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로 ‘마블’ 꿈꾸는 장난감 회사 마텔의 야심 이뤄질까
이논 크라이츠 CEO의 야심. 마텔 ‘마블화’ 계획의 첫 단추 전문팀 구성해 활용도 낮았던 IP를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재구성 마고 로비 “바비는 페미니스트이며 섹시하지 않다”
오는 19일 ‘바비 더 무비’ 개봉을 앞두고 바비 인형에 대한 수요가 뜨겁다. 바비 영화가 사상 처음으로 실사화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바비코어(Barbiecore)’ 트렌드에도 불이 붙었다. 바비코어란 바비 인형의 핑크색 계열 색상에 대한 열광적인 선호를 뜻한다.
영화 개봉에 맞춰 바비 패션과 스타일 상품과 더불어 원조 바비 인형 판매량도 증가하는 모습이다. 바비 IP(지적재산권)를 보유한 장난감 회사 마텔(Mattel)은 ‘바비코어’를 활용해 제2의 마블에 도전하려는 모양새다.
장난감 업계의 ‘마블’ 꿈꾸는 마텔
194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설립된 마텔은 설립 당시 액자를 제조하다 같은 원료로 인형의 집을 제작하면서 완구 제조사로 사업을 전환했다. 이후 마텔은 1959년 바비 인형과 1962년 미니카 ‘핫 휠’을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연매출 50억 달러(약 6조원)를 돌파하는 글로벌 대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이어 해리포터 완구의 글로벌 유통을 확대하고 경쟁사였던 피셔 프라이스(Fisher-Price)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마텔의 2022년 기준 매출은 54억 달러(약 6조8,310억원)로, 레고(92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의 장난감 회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몇 해 전 마텔의 매출이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여러 차례 CEO가 교체된 끝에 2018년에 폭스 키즈 유럽 및 메이커 스튜디오의 전 대표였던 이논 크라이츠가 마텔의 위기 극복을 위해 임명됐다. 미디어 업계 베테랑인 이논 크라이즈는 마텔을 단순한 장난감 제조 업체에서 IP 관리 업체로 탈바꿈시킬 구상을 세웠다. 그는 전문가팀을 영입해 분산된 IP를 통합하고, 미라맥스 출신 로비 브레너를 마텔 필름의 총괄 프로듀서로 임명했다. 이들은 △바비 △핫 휠 △마스터즈 오브 더 유니버스 △토마스와 친구들 △폴리 포켓 등 활용도가 낮았던 IP를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재구성했다. 이번 ‘바비 더 무비’가 첫 결과물이다.
무형 자산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영화나 TV를 제작하는 전략은 할리우드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활용된 사례가 많다. 한국의 한 IP 업계 전문가는 “캐릭터, 스토리 등 IP 중요성이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완구, 팬시 제품 판매 역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자체 유통도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서 IP 확보전이 더 심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레고는 50개가 넘는 해리포터 관련 제품을 활용해 매출을 높였고, 해즈브로는 유니버설 픽처스와 6년간의 계약을 통해 트랜스포머 브랜드를 부활시켰다. 마찬가지로 마텔도 바비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하는 실사 영화로 계획을 전환했다. 마텔은 영화 ‘아이, 토냐(2017)’의 주연과 제작을 겸했던 마고 로비에게 1,250만 달러(약 158억1,250만원)를 투자했으며, 마고 로비는 바비 더 무비의 각본과 감독으로 ‘작은 아씨들’로 유명한 그레타 거윅을 영입했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켄은 그냥 켄
바비 더 무비 예고편은 공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3,6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올 여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임을 입증했다. 특히 지난 2일에는 그레타 거윅 감독을 비롯한 마고 로비, 라이언 고슬링, 노아 바움바흐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출동한 주요 출연진이 최근 내한하여 기대감을 더 높였다.
마고 로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비랜드에 사는 완벽함의 대명사이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주인공 ‘스테레오타입 바비’를 연기한다. 64년 전 처음 만들어진 정형화된 바비다. 정형화된 바비는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며 켄과 함께 현실 세계로의 특별한 여정을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위험과 마주하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라이언 고슬링은 ‘일생일대의 연기’라는 평을 받고 있다. 고슬링이 연기한 일말의 지성조차 느껴지지 않는 켄의 눈빛이 대호평을 받았다. 할리우드 A급 배우인 고슬링이 그레타 거윅이 꿈꾸는 바비의 세계를 진정성 있게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에고를 기꺼이 억누르고 연기했다는 의미다. 라이언 고슬링은 그레타 거윅의 ‘바비’의 톤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감히 바비 영화에 대해 켄스플레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며 ‘켄’에 대한 완벽한 이해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바비는 결코 ‘섹시’할 수 없어요”
한편 지난달 바비의 페미니즘 묘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는 다수의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바비’에 출연한 배우 중 한 명인 하리 네프는 영화의 페미니즘 서사를 강조한 반면, 바비 인형 회사 마텔의 프로듀서인 로비 브레너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 이러한 불협화음은 바비에 검열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그레타 거윅은 “마텔은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이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이어 “마텔에서 바비는 1991년부터 대통령이 됐고 여성이 신용카드를 받기 전부터 달에 갔다”며 “우리는 바비랜드가 바비가 책임지고 켄이 따라가는 반전된 세계라고 상상했다. 이것이 켄에게 얼마나 불공평한지 알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전통적으로 바비는 날씬하고 글래머러스한 금발의 백인 여성으로 묘사되어 왔다. 비평가들은 이것이 남성 중심 사회가 원하는 일차원적인 여성성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바비 인형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은 한때 미국 여성 운동을 대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윅은 이 영화에서 바비의 복잡한 정체성을 포용하고 탐구한다.
미국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 랜트와의 인터뷰에서 거윅은 “바비는 195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브랜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승리와 논쟁의 순간을 모두 다루고 싶었다”며 “슈퍼히어로 영화에선 (주인공이) 영웅이거나 악당이다. 착하거나 나쁘다. 하지만 나는 ‘바비가 다른 모든 사람처럼 복잡하다면?’이라는 질문으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로비는 “바비는 페미니스트이며 섹시하지 않다”고 거듭 밝히며, 대부분의 여성이 은행 계좌를 소유할 권리조차 없던 1950년대에 바비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여성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바비의 남성 캐릭터인 켄은 실질적인 권력이나 소유물이 없는 그저 ‘잘생긴’ 캐릭터로 묘사됐다. 그레타 거윅은 “켄은 1961년에 출시되었다.”라고 지적하며, 마텔이 바비의 남자 친구를 원하는 고객의 요구가 있던 후에야 켄을 출시했음을 강조했다. 켄은 그냥 켄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