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선 당연시되던 ‘반바지 출근’, 이제는 환경 보호·인권 존중의 아이콘?

스타트업계에서 시작된 ‘반바지 출근’, 이제는 대기업 넘어 지자체까지 확산 ‘수평적 기업 문화’ 넘어 여름철 전기 절약까지, ‘쿨비즈’ 패션 독려 이어져 반바지 출근 제한했다 ‘인권 침해’ 판결받기도,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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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exels

올여름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일명 ‘반바지 출근룩’이 확산하고 있다. 수평적 기업 문화가 자리 잡은 스타트업계와 대기업은 물론, 최근에는 지자체까지도 직접 나서 반바지를 비롯한 ‘쿨비즈(시원하고 편안한 여름 비즈니스웨어)’ 패션을 독려하는 추세다.

남성의 반바지 출근은 ‘자유로운 기업 문화’의 상징을 넘어 환경 보호와 인권 존중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다. 찌는 듯한 폭염 속 옷차림을 간소화해 과도한 냉방을 지양하고, 출퇴근 복장 자율화를 통해 임직원의 ‘행동 자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바지’ 입고 출근하는 게 뭐가 어때서?

무신사가 지난 6~7월 무신사 검색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 반바지’ 키워드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40% 증가했다. 반바지는 쪼리(플립플롭)와 반소매 티셔츠의 뒤를 이어 남성 고객이 세 번째로 많이 찾은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 급증한 남성층의 반바지 출근 수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바지 출근의 본격적인 확산은 대기업으로부터 시작됐다. 국내 대기업은 ‘수평적 기업 문화’를 앞세우며 이전부터 복장의 자율화에 앞장서온 바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남성 직원들의 반바지 출근을 허용하면서 복장 자율화의 포문을 열었고, 이어 매주 금요일마다 임원들도 재킷을 벗는 ‘캐주얼데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LG전자, 2019년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복장 자율화에 동참했다.

최근 들어서는 시원한 옷차림이 여름철 전기 절약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자발적으로 ‘쿨비즈 캠페인’을 실시하는 기업 및 지자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일례로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다수의 항공사는 제복을 착용하지 않는 일반직군 임직원을 대상으로 가벼운 옷차림을 권장하는 쿨비즈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청주시 역시 시 소속 공무원들의 탄력적인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 ‘쿨비즈 입는 날’ 시행을 검토 중이다.

사진=삼성전자

개방적 조직문화의 스타트업계에선 당연한 ‘반바지 출근’

한편 개방적 조직문화를 가진 스타트업계와 IT 업계는 2010년 초반부터 출퇴근 복장에 너그러운 편이었다. 실제 IT 기업 및 스타트업이 밀집한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의 출근길에서는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남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스타트업 근무자는 “영업직만 아니면 복장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바지를 입어도 되고, 모자를 쓰거나 슬리퍼를 신어도 된다”며 “오히려 정장을 입으면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실제 대다수 스타트업은 자율 복장을 비롯해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제공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중심의 근무 환경, 소규모 조직 등 스타트업의 특징이 잘 드러난 문화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같은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 인력 확보를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인재 영입 경쟁 끝에 ‘사람이 전부’인 스타트업계 전반에서 불합리한 규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부 조직서도 ‘반바지 금지’는 인권 침해

하지만 정부 조직의 경우 아직 복장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지난해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A씨가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자, 이 모습을 본 고법 직원 B씨는 A씨에게 ‘복무의무위반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은 대법원 행정예규(공익근무요원 복제규정 제2조)에 따라 사복 차림으로 출근해도 제복으로 갈아입은 뒤 근무한다. A씨 역시 출근할 때에만 반바지를 착용했으며 근무 중에는 제복으로 환복한 상태였다. 이에 A씨는 “사회복무요원은 근무 시간 중 제복을 착용할 의무가 있을 뿐 (법원이) 출퇴근 복장까지 제한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일반 직원의 출퇴근 복장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사회복무요원의 출퇴근 복장에 제한을 두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사진=pexels

경위서 제출을 요구한 B씨는 사회복무요원의 반바지를 불편해하는 직원들이 있어 통제한 것이며, 무릎을 덮는 반바지는 허용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출퇴근 때 복장 제한이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이 보장하는 일반적인 행동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또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소속 사회복무요원의 출퇴근 복장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관리부서에 직무교육을 하라고 지난달 4일 권고했다.

스타트업계에서 시작된 ‘복장 자율화’의 바람은 점차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스타트업계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상징하던 ‘반바지’는 어느덧 환경 보호와 인권 존중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점차 국내 기업 문화가 수평화하는 가운데, 올여름 반바지를 비롯한 ‘쿨비즈’ 패션 유행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