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글로벌 투자 경기, 반등세 이어갈 수 있을까
PE 엑시트 가치, 1년 하락 끝에 67% 상승 계속 성장하는 유럽 VC 거래 규모 중앙값 투자 경기, 코로나+금리 상승 딛고 J-커브 그리는 모양새
지난 한 해 동안 부진했던 사모펀드(PE)들의 엑시트(Exit, 자산 매각 또는 주식 상장)가 올해 2분기 들어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자, 바닥을 찍었는지 여부에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유럽의 벤처 경기가 소폭 살아나는 가운데, 벤처캐피탈(VC)들은 초기 투자를 지양하고 후속 투자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피치북의 ‘2023년 2분기 미국 PE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에 기록된 엑시트 총액은 873억 달러(약 111조6,130억원)로, 전 분기 대비 67%나 상승하며 침체된 분위기를 전환했다. 특히 지난 12개월 중 처음으로 분기별 가치가 연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장이 이처럼 눈에 띄게 회복된 것은 2분기 말에 각각 10억 달러(약 1조2,785억원) 가치의 거래가 네 건이나 발표된 덕분이다.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팀 클라크 피치북 수석 애널리스트는 해당 거래들에 대해 “출혈을 막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PE가 마침내 연필을 갈고 매각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들은 매수만큼이나 매도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2분기를 살려낸 주목할 만한 4가지 거래
2분기를 살려낸 첫 번째 거래는 토마 브라보(Thoma Bravo)가 105억 달러(약 13조4,242억원) 상당의 현금과 주식을 받고 핀테크 소프트웨어 제공업체 아덴자(Adenza)를 나스닥에 매각하는 데 동의한 일이다. 토마 브라보는 칼립소 테크놀로지(Calypso Technology, 2021년 37억5천만 달러에 인수)와 악시옴SL(AxiomSL, 2020년 미공개 금액에 인수)을 합병해 아덴자를 설립한 기술 전문 사모투자 회사다. 아덴자는 금융 시장을 위한 클라우드 기반 기술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파생상품과 국채 상품을 위한 통합 거래 및 리스크 관리 처리 시스템 제품군을 제공한다.
다음으로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Vista Equity Partners)는 지난달 26일에 IT 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앱티오(Apptio)를 IBM에 46억 달러(약 5조8,838억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앱티오는 서비스형 비즈니스 관리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로 기술 비즈니스 관리(TBM) 솔루션, 비용 투명성, 서비스 원가 계산, 재무 관리, 청구서, 예산 및 예측, 애자일 투자 관리, 클라우드 비용 관리를 제공한다. 비스타는 앞서 2018년에 앱티오를 19억4천만 달러(2조4,814억원) 가치의 비공개회사로 전환한 바 있다.
이번 거래를 통해 두 PE가 달성한 기업 가치는 직전 1년 수익 대비 아덴자는 20.2배, 앱티오는 12.5배에 달한다. 시장에서 이들 기업의 가치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클라크 수석에 따르면 이같은 기업가치 산정은 업계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긍정적인 선례를 남김에 따라 향후 다른 PE들의 투자금 회수 증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거래는 PE가 투자한 두 회사, 코디악 가스 서비스(Kodiak Gas Services)와 세이버스 밸류 빌리지(Savers Value Village)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이다. EQT는 지난달 29일 코디악 가스 서비스를 시가총액 15억4천만 달러(약 1조9,695억원)에 상장했으며, 기업 공개를 통해 2억5,600만 달러(약3,274억원)를 조달했다. 같은 날 아레스 매니지먼트가 지원하는 세이버스 밸류 빌리지도 40억 달러(약 5조1,156억원)에 가까운 가치로 상장하며 4억 달러(약 5,115억원)가 조금 넘는 자금을 조달했다.
PE 업계의 거래 구조 이해하기
PE 업계에서 엑시트 건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하고 시장이 더 건전해졌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특히 2분기에는 엑시트의 건수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치도 증가했다. 사모투자회사가 더 많은 투자를 매각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는 투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거나, 투자한 기업의 실적이 개선됐거나, 또는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엑시트 건수나 가치가 증가한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다. 미완성 거래, 즉 진행 중이지만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거래가 누적되면 새로운 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자본을 묶어두고 결과적으로 PE펀드의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거래의 결과를 알 수 없는 만큼 PE 펀드의 성과에 불확실성을 더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흐름에 병목 현상을 일으켜 PE 산업의 전반적인 기능을 저해할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더 많은 거래가 완료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거래를 완료하면 해당 거래에 투입된 자본이 확보돼 새로운 투자를 위해 시장으로 다시 유입될 수 있다. 또한 완료된 거래가 늘어날수록 엑시트 수익이 실현·배분될 수 있어 PE 펀드의 성과가 향상될 수도 있다. 나아가 투자 결과가 확정되는 만큼 펀드의 성과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신규 투자보다 적은 엑시트, 업계 자금순환 고려해야
따라서 신규 투자에 비해 엑시트 건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은 엑시트 측면에서 기록적인 해였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기업의 자산 매각과 기업공개(IPO)가 모두 현저하게 감소했다.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을 막론하고 일제히 기업가치가 하락하면서 엑시트도 덩달아 감소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체 엑시트 감소폭이 15년 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감소폭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한편 엑시트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사모펀드 투자 활동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 불균형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투자금 대비 엑시트 비율은 0.32배로 떨어졌다. 이는 3건의 거래가 체결될 때마다 업계에서 단 1건의 투자금만 회수했다는 의미로 신규 투자와 엑시트 사이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종래에는 투자 생태계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클라크 수석은 “PE펀드들은 그간 매수로 일관해왔다. 이제는 매각을 고려할 때”라고 조언하며 “기존 펀드를 청산할 수 있는 기간이 10~12년 정도 남아있지만, 지난 2년 동안 엑시트 측면에서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살아나는 유럽의 VC 업황
유럽 시장도 마찬가지로 투자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피치북의 ‘2023년 2분기 유럽 벤처 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의 거래 규모 중앙값은 210만 유로(약 29억4,485만원)로 2022년의 200만 유로에서 5% 소폭 성장했다.
또한 올해 유럽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면서 VC 투자자들이 보다 성숙한 스타트업과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특히 100만 유로(약 14억원) 미만의 거래 비중은 감소한 반면, 500만 유로(약 70억원) 이상의 거래 비중은 확대됐다. 유럽 벤처캐피탈 거래의 70.4%가 후속 라운드였으며, 이는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상대적으로 초기투자, 즉 엔젤 및 시드 단계 투자는 감소했다. 또한 평균 딜 규모는 증가하는 반면 유럽의 메가 라운드는 크게 감소했다. 작년 176건에 비해 상반기에 31건만 성사돼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메가딜 건수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귀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