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와 역전세난 우려에 월세 수요 증가 중

역전세, 깡통전세, 전세사기 여파로 월세 수요 급증 월세 물건이 전세 물건 추월, 자료 수집 이래 처음 있는 일 일시적으로 DSR 완화해 부동산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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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사당동 K아파트 집주인 A씨는 요즘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전용면적 113㎡의 대형평수 아파트에 두 달째 세입자를 못 구하고 있어서다. 지난 4월 말에 퇴실한 전세입자에게 돌려준 전세금 7억원 중 대출분 3억원을 받기 위해 5억원에 급전세를 내놨으나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상황이다.

A씨는 당시 전세입자에게 역전세도 제안했으나 전세 이자율 상승에 따른 채무 부담을 이유로 세입자는 빠른 이사를 원했다. 시세인 5억5천만원~6억원 사이에서 빠르게 세입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지며 두 달째 전세 상환 대출 이자만 내고 있는 실정이 됐다.

역전세 증가에 월세 찾는 세입자 늘어

지난달 31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85.47로 작년 8월(100.5) 이후 9개월 연속 하락세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비율도 지난해 9월 54.6%를 나타냈으나, 올해 4월에는 50.83%까지 떨어졌다. 아파트 가격도 동반 하락한 탓에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A씨처럼 전세 상환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A씨는 다른 집주인들처럼 세입자가 나오면 전세금을 반환하겠다며 고집을 부렸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는 30% 이상 떨어진 가격에도 전세입자를 못 구해 전세 만기 이후에도 이사를 나가지 못하는 가구수가 상당하다는 것이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세입자들은 전세 만기 이후에도 신규 세입자가 들어오지 못해 발생하는 전세대출이자 손실은 집주인이 부담해야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집주인과 말다툼을 벌이거나, 일부 임차인들은 전세금반환 소송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세입자들은 역전세 대란 우려가 있는 데다 당분간 전세금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만큼, 전세 대신 월세 계약을 찾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특히 빌라 등에서 최근 전세사기가 다수 발생한 데다, 지난달부터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진 탓에 전세 매물 대비 월세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모습이다.

전세보다 월세 더 많아지는 기현상

21일 부동산 정보업체 ‘경제만랩’이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1~5월 사이 서울의 주택 전월세 거래량 22만9,788건 중 월세는 11만7,176건으로 전세 거래량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지난 2021년에는 전세, 월세가 각각 11만5,098건, 8만1,566건으로 전세 비중이 약 30% 이상 많았으나, 지난 2022년 들어 각각 13만1,608건, 12만6,272건으로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고, 올해들어서는 거꾸로 월세 비중이 더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전세 매물은 쌓여있는 반면 월세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는 상황은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서울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전세 비중을 앞지른 것은 서울시가 관련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단독, 다가구, 연립, 빌라 등)의 경우 월세 비중은 72.6%로 나타났다. 아파트의 경우도 주택보다는 월세 비중이 낮지만, 예년에 비해 확실히 높다. 특히 최근 빌라 전세사기의 여파로 인해 소형 평수의 월세 비중이 상승했다. 올해 1~5월 중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아파트 전월세거래 중 월세 비중은 49.9%로 절반에 육박한다.

사당동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월세 공급이 늘었다기보다 세입자들이 월세를 적극적으로 찾는다고 설명한다. 전세사기에 대한 우려와 함께 최근 전세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월세가 전세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세입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출처=한국은행

깡통전세 확산에 부동산 발(發) 금융시장 경색 우려도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전세계약 약 200만 건 중 전국 역전세 위험가구 비율은 올해 1월 25.9%(51만7,000가구)에서 4월 52.4%(102만6,000가구)로 높아졌다. 4월 들어 서울의 경우 48.3%(27만8,000가구), 경기·인천 지역은 56.6%(40만6,000가구), 비수도권은 50.9%(33만8,000가구)에 이른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깡통 전세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더 큰 문제는 올해 하반기 입주 물량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 입주예정물량은 1만1,632가구에 달한다. 특히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래미안 원베일리(2,990가구)와 은평구 수색동 ‘DMC SK뷰 아이파크 포레(1,464가구), 동대문구 전농동 ‘롯데캐슬 SKY-L65(1,425가구)’ 등의 대단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될 경우 전세, 월세뿐만 아니라 인근 아파트 단지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2018년 12월에 입주를 시작한 송파구 헬리오시티의 경우 9,510가구에 입주가 시작되자 인근 아파트 가격과 전·월세 가격이 동반 하락했던 사례가 있다. 2019년 상반기에 반포 X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던 K씨는 2018년 하반기에 약 14억원에 달하던 전세가격이 크게 떨어져 11억원대에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역전세, 깡통전세 등의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정부가 집주인들이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총부채상환원리금상환 비율(Debt Service Ratio, DSR) 비중을 현행 40%에서 인상해야 시장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인구 한국은행 금융안정국장도 지난 21일 ‘6월 금융안정보고서’ 공개 석상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정부가 DSR을 제한적으로 완화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