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신냉전 시대의 ‘키맨’, 인도 모디 총리의 첫 미국 ‘국빈 방문’
15년 만의 미 국빈 방문, 정상회담부터 빅테크 CEO 만찬, 의회연설까지 중국·러시아와의 대결 구도 속 미국의 ‘인도 챙기기’라는 해석도 방위 산업 등 ‘미-인도’ 안보 협력 강화에 방점, 첨단기술 협력도 기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일(현지 시간)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이날 모디 총리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만났으며 이후 백악관에서 열리는 국빈 만찬에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포함한 빅테크 CEO들을 만날 예정이다. 중국 및 러시아와 대립 관계에 놓인 미국이 이번 인도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인도와의 경제·기술 협력 확대를 가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모디 총리 방문에 최고 예우, 빅테크 CEO들까지 총출동
2014년 취임한 모디 총리는 그간 다섯 차례 미국을 찾았지만 국빈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뿐만 아니라 미연방 의회의 초청에 따라 상·하원 합동 연설도 예정돼 있다.
모디 총리는 오는 25일까지 닷새 동안 미국에 머문다. 모디 총리는 먼저 뉴욕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의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비공개회의에서 인도 기가팩토리(테슬라 전기차 통합 공장) 설립 투자 계획 등에 관해 논의했다. 머스크는 회의 직후 “인도의 미래에 큰 기대를 품고 있다”면서 “가능한 한 빨리 인도에 투자할 계획”이라며 향후 인도 시장에 대한 투자와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후 모디 총리는 22일로 예정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 D.C.로 향했다. 백악관에서 열리는 국빈 만찬에는 애플의 팀 쿡,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MS의 사티아 나델라 등 빅테크 CEO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특히 피차이 구글 CEO와 나델라 MS CEO는 모두 인도계 CEO로 인도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만남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 인도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모디 총리의 국빈 방문에 최고의 예우와 의전을 갖췄다. 인도 지도자가 미국에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건 지난 2009년 11월 만모한 싱 당시 총리가 마지막이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으로 떠오른 인도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15년 만의 국빈 방문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
중국과 대립 중인 인도는 미국의 잠정적 경제·외교적 파트너다. 인도는 2020년 중국과 히말라야 국경 지대를 두고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중국을 겨냥해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일원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을 필두로 세계 주요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있는 가운데,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생산지이자 소비 시장으로 떠오른 점도 미국이 인도와의 관계에 공을 들이는 이유로 꼽힌다. ‘메이드 인 인디아’를 외치며 인도를 반도체 중심의 제조업 허브로 키우려는 모디 총리 야망과도 결이 맞다.
다만 인도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만큼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 국제 무대에서 벌어진 외교전에서도 인도는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수입하고 있으며, 국방 물자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러시아에 의존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미 정부는 이번 모디 총리 방문이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견제가 아니냐는 해석에는 선을 긋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모디 총리의 국빈 방문은 중국에 관한 것도 아니고, 중국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번 방문은 자유롭고 안전한 인도·태평양에 대한 양국의 공통의지를 강화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백악관 “양국 기업 간 기술협력과 규제 철폐가 핵심”
모디 총리의 이번 방문은 양국 간 안보 협력 강화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기업 간 기술 협력과 전략 분야에서 무역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 철폐가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방위산업에서의 협력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인도 항공우주 및 방산 국영기업 힌두스탄 항공 유한회사(HAL)가 인도의 첨단 경전투기 엔진 제조 공장을 인도에 건설하고, 미 방위산업체 제너럴어타믹스의 드론을 인도에 판매하는 협상이 마무리 단계까지 나아갈 예정이다.
실제로 인도는 러시아산 무기 수입 비중을 해마다 낮추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인도는 2016년 66%에 달했던 러시아 무기 수입 비중을 지난해까지 45%까지 낮췄다. 미 국방부 관계자도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인 인도의 러시아산 무기 의존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 관련 첨단기술 분야의 협력 또한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은 이미 올해 2월 미-인도 ‘핵심·신흥기술 협의체’(iCET)를 발족하며 반도체, 인공지능(AI), 5세대(5G)와 6세대(6G) 무선통신, 달 탐사를 비롯한 우주 분야, 방위산업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바 있다. 앞서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번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탄력적인 공급망, 청정에너지, 반도체 및 기후변화 등의 문제에서 인도보다 더 중요한 파트너는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 미국과 성장 잠재력을 가진 두 국가가 만남을 두고 전문가들은 양국의 경제·기술 협력이 본격화함에 따라 중국이 경제·외교 분야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 협의체인 상하이협력기구의 일원이기도 한 인도가 대만 이슈 등에서 미국의 편에서 중국에 집단으로 맞서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인도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국제질서의 무게추가 한쪽으로 급격히 쏠릴 것이란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