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세계 제패 중인 ‘양자 과학기술’, 번지르르한 계획 아닌 구체적 로드맵 필요
‘대한민국 양자 과학기술 전략’ 과기부, 막대한 투자와 인력 육성 약속 尹 “양자 과학기술은 모든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것” 2035년까지 총력 다해야 계획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어, 턱없이 부족한 양자 과학기술 교육 인력 충원 선행돼야
정부가 오는 2035년까지 양자 과학기술에 민·관 합동으로 3조원을 투자해 선도국의 8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양자 핵심 인력도 2,500명까지 늘리고 종사 인력도 1만 명까지 양산할 방침이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양자 산업 세계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높이고, 양자 기술을 공급하고 활용하는 기업도 1,200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국내 양자 기술이 초기 단계인 만큼 정부에서 교육 인력 마련에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2035년까지 양자 과학기술 선도국 85% 수준까지 따라잡는다
지난 27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된 ‘퀀텀코리아 2023’에서 ‘대한민국 양자 과학기술 전략’을 발표했다. 양자 과학기술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 최소단위인 양자(Quantum) 역학 원리를 이용해 기존 산업을 단번에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 기술로 불리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신기술로 분류된다.
이 장관은 10년 뒤 양자 경제가 본격적으로 열릴 시점에 우리나라가 선도국의 위치에 서 있을 수 있도록 기술 로드맵에 따라 임무와 기한을 두는 ‘임무 지향적 연구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2035년 글로벌 양자 경제 중심 국가로 도약하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국내 기술로 양자컴 개발·활용 △양자 인터넷 강국 도약 △세계 최고 수준 양자 센서로 세계 시장 선점 △국방·첨단산업과 융합 등을 제시했다.
우선 양자컴퓨팅은 여러 기술 방식이 경쟁 중임을 감안해 다양한 혁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원하되, 기술 성숙도 및 비교 우위 등 변화·발전을 수시 점검해 선택과 집중을 강화할 전망이다.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는 2031년까지 1,000 큐비트(양자비트)급 초전도 기반 범용 양자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자체 기술을 확보할 예정이며 이온 포획, 광자, 반도체 스핀 등 다양한 양자컴퓨터 방식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고전 컴퓨터와 양자컴퓨터를 연계하는 기술개발도 지원한다. 양자 통신 분야는 2030년대 100Km급 양자 네트워크를 개발해 도시 간 실증을 추진하며, 양자 센서 분야에서는 원천기술들을 융합해 무(無) GPS 항법, 양자 레이더 등 고전 센서를 뛰어넘는 센서를 기업과 공동 개발한다.
아울러 양자 소자 공정, 양자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 확보로 양자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산업화 연계를 통한 양자 과학기술의 도약도 뒷받침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과기부는 2027년까지 연구자가 직접 사용이 가능한 연구자 주도의 개방형 양자팹을 확충하고, 2031년에는 공공 양자 파운드리, 2035년에는 민간 양자 파운드리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양자 핵심 인력 2,500명을 양성하고, 전자공학, 제어·시스템 공학 등 양자 시스템 구현 및 제어 등 ‘양자 엔지니어’의 교육훈련을 통해 조화로운 양자 융합인력 생태계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대한민국이 양자 과학기술 개발에는 늦게 뛰어들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산업화는 되지 않아서 아직 골든타임의 기회는 남아 있다”며 “2035년 양자 경제가 열리는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선도국의 위치에 서 있으려면 산·학·연·관이 손을 맞잡고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자 과학기술 선점해 ‘퀀텀 연구자 플랫폼’ 만들 것, 양자 경제도 추진한다
전략 발표 이후 윤 대통령은 ‘양자 과학기술 현재와 미래의 대화’를 주재했다. 대통령실은 우리나라가 양자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양자 석학들과 함께 양자 과학기술 분야의 육성 방향을 논의하고 글로벌 생태계 조성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양자 과학기술 선점을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다”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우리 퀀텀 과학과 기술의 역량을 집중해서 창의적인 시너지가 나올 수 있도록 퀀텀 연구자들의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퀀텀 기술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컴퓨터, 통신, 센서는 디지털 기반 사회를 기술적으로 더 발전시키고 경제, 화학, 의료, 보안, 에너지 모든 분야에서의 엄청난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과학기술 개발을 통한 다양한 가치 창출을 위해 “플랫폼을 통해 기술이 갖고 있는 본래의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 다양한 부가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퀀텀 기술의 막강한 파급력을 고려해 디지털 윤리 원칙 및 규범이 퀀텀 기술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밝힌 점이다. 이미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중순 ‘파리 디지털 비전 포럼’에서 디지털 윤리 원칙 제시와 규범 정립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 산하에 디지털 윤리 규범을 제정할 국제기구의 설립을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AI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퀀텀 역시도 나중에 여기에 적용될 어떤 윤리 규범이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성공 목표만 무작정 따라가선 안 돼, 현실적인 인력 육성방안 필요
일각에서는 2035년까지 1만 명의 인력을 양성한다는 계획안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당장 과기부는 올해부터 24년까지 매년 1개씩 대학 연합을 선정해 석박사 대상 양자 특화 전문교육 과정을 통해 180명 이상의 박사급 인재를 배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이들을 가르칠 국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 양자 관련 논문에 의하면 국내 연구자는 500여 명 수준으로 중국 5,500명, 유럽연합(EU) 4,100명, 미국 3,100명, 일본 800명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심지어 양자 관련 미국 특허를 출원한 국내 발명인은 100명(양자컴 25명, 양자통신 68명, 양자센싱 7명), 관련 재외 한인 연구자도 50명으로 선도국에 비해 월등히 적다. 이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한국의 양자 기술은 미국·유럽연합의 60~80%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내 양자컴퓨터 시장 규모 역시 지난해 기준 34억9,000만원으로 세계 시장(4억7,160만 달러)의 0.56%에 불과하다.
이에 한 양자 관련 전문가는 “정부에서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는 것 이상으로 해외 유명 석학들을 적극적으로 초빙해 양자 관련 교육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것이 국내 양자 과학기술의 첫 단추”라고 역설했다. 양자 기술은 나라 간에 공유하지 않는 전략기술이기 때문에 기존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선구자의 전략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것)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부원장도 “(양자 기술에)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김부현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 인재교육본부장 역시 고도화된 반도체 산업과 초기 단계인 양자 기술은 인력 양성의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밝혔다. 즉 미래에 양자 과학기술 전문가 몇백, 몇천 명을 육성하겠다는 추상적인 계획보다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또 현재 교육 인력은 얼마나 채워졌는지를 발표하는 것이 국가가 양자 과학기술 발전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컴퓨터로는 1만 년이 걸리는 어려운 연산 문제를 양자컴퓨터는 단 200초 만에 풀어낸다.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도, 효율적인 배터리 구조를 설계하거나 금융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에도 양자컴퓨터는 획기적인 효율성을 자랑한다. 이는 안보나 보안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슈퍼컴퓨터의 경우 RSA 암호 해독에 100만 년 이상 걸리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단 1초 만에 해독할 수 있다. 이는 곧 일상에서 사용하는 결제정보부터 적국 군사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해킹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ETRI 기술동향에 의하면 현재 양자 과학기술은 세부 분야별로 기술 표준 경쟁이 시작되는 상황이다. 이에 국내 한 전문가는 “단순 기술 추격형에서 기술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