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빚어낸 삶 살아가는 가상인간, 소비자에겐 ‘완벽’도 벽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은 가상인간, 최근 들어 ‘시들’ 비현실적인 외모에 적당히 가져다 붙인 설정들, 소비자 공감 유도 실패 MZ는 우상 아닌 ‘이입 대상’ 원한다, 가상의 벽 무너뜨린 가상인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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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인간 로지/사진=신한라이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메타버스(가상세계)와 함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던 가상인간 사업이 최근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실제 인간 대비 뒤탈이 없고,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가상인간의 ‘완벽함’이 오히려 대중의 거부감을 샀다는 분석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성으로 인해 ‘가상’의 한계에 부딪힌 이들은 과연 미래 시장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가상인간 열풍, 그저 ‘한 철 유행’이었나

현재 글로벌 시장에 발을 딛은 가상인간의 수는 수천 명에 달하며, 이 중 국내에 소개된 가상인간만 15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이머진리서치에 따르면 가상인간 시장은 2020년 100억 달러(약 13조500억원) 에서 2030년 5,275억8,000만 달러(약 688조4,919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상인간 및 관련 스타트업들이 주목을 받았으며, 수백억원 규모의 뭉칫돈이 시장에 몰리기도 했다. 이 시기 국내 기업들 역시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줄줄이 자체 개발한 가상인간을 내놓은 바 있다. △네이버웹툰 계열사인 로커스엑스에서 개발한 국내 가상인간 모델 1호 ‘로지’ △카카오게임즈의 손자 회사 온마인드가 개발한 ‘수아’ △LG전자가 지난 2021년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21′에서 선보인 ‘김래아’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화려하게 시장에 입성한 이들 가상인간은 최근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팬데믹 시기 가상인간이 소비자의 주목을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낯선 기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대면 콘텐츠로만 소통이 가능한 가상인간들은 대중으로부터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인플루언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팬심’을 확보하지 못한 채 좀처럼 시장 영향력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가상인간 애나/ 사진=크래프톤

‘완벽함’이 오히려 거부감 불렀다

가상인간이 ‘인물’이자 ‘인플루언서’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먼저 가상인간의 부자연스러운 표정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골짜기’가 문제로 지목된다. 일각에서는 가상인간은 결국 실제 사람의 몸에 얼굴만 붙인 ‘딥페이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소비자가 가상인간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명확하게 구분 지으며 이들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가상인간에게는 아름다운 외형과 나이, 직업, 성격 등 텍스트상의 설정이 부여된다. 이처럼 인간이 설계한 이상적인 세계 속에서 움직이는 가상인간은 구설에 오를 일이 없고, 시공간의 제약 없이 24시간 맡은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다. 사실상 기업 입장에서 가상인간은 실제 인간 대비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외모가 바뀌지도 않고, 사생활 문제도 없는 ‘사람 형태의 장기말’에 가까운 셈이다.

이처럼 완벽한 가상인간들에게 시련이란 없다. 현실의 청년처럼 갈등을 겪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 역시 없다. 빚어놓은 듯 아름다운 이들의 삶에 ‘현실의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가상인간이 만들어낸 콘텐츠를 향유하는 것은 결국 실존하는 인간이며, 인간은 이처럼 그려낸 듯 완벽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가상인간에게는 ‘진짜 인간’의 공감을 유도할 힘이 부족하다.

가상인간 ‘릴 미켈라’/사진=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가상인간도 결국 ‘사람 냄새’ 풍겨야

가상인간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인플루언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결국 ‘가상’이라는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완벽하지 않은 삶, 즉 ‘사람 냄새’를 풍기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갈등, 후회, 트라우마 등 부족한 인간의 모습은 인플루언서에게 있어 결점이 아닌 하나의 ‘서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는 오히려 ‘아름답지 않은’ 가상 인간이 인기를 끄는 경우도 등장했다. 30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필두로 한 해 130억원을 벌어들이는 가상인간 릴 미켈라(Lil Miquela)가 대표적이다. 웬만한 연예인보다도 많은 인기를 끄는 릴 미켈라는 미국에는 살지만, 브라질 태생이라는 설정이다.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기존 가상인간 모델과는 달리 주근깨에 코가 지나치게 크고 치아도 가지런하지도 않다. 현실적인 외모가 오히려 소비자의 이입을 도운 셈이다.

차후 인플루언서로 활약하게 될 가상 인간은 선망의 대상이 아닌 감정 이입의 대상이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잘 정돈된 일상생활 등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는 이유다. 가상인간이 자아실현에 열망하는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아이돌(우상)’이 아닌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