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시너지, 생존을 위한 벤처캐피탈의 선택
지난 10년간 VC 859개에서 2,500개로 급증 경기 위축 이어지면 절반 이상 감소할 수도 메가 펀드들도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 단행
일반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유리한 가격에 인수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벤처캐피탈(VC)은 다르다. VC 산업에서는 버블 현상이 발생하면서 기업들이 지속 불가능한 수준까지 팽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피치북(PitchBook)의 데이터에 따르면 VC는 2013년 859개에서 2023년 2,500개로 급증했다.
지난해 럭스 캐피탈(Lux Capital)의 공동 창업자인 조쉬 울프(Josh Wolfe)는 경기 위축이 지속되면 VC들은 투자금을 목표한 만큼 확보하기 어렵거나 아예 자금을 모으지 못해 그 수가 절반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진단했고, 그의 전망 중 일부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타이거 글로벌(Tiger Global), 인사이트 파트너스(Insight Partners) 등 메가 펀드들이 자금 확보에 대한 목표치를 하향 조정한 데 이어 앞으로 몇 년간 많은 VC가 인원을 감축하거나 운용 펀드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VC 산업의 버블 현상에도 VC 간 합병은 실효성 없어
주식 투자자들은 거시적 불안정성이 지속되면 이익 마진이 감소하더라도 다른 투자자들과 합병하거나 협력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VC들이 다른 기업들과 협력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얼로케이트(Allocate)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사미르 카지(Samir Kaji)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자산운용가나 은행 등 전통적인 금융기관에 소속된 투자 전문가와 달리 VC는 운영 자산을 확대하거나 생산 라인을 확장하기 위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안정된 VC가 자신보다 취약한 경쟁사를 인수할 동기도 없다”며 “이러한 경향은 단기간에 변화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VC들이 늘어난다고도 해도 바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펀드 투자 컨설팅사인 프로비타스 파트너스(Probitas Partners)의 디렉터이자 리서치 본부장인 켈리 드폰트(Kelly DePonte)도 “성과가 안 좋은 기업이라도 역량 있는 일반 파트너(GP)가 있다면 그를 참여시키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며 위험도도 낮다”며 “특히 기업이 성장하고자 하는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파트너라면 더욱 그러하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제너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나 안드레선 호로비츠(Andreessen Horowitz)같이 다양한 사업 분야를 갖고 있는 기업들도 새로운 전략사업을 추진할 때 특정 개인을 직원으로 고용하거나 기존 직원 중에 그 역할을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해당 분야의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역피라미드 조직 구조로 비용절감 기대하기 어려워
더욱이 우수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VC가 평균 수준의 기업과 합병하는 것은 크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합병을 통해 운영자산의 규모를 증가시킨다고 해서 더 많은 투자 기회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파트너들 아래 다수의 애널리스트와 직원들이 배치된 대형 바이아웃 펀드들과는 달리 VC들은 소수의 애널리스트와 직원들이 다수의 파트너들에게 배치된 역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VC 간 합병이 이뤄지더라도 인원 감축을 통한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파트너들의 관리 수수료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VC들은 인수합병보다는 현재의 조직 구조하에서 지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VC 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 중 하나인 씨콰이아(Sequoia)도 최근 인력 감축 등을 통해 비용 절감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연기금, 기부금 등 유한책임투자자(LP)들은 두 개의 VC가 합병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VC 간 합병으로 특정 펀드에 대한 맞춤형 전략이나 투자 철학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두 개의 VC를 하나로 합병하는 것은 양사의 협력과 신뢰를 토대로 하는 만큼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15년 합병을 추진하던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와 소셜 캐피탈(Social Capital)은 합의된 기업의 방향성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고 이후로도 VC 산업에서 큰 규모의 인수합병은 이뤄지지 않았다.
VC 산업의 진화 위해 VC 간 협력 확대, 시너지 모색해야
VC 간 인수합병이 산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VC 산업의 버블 현상은 2차 시장에서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호이 캐피탈(Ahoy Capital)의 디렉터인 크리스 두보스(Chris Douvos)는 ”2차 시장에서 활동하는 펀드가 증가하면서 이들이 VC와 관련기업들의 지분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며 ”성과가 좋지 않거나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은 자산을 매각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부 기업들은 이른바 ‘좀비 펀드(목표했던 수익률과 기간 내에 투자 회수가 어려워진 펀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사실상 투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투자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펀드를 유지하며 관리 수수료를 받게 된다. 이같은 현상과 관련해 사미르 카지는 이들 기업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순히 2차 시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 위축과 VC 산업의 버블 현상 속에서 생존한 기업 중 몇몇은 큰 자금을 조달하는 데 연이어 성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굿워터 캐피탈(Goodwater Capital)이 10억 달러(약 1조2,818억원)의 펀드 조성에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VC 산업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VC 간 합병을 통해 상호 협력과 시너지를 모색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