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점 규제, 미국 기업들 규제에 도움 안 된다?
美 반독점 규제, 조례 변경했지만 실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는 평 89년생 리나 칸 FTC 위원장의 역량 부족 지적하는 목소리도 잇따라 VC 업계는 출구전략 유지된다며 안도의 한숨 내쉬기도
20일(현지 시간) 기업 투자 전문 분석 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 시간)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가 발표한 미국의 ‘반독점 규제’ 조례가 실질적인 효과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업계 의견이 주류인 것으로 알려졌다.
FTC는 리나 칸(Lina Khan) 의장이 지난 2021년 임명되면서부터 적극적으로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섰으나 경쟁 제한을 효과적으로 이뤄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조례는 지난 2년에 걸친 칸 의장의 주장이 집약된 내용으로, IT 시장의 플랫폼 기업 간 합병 시 FTC의 의결을 필수로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 조례, 현실적인 제한 효과는 없을 것
베이커 봇츠(BakerBotts)의 반독점 경쟁 부분 파트너인 마린 올하우젠(Maureen Ohlhausen)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법이 바뀌는 것은 없다”며 “이번 조례 발표와 관계없이 과거 승소한 기업들이 조례 적용 이후에도 계속 승소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리나 칸 의장은 지난 2년간 법정으로 갔던 합병 심사에서 FTC의 의사를 관철시킨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주 미 연방 법원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약 690억 달러(약 88조2,441억원)에 인수하는 글로벌 대형 게임사인 블리자드에 대한 심사에서 FTC의 주장을 기각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 업체가 아닌 데다 운영체제 보유가 게임 시장 확대에 직접적인 이득을 주지 못하는 만큼 시장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미 연방 법원은 메타가 4억 달러(약 5,113억6,000만원)에 VR 업체 위드인(Within)을 인수하는 건에 대해서도 FTC의 경쟁 제한 우려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VR 시장이 구체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인 데다, 메타가 위드인을 인수한다고 해도 소셜미디어 시장을 통한 홍보를 제외하면 시장지배력을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FTC, 인수 차단이 아니라 통과 의례로 전락?
프레쉬필드(Freshfields)의 반독점 경쟁 거래 부분 파트너인 얀 리브니섹(Jan Rybnicek) 변호사는 “지난 12개월 동안 인수 기업들은 합병 승인을 받기 위해 FTC를 넘어 연방 법원을 가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그러나 이번 조례 변경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승인받는 내용이 바뀌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례들이 40년 전 사례들을 언급하고 있다”며 “연방 법원들이 과거 사례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비중을 두고 판단 근거로 삼겠지만, 최근 사례와 근거를 좀 더 중요하게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계속된 FTC의 인수 합병 심사가 기업들의 인수 전략을 방해하는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FTC가 연방법원으로 심사를 끌고 갈 경우 인수를 마무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독점 규제에 대한 시장 반응
지난 3월 메타에 패하면서 FTC 내부적으로는 칸 의장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021년 6월 취임 직후부터 빅테크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자를 축출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 왔으나, 2년간 단 한 차례도 FTC의 목적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에는 아마존이 MGM 합병을 마무리하는 절차에 들어가자 칸 의장이 합병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메타의 인수도 막지 못한 데다, 이번 7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블리자드 인수도 막지 못해 내부 불신임이 확대됐다는 평이다.
실리콘밸리 일대의 VC 업계에서는 빅테크들의 스타트업 인수가 투자자들의 주요 ‘출구 전략(Exit strategy)’ 중 하나인 만큼, 이번 미 연방법원의 판결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자칫 FTC의 주장이 강화될 경우 출구 전략을 잃은 스타트업들의 기업 가치가 크게 절하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기업공개(IPO) 시장이 닫힌 만큼, 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까지 막힐 경우 일부 VC들은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