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환자도 번거로운 ‘재진 입증’, 침체하는 비대면 진료 시장
‘재진 환자 한정’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한계, 관련 시장 줄줄이 위축 환자는 재진 사실 입증 서류 제출, 병원은 사실 여부 검토 “번거롭다” 수요 급감한 비대면 진료, 줄줄이 문 닫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
정부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계도기간에 돌입한 이후,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이하 플랫폼 스타트업)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환자의 재진 여부 입증 의무 △의료기관의 관련 서류 검토 부담 △처방약 수령을 위한 약국 방문 등 문제점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계도기간 종료와 함께 비대면 진료 시장 자체가 가라앉을 것이란 우려마저 제기된다.
‘재진 입증 번거로워’ 비대면 진료 수요 급감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운영 중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불편센터’에 접수된 의견은 지난 16일 기준 약 900건에 달한다. 환자의 가장 큰 불만 사항은 ‘재진 입증’이었다. 비대면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는 30일 내 동일 질병코드로 동일 병원에 방문했다는 서류를 미리 마련해야 하며, 이를 플랫폼에 업로드하거나 화상 통화를 통해 직접 들고 증명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를 실시하는 의료기관은 해당 서류의 진위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최근에는 이 같은 재진 입증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환자들의 비대면 진료 요청 자체를 거절하는 병원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에 복지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을 통해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주민번호를 입력하면 재진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심평원에서 환자의 재진 여부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각 병의원이 의무 기록을 매일 서버에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으로, 일 단위가 아닌 월·분기 단위로 의무 기록을 처리하는 의료 기관이 대부분이다. 사실상 의료 기관의 부담 경감 효과가 전무한 해결책인 셈이다.
떠나는 환자 수요, 위축되는 서비스
재진 환자뿐만 아니라 예외적 초진 허용 대상에 해당하는 환자들도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중 거동불편자나 장애인, 섬·벽지 거주자 등은 예외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통한 초진이 허용된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까다로워 이용에 큰 번거로움이 뒤따르는 실정이다.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사각지대’ 환자들이다. 닥터나우에 따르면 지난달 야간·공휴일 진료 건수는 전월 대비 37.5% 감소했다. 재진 조건으로 인해 비대면 진료 수요가 급감하자, 의사들이 야간·공휴일에 자리를 지키지 않아 비대면 진료 서비스 자체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 시범사업이 채택한 동일 병·의원, 동일 질환 중심의 비대면 진료 시스템은 구축이 어려울뿐더러 비대면 진료의 가장 큰 장점인 이용자들의 편의성도 사실상 보장할 수 없다. 이에 비대면 진료 사업의 한계를 느낀 스타트업들이 줄줄이 사업을 철수, 시장 침체가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무너지는 플랫폼 스타트업, 시장 존속 위태롭다
성병 검사 키트를 이용자에게 배달 및 수거, ‘성매개감염병(STD)’을 비대면으로 확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던 ‘쓰리제이’는 지난달 9일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중단했다. 쓰리제이가 서비스하는 ‘앳 홈 테스트(At Home Test)’는 이미 해외에서 발전 가능성을 입증한 유망 사업 분야다. 대표적인 앳 홈 테스트 기업인 미국의 ‘에벌리웰(Everlywell)’과 ‘레츠겟체크드(Letsgetchecked)’는 설립 5년 만에 기업가치 1조원을 돌파하며 ‘유니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쓰리제이는 가능성을 입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쓸쓸히 시장에서 퇴장했다.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에 중점을 둔 플랫폼 기업 바로필은 지난달 30일을 기점으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종료하겠다고 공지했다. 이달 14일 비대면 진료 등 모든 서비스를 종료했으며, 31일에는 회원 정보, 진료 정보 등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일괄 삭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남성 중심 비대면 진료 플랫폼 ‘썰즈’ △한의원 중심 비대면 진료 플랫폼 ‘파닥’ 등 많은 플랫폼 스타트업이 지난달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
환자가 동일 병원에 동일 질환으로 방문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기술이 사실상 전무한 가운데, ‘재진 환자 한정’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은 관련 시장의 심각한 침체를 유발했다. 의료 기관과 환자 모두가 피로감으로 인해 비대면 진료 자체를 꺼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비대면 진료 시장은 가장 큰 장점인 ‘편의성’을 빼앗기며 또다시 절벽 끝에 몰리게 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