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 반도체 르네상스 ④ 라피더스의 미래와 한국
실패의 연속이었던 정부 주도 업계 재편 시도 과거와의 걀정적 차별점, 美·EU의 전폭적인 지원 미국과 멀어진 한국, 계속되는 적자 극복할 수 있을까
라피더스는 일본 대기업의 지원과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협력 벤처로, 2027년까지 2나노미터 로직 반도체를 생산해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사명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반도체 부활을 시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실패한 과거는 물론, 한국의 삼성이나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 TSMC와 같은 업계 거물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고려할 때 마냥 장밋빛 미래를 점칠 수 없다.
경제산업성의 자문기구 ‘반도체·디지털산업전략검토회’ 위원인 와카바야시 히데키 도쿄이과대 대학원 교수는 “라피더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납품처를 잃게 된 일본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해외 이전이 불가피해진다”며 “반도체 확보가 어려워지면 일본 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피더스가 실패할 경우 결국 일본의 국력마저 약해질 것이란 지적이다.
반도체 부흥을 위한 ‘칠전팔기’
라피더스의 성공이 일본에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일본의 반도체 부흥을 위한 이전 시도를 되돌아봐야 한다. 2000년대 초, 일본의 다국적 복합기업인 히타치(Hitachi)와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UMC는 트레센티를 공동 설립했다. 현 라피더스 사장인 이끌고 고이케 아쓰요시가 이끌고 일본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11곳이 참여했지만, 연합은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다른 회사에 흡수됐다.
2002년 여러 반도체 회사와 정부가 협력해 설립한 또 다른 연합체 아스프라(ASPLA)도 있다. 여기에도 라피더스처럼 나랏돈 315억 엔(약 2,890억3,455만원)이 쓰였다. ASPLA는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90나노미터 반도체 개발에 전념했으나, 투자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3년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일본 정부가 지원한 또 다른 벤처기업인 엘피다도 실망만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엘피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흔들릴 때 정부는 법을 바꿔가며 300억 엔(약 2,752억7,100만원)을 투입했지만 한국과의 경쟁에서 쓴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고 결국 2014년 미국 마이크론에 흡수됐다.
분명한 난관, 극복할 수 있을까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라피더스라는 야심 찬 계획에 전념하고 있다. 히가시 테츠로 라피더스 회장은 작년에 3나노미터 수준에서 양산을 시작한 삼성과 TSMC에 비해 “약 20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라피더스는 2030년대 초까지 1나노미터 반도체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라피더스는 삼성이나 TSMC가 아직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라피더스가 해낼 수 있을까. 히가시 회장이 낙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 유럽이 일본과의 협력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고이케 라피더스 사장은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쇠퇴한 원인은 ‘일장기 자체주의’였다며 최근에는 ‘탈(脫)자체주의’를 강조하면서 서방과의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세 번째 반도체 지원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분명 험난하다. 라피더스가 추구하는 최첨단 2나노미터 반도체는 상당한 재정적 투자와 수많은 복잡한 공정을 수반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엄청난 규모의 엔지니어팀이 필요한데, 현재 라피더스는 TSMC와 같은 최상위권 기업에 비해 자원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일본의 역사적인 ‘기술 고집’ 문화를 고려할 때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라피더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 경영진은 서구 국가들과의 협력이 라피더스에 필요한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라피더스가 성공한다면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부터 최첨단 반도체까지 반도체 밸류 체인이 완성된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일본의 강점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라피더스가 2027년까지 최첨단 2나노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다면 일본 정부의 막대한 투자도 정당화된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에는 일본의 반도체 부흥 전략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K-칩스법에도 암울한 한국의 업황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도 반도체 분야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우리 국회는 더 많은 반도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마련된 이른바 ‘K-칩스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은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를 확대해 일본의 노력에 경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반도체 업황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량은 12개월째 연속 감소 중이며 특히 지난달은 3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대한민국 반도체의 두 기둥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다. 지난달 27일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6,68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5.3%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매출 역시 22% 넘게 줄었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의 부진 때문이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2분기 적자만 해도 4조3,600억원에 달한다. 반도체 매출도 반토막이 났다. 상황은 전날 2분기 실적을 발표한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손실은 2조8,821억원이다. 양사의 상반기 반도체 적자만 15조원이 넘는 셈이다.
고범창 KOTRA 경제·무역 일본 도쿄무역관은 “일본 반도체산업은 미국, 대만 등과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국내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차세대 로직 설계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며 “미국 주도의 우호국 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 계속 진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향후 일본의 반도체 산업 변화와 미국 주도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