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억원 투입해 예타 면제”, 정부의 통큰 결단에도 인력 확보 먹구름 낀 우주산업

과기부 “우주산업 예타 면제” 클러스터 구축 가속 전망 속전속결 예산 집행 기대에 업계 반색 정부 청사진에 반기 든 인력들, 업무 복귀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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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부가 우주산업을 대한민국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하며 우주산업 클러스터 조성에 시동을 걸었다. 전라남도·경상남도·대전시를 ‘우주산업 삼각 클러스터’로 지정해 발사체(로켓)와 인공위성 산업 집적지로 조성하고, 인재 육성 특화 지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포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23일 서울 중앙우체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에서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체제 구축사업(안)」의 예타 면제가 확정됐다고 밝히며 이같이 전했다. 정부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오는 2031년까지 6,000억원 상당의 자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尹 정부 청사진 “우주경제 강국 도약-지역 균형발전”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체제 구축사업은 특화지구별 핵심지원 내용을 포함한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체제 구축을 종합·체계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12월 총리 주재 국가우주위원회에서 발표한 ‘우주산업 클러스터 지정(안)’의 후속 조치다. 이번 예타 면제로 클러스터 구축이 가속할 전망이다.

과기부는 이날 특구별로 사업 추진전략 및 세부 사업내용을 밝혔다. 먼저 전남은 발사체 특구로 ‘아시아의 우주항(Spaceport) 도약’을 목표로 내세웠다. 구체적으로는 우주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로켓 발사장을 구축해 민간 상업 서비스를 지원하고, 발사장 인근에는 조립동을 건립해 입주 기업을 지원한다. 더불어 발사체기술사업화센터를 구축해 발사체 핵심 구성품 개발을 비롯해 사업화 지원, 시험 평가·인증 지원, 기업 애로사항 해결 등에 나선다.

경남은 ‘위성산업의 주력산업화’가 목표다. 이를 위해 위성 개발 단계에서 필수적인 우주환경 시험시설을 확대 구축한다. 현재 경남 지역에는 기존에 구축된 우주부품시험센터가 소재해 있지만, 향후 시험수요 증대를 미리 대비하기 위함이다. 또 위성개발혁신센터를 새로 지어 우주산업을 공고화한다.

대전 연구·인재 특구는 ‘미래 도전적 우주 연구의 허브’ 슬로건 아래 우주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선도형 연구개발과 우수 연구인력 양성에 주력한다는 설명이다. 우주기술혁신인재양성센터를 구축하고 미래 도전적 우주연구 허브로 키우기 위해 선도형 연구개발(R&D)과 우수 인력 양성에 집중한다. 우주기술혁신인재양성센터는 기존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인프라를 활용해 실험·실습 중심의 우주교육 환경을 구축한다.

2024년 12월 발사 예정인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위성) 6호/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24년 걸린 예타 기준 확대, 우주 산업은 ‘프리패스’

과기부는 지금이 대한민국 우주산업 육성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며 해당 사업의 예타 면제가 결정된 만큼 클러스터 구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대한민국 우주경제 강국 도약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이번 사업의 예타 면제를 결정했다”며 “향후 세부 사업 기획을 차질 없이 준비해 우주산업 클러스터를 속도감 있게 조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향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사업 적정성 검토를 거쳐 예산을 조정한 후 2024년 초 본격 진행된다.

과학계와 관련 산업계는 정부의 통 큰 결단에 반색을 표하고 있다. 예타 면제로 불필요한 시간을 단축해 속전속결 예산 집행이 가능해진 만큼 빠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면서다. 예타란 도로·철도·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R&D 분야 신규 사업이 일정 기준 이상의 국비 예산을 투입해 추진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는 제도로, 1999년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물가가 오르고 재정 규모가 대폭 확대됐음에도 500억원이라는 기준을 고수해 예타를 받아야 하는 사업이 지나치게 늘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예타 면제 기준 상향 검토에 돌입했고, 해당 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를 통과하며 24년 만에 1,000억원으로 기준을 상향했다.

관건은 인력 확보, 하지만 현장에선?

정부가 우주항공산업 도전을 위해 파격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은 만큼 이번 사업이 얼마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에 대해 경남도는 2024년 사업에 착수하는 우주환경시험시설 건립 등을 통해 해외 의존도가 높은 각종 우주부품의 국산화 개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민간 주도 우주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인근 지역에 다수의 우주기업이 유입되는 만큼 관련 창업 활성화에 따른 신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의 성패가 전문 인력 확보에 달려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과거 발사체와 위성체 등 ‘제조’ 중심으로 이뤄지던 전통적 사업이 정부의 지원 및 참여 기업 확대로 우주탐사, 자원활용, 우주활동 등으로 그 범위가 날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열린 우주인력 양성 정책토론회에서 정지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센터장은 “우주 산업 인력수급 분석 결과, 올해부터 2027년까지 우주 분야 인력 수요는 약 3,300명인데 인력 공급은 1,800명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관련 산업을 이끌어 나갈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국내 우주항공산업 연구 인력들은 정부의 청사진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노동조합 소속 연구자 80여 명과 기술·행정직 20여 명 등 100여 명은 과기부 세종청사 앞에 모여 정부의 우주항공청 설립·운영 기본방향에 반대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지난 7월 정부가 우주항공청 출범 계획을 밝히며 우주항공청에 항우연·천문연을 이관하지 않고 이들 기관을 외부 임무센터로 지정해 R&D를 맡기겠다는 계획을 밝힌 데 대한 반발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체제에서 우주항공청 R&D를 수행할 경우 R&D 기능 이원화와 정책 집행에 혼선이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기부 청사 앞에 모인 이들 가운데는 지난해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와 다누리 개발에 참여했던 인력이 대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우주항공청 설립은 모두가 바라는 바지만, 그동안 우주개발을 이끌어 온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을 배제한 전담 기구 설립 계획은 중단·조정돼야 한다”고 말하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업무에 복귀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항우연 전체 인력 약 1,050명 중 노조에 소속된 연구자는 6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1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집단행동에 나선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양한 기관과 인력을 우주산업 클러스터에 집중함으로써 시너지를 기대했던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