까?
근로계약 못 맺는 국내 작가·스태프들 목소리 낼 만한 단체도 미약, 韓 작가들은 ‘울상’ 넷플릭스에 ‘종속’된 韓 OTT, “이대로면 ‘마리오네트화’ 가속될 것”
AI(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며 근로 여건 악화를 우려한 미국 작가들이 대규모 파업을 시작했다. 다만 이 같은 AI의 습격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또한 이미 주도권이 기존 미디어에서 OTT로 넘어온 상황인 데다 챗GPT 등 AI를 활용한 작품 제작에도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상황 “美보다 더 안 좋아”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달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사와 OTT 기업 등도 문화예술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영화 제작 현장에선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었던 스태프들이 OTT로 넘어오며 근로계약을 잘 맺지 못하고 있다. 과거엔 영화 제작사들이 단체 협약을 맺는 등 노력이 이어지기도 했으나, 이제는 돈은 OTT 쪽에서 내고 제작은 외주 제작사 측에서 하고 있으니 구조가 이전과 완전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출연자들 입장에서도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이전의 경우 출연 계약을 맺을 때 재방료, 출연료 문제 등을 방송국과 조금씩 협상해 나갈 수 있었으나, 현재와 같은 플랫폼 구조 아래에선 OTT와 직접 교섭을 할 수가 없다. 문화예술 산업에서 OTT라는 매머드, 즉 건설 현장의 원‧하청 구조처럼 얼굴도 보지 못하는 회장님이 생긴 것이다. 말단에 있는 업체하고만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계속 정리가 안 된 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AI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기는 현상도 잦아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촬영 현장에 프리뷰(방송 촬영 영상을 문서 파일로 옮겨 적는 일) 아르바이트가 꽤 있었으나, 음성 변환 AI가 등장한 이후부터 인원이 확 줄었다. 프리뷰 전문 요원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적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외에도 자막, 나레이션 등 일자리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내 작가들 또한 할리우드의 ‘미니룸(mini-room, 기획안 제작 시 소수 인원으로 꾸린 집필실)’과 같은 형태가 나타날 수 있으리란 우려를 표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제 목소리 못 내는 韓, 왜?
이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창작자들은 미국만큼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애초 할리우드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주기적으로 단체 협상을 맺는 등 나름의 형식이 구축돼 있다. 미국에서 벌어진 미국작가조합(WGA) 파업 또한 3년마다 진행되는 단체협약 과정에서 나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조합 조직 구성이 역사적으로 약한 데다 관심도도 떨어진다. K-드라마의 성공 신화는 널리 알려지고 있으나 현장의 목소리가 조명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방송과 영화가 분리돼 있는 점도 문제다. 방송계와 영화계가 한데 뭉쳐 한목소리를 내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해외는 방송, 영화 등에 구분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자본까지 한데 얽혀 있다. 디즈니가 디즈니픽쳐스와 ABC 방송을 같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넷플릭스는 우리나라 콘텐츠에 있어선 재상영분배금을 일절 지불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애초 재상영분배금 지불이 이뤄지지 않는 국가에 속하기 때문이다. 재상영분배금이란 방송국 측이 작품을 ‘재방송’할 때마다 작가·출연자에게 저작인접권료(저작물을 일반 대중이 향유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이에게 지불하는 비용)를 지불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선 오리지털 콘텐츠 제작 시 넷플릭스가 콘텐츠 저작권을 모두 가져가고 대신 제작사에 안전 마진 10~20%를 보장해 주는 형태의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며 “넷플릭스는 제작사에 넉넉한 제작 비용을 보장해 주는 대신 콘텐츠가 플랫폼에서 수년간 서비스되는 데 따른 창작자의 기여를 별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IP 모두 가져가는 넷플릭스, 韓은 ‘마리오네트’
결국 넷플릭스 입장에서 K-콘텐츠는 제작비의 일부를 수익으로 주는 대신 지적재산권(IP)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꿀 콘텐츠’다. 물론 국내 제작사들이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거대한 자본력을 지닌 공룡 넷플릭스 앞에서 제작비 압박을 받는 중소 제작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제작비 전액을 투자받는 조건으로 IP를 내주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작품 기획을 가지고 있어도 돈이 없으니 IP를 갖다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배대식 드라마제작자협회 국장은 “국내 제작사들이 ‘넷플릭스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IP를 넘기는 조건 하에 계약을 하면 아무리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도 제작사가 큰 수익을 가져갈 수 없고, 이는 곧 넷플릭스에 의한 우리 제작사들의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넷플릭스의 투자 규모는 국내 OTT 업계를 압도하고 있다. 2016년 이후 국내 콘텐츠에 7,700억원가량을 투자한 넷플릭스는 2021년 한 해에만 5,500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와 SKT의 합작 ‘웨이브(wavve)’가 3,000억원, CJ ENM과 JTBC 등의 ‘티빙’(tving)이 4,000억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를 집행할 계획을 세운 정도였다. 결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우리가 당면한 최대 과제라는 것이다. 국내 발 자본이 유입되지 않으면 국내 콘텐츠의 넷플릭스에 의한 ‘마리오네트화’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OTT 시대의 도래로 시장은 넓어졌다. 긍정적인 면도 많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글로 먹고 살기 쉬워진 건 OTT의 덕이 크다. 그러나 착취적 구조로 인해 종사자들의 고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도 WGA 파업과 같은 시도가 필요한 이유다. 일각에선 국내 OTT 플랫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OTT의 통합 및 대형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고정민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콘텐츠 업계는 규모의 경제가 그 어떤 산업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기업이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 OTT 업계는 아시아 시장 전체를 겨냥해 볼 만한 정도로 성장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체 간 인수합병이나 제휴를 통해 OTT 시장이 통합될 수 있다면 적잖은 인센티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